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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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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슈가(Sugar)>는 1959년 빌리 와일더 감독, 마릴린 먼로 주연의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를 원작으로 한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기존 코미디 장르인 원작의 서사를 이어받고 쇼뮤지컬의 특징을 강화하며 새롭게 무대화해 1972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을 올렸다. <슈가>의 한국 라이선스 초연은 제작사 PR 컴퍼니에 의해 2025년 12월 12일부터 2026년 2월 22일까지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슈가>의 제목 ‘슈가’는 작품에서 등장하는 여성 밴드의 우쿨렐레 연주자인 여주인공의 이름으로, 슈가 케인(Sugar kane)이라는 전체 이름의 발음은 사탕수수라는 뜻을 가진 ‘Sugar Cane’을 연상시킨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가 ‘재즈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재즈라는 음악 장르가 흥행했다는 사실과, 이 작품이 전반적으로 재즈 음악을 다루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재즈의 전신이라고 불리는 ‘래그타임(ragtime)’의 대가 스콧 조플린(Scott Joplin)의 음악 ‘Sugar cane rag’에서 여자 주인공의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보수적이었던 아이젠하워 시대(1953~1961)에 창작되었던 원작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1959)는 코미디라는 장르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당시 ‘금기’의 일환이었던 여장, 성적 암시, 동성애 코드를 경유했기 때문에 영화 검열 규정인 헤이즈 코드(Hays Code)를 위반했음에도 흥행한 영화로, 결국 할리우드 검열 체제를 무력화하는 것에 기여한 작품이다. 20세기 대공황과 금주법 시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색소폰 연주자 조와 베이스 연주자 제리가 마피아 갱단의 살인 사건을 목격하고 그들의 추격을 피하기 위한 여장을 하고 각각 조세핀과 다프네(‘대프니’로 발음되기도 함)라는 이름으로 여성으로 이루어진 밴드에 합류하며 발생하는 일을 다루는 원작의 줄거리를 그대로 차용한 뮤지컬 <슈가>는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저작권 이슈로 인해 원작 영화의 제목 대신 여주인공의 이름을 사용해 뮤지컬을 올렸고, 따라서 <슈가>는 같은 원작 영화를 기반으로 한 2022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 <’Some like it hot’>과는 구분된다.

 

 

 

대공황 시기는 어떻게 여장 코미디의 배경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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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슈가>의 시작은 단장 스위트 수가 이끄는 여자 밴드의 화려한 쇼이며, 그 다음 장면은 대공황을 맞아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시카고의 거리다. 이처럼 화려한 ‘쇼’의 모습과 황폐한 현실의 대비 혹은 공존은 경기 호황과 대중문화의 번성 직후 찾아온 대공황이라는 현실을 반영하며, <브로드웨이 42번가>나 <시카고> 등 같은 시기를 다룬 뮤지컬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장면이다. 대공황(Great Depression)은 단순한 불황(recession)이 아니라 기존의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믿어 왔던 ‘총생산’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 시장 경제라는 경제학적 ‘레짐’이자 사회적 믿음이 붕괴하던 시기다. 재즈 음악 장르와 쇼 같은 대중문화가 유행하고 파티가 개최되는 등 경제 호황이 문화 예술의 발전을 견인했던 대공황 직전 미국은 발전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roaring twenties’를 겪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추락, 나아가 미국의 추락을 예견하지 못했다. 따라서 대공황이라는 사건은 단순히 노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을 넘어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고 기존의 체제를 의문시하는 불신이 자라났던 시기다.

 

뮤지컬 <애니>의 ‘후버빌(Hooverville)’ 장면이 연상되기도 하는 넘버인 ‘Penniless Bums’에서 일자리를 찾아 시카고 거리를 떠돌던 연주자 조와 제리는 예술가 조합도 자신들의 일자리를 보장해주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한탄을 표출하며,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보장한 사회적인 약속이 배반당했다고 여긴다. 이들은 밴드의 매니저 비엔스톡의 부탁을 받고 악보를 가지러 차고에 가지만, 마피아 조직 간의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된 뒤 간신히 빠져나와 정체를 위장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여장을 선택하게 된다. 그들은 각각 조세핀(조)과 다프네(제리)라는 새 이름으로 여성 밴드(싱코페이터스Syncopators 밴드)에 합류하고, 그들이 겪는 ‘소동’을 통해 (규범적) 여성성의 수행 방식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이나 부분적인 일치감, 상황을 살핀 후 자신의 모습을 신속하게 ‘전환’시키는 능력, 분장/연기와 본질의 괴리 같은 전형적인 크로스드레싱 코미디의 공식이 펼쳐진다.

 

조와 제리는 ‘안전’이 확보되면 여장을 한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남자’로 ‘돌아갈’ 것이라고 언급하지만, 그들이 갱단의 타겟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던 시카고에서 여장 밴드에 합류해 기차를 통해 마이애미로 도착한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결정을 유예한다. 또한 2막에서 다시 등장한 갱단은 그들이 ‘희망’의 땅이었던 마이애미로 향해도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그들은 여전히 긴장 속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다. 이때 매력적인 밴드의 핵심 멤버 슈가에게 반한 조는 슈가 앞에서 석유 회사 ‘쉘’의 후계자 ‘주니어’ 행세를 하면서 호감을 얻고, ‘조세핀’과 ‘주니어’를 오가며 슈가와의 관계는 점차 깊어진다. 다프네로 분한 제리는 자신에게 구애하는 백만장자 노인 오스굿 필딩을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그와 저녁 식사를 함께한 뒤 약혼 선물을 받는 등 상황이 더욱 복잡하게 꼬여가며 이 작품은 절정으로 향한다.

 

<슈가>의 원작인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은 현재 영미권 여장 코미디 영화의 정석이자 고전으로서, ‘여장 코미디’ 장르에서 자주 사용되는 공식의 원형이 되었다. 여장 코미디의 계보 속에서 원작 영화는 (동명 뮤지컬의 원작 영화인) <미세스 다웃파이어>, <화이트 칙스> 같은 20세기 후반의 여장 코미디에 영향을 미쳤고, (현재 작품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남성이 여장을 통해 특정 (노동)시장에 침투하거나, 생존과 가난, 추격을 피하기 위한 위장 등 캐릭터의 선택을 더욱 개연성 있게 정당화하는 극한 상황 같은 설정과 장치들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20세기 후반, 그리고 지금까지 창작되고 있는 작품들은 신자유주의가 불러 일으킨 ‘남성성의 위기’와의 결합을 통해 더욱 서사 밑에서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정치경제적 체제와 젠더 구조의 절합(articulation)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며, 그 바탕에는 경제적 위기가 불러온 사회적 혼란이라는 배경 속에서 젠더를 새롭게 상상하는 실험을 가능하도록 한 원작 영화의 유산이 남아 있다.  원작 영화의 메시지를 이어받은 <슈가>에서 나타나는 대공황이라는 경제적 위기로 인한 사회의 혼란은 ‘질서’라는 언어에 갇혀 있었던 기존의 젠더 규범을 실험하고 그 이면을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장이 되며, 그 결과로서 규범과 일탈, 퇴보와 진보, 포섭과 저항의 이중성 위에서 양자 모두와 긴장 관계를 이룬다.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찾게 되는 유일한 ‘안정성’, 낭만적 사랑의 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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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귀던 남자친구들에게 버려진 상처가 있는 슈가는 요트가 있는 백만장자와 결혼하겠다는 소망을 품고 마이애미로 향하고, 이는 ‘조세핀’ 상태로 슈가의 사연을 듣게 된 조가 자신을 ‘주니어’라는 이름의 백만장자로 속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조 이전의 모든 남자들이 자신을 떠난 슈가는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말해야만 자신에게 닥친 이해할 수 없는 불운을 수용할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회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기구한’ 캐릭터다. 슈가는 주니어가 보여주는 아우라나 그가 가진 요트에 매료되지만(물론 이는 조가 오스굿의 요트를 자신의 것처럼 속인 것이다), 슈가가 자신을 주니어로 속인 조와 같이 요트에 있을 때 잠시 불안함을 느끼는 이유도 그 당시의 (사실 지금도) 여성의 몸이 ‘자산’으로 여겨지는 젠더화된 경제 구조에서 취약한 존재라는 자기 인식에서 기반해 일시적인 관계 이후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가 슈가에게 진정성 있는 고백을 했을 때 슈가가 (평생 쫓길 위기에도 불구하고) 조를 따라간 이유는 사랑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말을 믿었다는 의미다.

 

슈가를 향한 사랑을 느낀 조가 행복함보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 역시 그동안 일시적인 쾌락을 추구하면 끝이 나는 과거의 관계들과 달리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결혼이라는 제도적 결합과 전인격적인 책임의 의미가 함축된다. 사기꾼이면서 난봉꾼의 속성이 있는 조가 슈가 이전에 만나왔던 여성들과는 달리 슈가를 대하면서 긴장하는 이유는 단순히 성애적 쾌락의 교환 관계가 아닌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때 사랑과 낭만성의 각본은 단순환 교환 관계를 초월한 것, 혹은 비인격적으로 여겨지는 교환 관계로 환원될 수 없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사랑’은 전인격적인 관계에 대한 믿음에서 기반한 환상이며, 이는 자본과 지위 등 다양한 세속적 가치와 무관한 것으로 의미화된다. 후반부 조가 (제리/다프네가 오스굿에게 약혼 선물로 받은) 다이아 팔찌를 슈가에게 선물로 남기는 이유는 그가 합리적인 판단을 못해서가 아니라 쫓기는 상황에서 슈가를 위해 그가 가지고 있는 전부를 슈가에게 남기고 떠난 것이다. 조가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의 가치를 깨닫고 이를 실천하면서, 역설적으로 그저 제리/다프네를 속이기 위한 수사에 불과했던 "슈가를 위해서"(‘Doing it for sugar’)가 이루어진다.

 

<슈가>의 두 러브라인(조와 슈가, 제리와 오스굿)에는 공통점이 있다. 조와 제리는 슈가와 오스굿에게 자신의 정체를 속였고, 이를 고백해야 하는 일종의 부채감을 안고 그들과의 관계를 이어 나가는 과정이 희극적으로 묘사된다. 결과적으로 조와 제리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게 되고, 슈가와 오스굿은 그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 모두는 자본이나 다른 세속적 가치와 무관한 ‘진정성’을 입증하고 사랑을 완성한다. 자본이라는 세속적 가치와 성별이라는 제도화된 규범을 초월한 순수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이 작품의 동력이다. 이처럼, 낭만적 사랑의 가치를 추종하는 <슈가>는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는 또 다른 뮤지컬과는 차별화된다. 공연의 성공이라는 큰 목표 아래 다양한 에피소드를 녹여내는 <브로드웨이 42번가>나 자본과 젠더 규범에 의해 사법의 영역이 지배되는 현상을 역이용하는 여성들을 그린 블랙 코미디인 <시카고>, 그리고 고아 소녀 애니가 백만장자 워벅스에게 입양되어 뉴딜 정책의 초안에 기여하는 <애니>는 그 동기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든 공적인 것이든 모두 대공황이 초래한 자신 혹은 집단의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한다. 다른 뮤지컬처럼 <슈가>에서 사회 구조에 배태된 불안함은 등장인물로 하여금 안정성에 대한 강력한 환상을 원하게 한다. 하지만 <슈가>는 등장인물 모두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별을 속인 제리/다프네에게 ‘완벽한 사람은 없다’며 그/녀를 수용하는 오스굿이나 자신의 정체를 속인 조를 따라나서는 슈가의 모습에서 그 방향을 선회하고 사랑이라는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는 가치를 향해 질주한다.

 

‘감정 사회학’의 대가 에바 일루즈(Eva illouz)는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에서 사랑이 (소비)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낭만이 상품화되고, 사랑의 초월성에 대한 믿음이 일종의 보상적 유토피아로 작동하여 사회적 구조가 유지되는 현상을 다양한 자료에 대한 검토를 통해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세속적 가치를 초월한 사랑이라는 믿음 자체가 사실은 현대 자본주의가 창조한 환상이며, 이를 통해 사랑이 계급과 자본주의적 소비 구조에 얽매여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뮤지컬 <슈가>의 두 커플은 이러한 전형적인 사랑의 각본을 답습하며 대중적인 환상을 재생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애니>에서 나타났던 ‘내일’이라는 상징을 통해 표현되는 뉴딜 정책에 대한 맹목적인 희망처럼, <슈가>에서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기제는 코미디라는 형식 속에서 절대 의심받지 않는 대전제로 기능한다. 그렇다면 이 캐릭터들은 왜 사랑이라는 종착역에 가 닿은 것일까?

 

이러한 측면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면, ‘다프네’ 상태로 오스굿 필딩과 약혼한 제리가 조에게 자신의 약혼 사실을 고백하면서 벌어지는 코믹한 해프닝이다(‘Magic Nights’), 제리의 희망이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하는 조가 제리에게 그 선택의 이유를 묻자, 제리는 (이 작품을 만든 창작진도 인식하지 못했던) 이 작품에 깔린 역사적, 시대적 배경에서 배태한 감정을 그대로 관통하는 대사를 한다. “안정적이라서!”

 

이때 ‘안정적’이라는 말은 경제적 안정성의 의미도 있지만, 자신을 향해 맹목적인 사랑을 보내는 상대에 대한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거대한 불안정성의 시기에 유일하게 감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의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자원이 되어줄 수 있기에 그들은 ‘사랑’이라는 외양의 합리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바로 그것이 슈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도피를 위해 떠나는 조를 기꺼이 따라 나선 이유이며, 제리/다프네가 그저 귀찮다고 여겼던 오스굿의 구애를 받고 그의 약혼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이다. <슈가>에서 나타나는 사랑은 그것이 캐릭터들의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모순적인 측면을 숨기고 정서와 매혹, 친밀성의 언어로 자신의 외양을 꾸미고 있다.

 

 

 

규범의 잔여와 잉여 – 제리/다프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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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 여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십이야』 같은 ‘고전’에서도 그렇듯, 보편적인 젠더 위장 서사와 크로스드레싱 코미디에서 규범에 대한 일탈과 위반은 웃음 혹은 서사의 전개를 위해 ‘소모’되고 끝내 캐릭터들은 이성애규범성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다. 갱단을 피하기 위해 새롭게 지은 여장 상태의 이름 ‘조세핀’과 슈가의 사랑이라는 ‘사심’을 채우기 위해 위장한 백만장자 후계자 ‘주니어’가 모두 아니었음을 고백한 후 슈가와 사랑을 이룬 조의 모습은 이러한 여장 코미디의 각본을 충실히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대의 정체가 내가 알던 존재와 다르더라도 그 대상의 ‘본질’을 사랑한다는 믿음에서 기반한 낭만적 사랑의 각본은 조와 슈가의 관계에서 주류 이성애 규범이라는 보편성으로 회귀하지만, 오스굿의 사랑을 받는 제리/다프네에게는 새롭게 변주된다. 조의 경우는 ‘여장’을 벗고 다시 남성의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모든 갈등과 문제가 해결되지만, 제리/다프네의 경우는 막이 내리고 어떠한 삶을 살게 될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슈가>의 결말은 판단에 필요한 규범적 선-인식과 복잡한 질문들을 모두 유보하고 유예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정 시점에서 멈춰버린 결말 속에서, 이 ‘멈춤’의 시공간성과 그 정치성은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오스굿과의 결혼을 꿈꾸기도 하고, 가발을 벗으며 자신의 정체를 고백한 이후에도 제리의 이야기에는 ‘위장을 통한 연기’, 즉 일시적인 일탈의 상태에서 진짜/본질로 돌아가는 형식의 이야기로 요약할 수 없는 공백의 공간이 존재한다. 제리/다프네 캐릭터의 존재는 위기가 종료되었음에도 다시 이성애자 남성으로 대표되는 정상성으로 회귀하는 이성애규범성으로도 환원되지 않고, 동시에 배타적인 정체성 서사를 전제하는 ‘동성애규범성(homonormativity)’의 한 단면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이는 같은 원작 영화를 기반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또 다른 브로드웨이 뮤지컬 <’Some like it hot’>에서 제리의 정체성이 게이라고 명시되고 오스굿과의 결혼으로 결말을 맺는 설정과 차이가 있고, 명명과 호명이 수반하는 규범으로의 포섭이라는 효과를 고려한다면 오히려 여백으로 남은 정체성의 공간은 제도가 포착하기 이전의, 식별과 범주화 이전의 이상한(queer) 존재로 남는 것이 된다. ‘시대착오적’ 고전에서 규범의 잉여와 잔여를 발견하고 전유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 <슈가>가 문제적이었지만 동시에 흥미로웠던 이유다.

 

1막 중반부, 생존을 위해 여성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해야 하는 목적 속에서 제리가 혼란을 겪자 조는 제리에게 ‘나는 여자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속이라고 말하고, 제리는 이를 충실하게 반복한다. 이때 “나는 여자다”라는 말은 (마치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의 ‘나는 다이스퀴스’라는 주문이 그러하듯) 서사 내부에서 수행적인 효과를 지니며, 마치 자기 충족적 예언을 실현하듯 제리는 점점 더 자신이 만든 또 다른 자아인 ‘다프네’에 적응한다. 이러한 특징에 주목한다면, 다프네(Daphne)라는 제리가 선택한 이름 역시 흥미로운 포인트다. 조(Joe)는 자신의 이름인 ‘Joe’에서 파생된 여성형 이름 ‘조세핀(Josephine)’을 선택하지만, 제리(Jerry)는 자신의 원래 이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다프네’를 선택한다. (원작 영화에서는 자신의 여성형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사소한 이유가 잠시 언급된다.) 재미있게도, ‘다프네’라는 이름은 아폴론과 다프네 신화에서 자신에게 구애하는 아폴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월계수로 변하는 것을 택한 다프네의 스펠링과 동일하다. 창작진의 직접적인 의도는 확신할 수 없지만, ‘변신’과 비가역적 ‘전환’의 모티프를 공유한다는 공통점을 가졌다는 점에서 꽤나 흥미로운 명명이다.

 

조와 제리를 죽이려던 갱단이 서사 내부에서 처리되는 방식은 원작과는 다르다. 스패츠 갱단이 조직의 내부 분열로 인해 다른 파벌에 의해 살해당하고 전체 마피아 조직은 공권력(경찰)에 의해 처리되는 것이 원작의 설정이었다면, (대규모의 엑스트라를 동원할 수 있는 영화의 장르 문법과의 차이에서 비롯된 설정으로 예상되지만) 뮤지컬에서는 조와 제리를 찾기 위해 경계에 대한 규범과 경계 넘기로 인한 당황, 패닉(이른바 ‘borderpanic’)을 이용하려다 오히려 상황을 오인한 부하에 의해 살해당하며 규범에 역으로 당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결말로 변모했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부재하고(조와 제리는 마피아의 타겟이 되었지만 경찰서에 가는 대신 ‘여장’을 통해 스스로를 지키는 것을 택한다) 마피아로 대표되는 범죄 세력이 밀주 유통 등으로 몸집을 불리며 암시장(black market)의 지하 경제가 공공 영역을 잠식한 대공황 시대에서 스패츠 갱단의 ‘자승자박’은 더욱 현실적이면서 역설적인 결말인 셈이다.

 

 

 

창작과 수입의 시차 속 나타나는 한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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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슈가>는 원작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의 내용을 뮤지컬이라는 형식으로 구현한 내용이며, 원작 영화(1959)와 브로드웨이 초연(1972) 간의 시차, 그리고 이번 한국 라이선스 공연 간의 시차를 어떻게 극복하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관객에게 이해시킬 것인지가 이번 공연의 주된 포인트가 된다. 하지만 <슈가>는 유사하게 원작 영화가 존재하는 다른 뮤지컬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원작에 대한 각색 혹은 재해석보다 원작 영화의 서사를 무대 위에 최대한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앞서 서술되었던 작품의 서사와 메시지에 대한 분석은 뮤지컬 <슈가>의 독창성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그 기본적인 골격과 뼈대가 동일한 원작 영화에 대한 분석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슈가>와 원작 영화는 서사의 전개와 대사, 유머의 흐름이 유사하다. 영상 매체가 원작인 작품을 무대화하는 것은 항상 ‘양날의 검’이며, 장르의 이동을 거친 <슈가>의 경우 뮤지컬의 문법에 맞게 새로운 형식에 원작 영화의 서사를 도입하면서 작품이 가질 수 있는 풍부한 메시지와 담론이 오히려 축소되거나 다소 흐려지는 무대화의 전형적인 단점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2026년에 올라온 한국 라이선스 초연은 1970년대에 초연된 브로드웨이 원작 <슈가>를 버전 그대로 수입하면서, 무대 세트와 연출에 있어서의 상업적 취약함을 수반한다. 전반적으로 기차를 통해 주의 경계를 넘어 이동하는 연출, 대공황 시기 길거리의 모습, 재즈 음악이 활용되는 쇼의 모습은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한 <브로드웨이 42번가>, <애니> 등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무대 세트의 빈약함과 상당 부분 LED 화면에 의존한 공간 변화는 유독 아쉽게 느껴진다. 추상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무대 세트를 간소화하는 연출적 흐름 역시 공연예술에서 지배적인 연출 방식이긴 하지만, <슈가>의 경우 그 시대의 분위기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무대 공간으로 구현하는 것이 몰입의 관건이 되는 상황에서 무대라는 공간성을 영리하게 활용하기보다는 그저 LED 화면에 의존해 공간을 ‘표시’하는 것에 그치게 되고, 이는 점점 더 발전하고 있는 한국 뮤지컬계의 무대 미학의 트렌드에 전면적으로 역행한다. 추격 장면 및 스패츠의 죽음에 활용되는 연출과 마지막 ‘the end’ 자막 자체도 고전 영화나 애니메이션 영화의 문법을 차용한 장면이지만, 이것이 현대적인 뮤지컬 문법과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는 점 역시 ‘키치’한 반-미학의 매력보다 다소 저비용을 추구했다는 인상만이 남는다.

 

또한 <슈가>에서 조와 제리를 쫓는 갱단은 그닥 위협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데, 이것이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의 내부 분열을 복잡하게 묘사한 원작과는 차별화되는 이 작품의 고유한 특성이다. 이는 마피아 남자친구의 살인을 목격한 가수 ‘들로리스’가 수녀로 위장해 수녀들 사이에 섞이는 뮤지컬 <시스터 액트>의 마피아 조직원들의 모습이 그러하듯 그들은 위협적이고 공포스럽기보다 오히려 희화화된다. 따라서 서사적 긴장감은 희극적인 것으로 변주되고 그들의 허술함은 개그 포인트가 된다. 이러한 공통된 뮤지컬의 문법 속에서 <슈가>는 그들에게 추가적으로 탭댄스의 역할을 부여하고 스패츠 일당은 살인을 목격하고 달아난 조와 제리를 쫓는 과정에서 탭댄스를 통해 추격의 과정을 전개한다. 하지만 이때, 탭댄스가 지나치게 길다는 수용자의 반응은 단순히 탭댄스라는 요소 자체의 지루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장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가 탭댄스를 주된 관람 포인트로 내세우며 대중들에게 어필했고, 그것이 성공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뮤지컬에서 중요한 요소인 ‘춤’ 그 자체보다는 춤이라는 요소가 전체 서사와 어떻게 호응하는지, 어떠한 방식을 통해 공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지가 무대 연출의 관건이 된다. <슈가>의 탭댄스의 경우 스패츠를 필두로 한 갱들, 총 5명의 배우들이 참여하게 되는데, (특히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유일하게 소인원이 참여하는 탭댄스 장면인 ‘go into your dance’ 장면과 비교해본다면) <슈가>의 탭댄스가 전체적인 서사와 유리되어 있다는 점과 댄스 자체의 ‘볼거리’로서의 시각적 기능 모두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이 안무의 약점이 된다.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유사한 시기에 창작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나 <시카고>는 춤 그 자체를 서사에 일치시키거나 춤의 화려함을 주된 몰입의 기제로 삼았지만, <슈가>에서는 (마치 <브로드웨이 42번가>의 ‘With plenty of money and you’를 연상시키는) 슈가가 백만장자의 아내가 된 자신을 상상하는 넘버 ‘why not?’을 제외하고는 춤과 서사의 형식이 관객의 몰입을 끌어올릴 정도로 호응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코미디’라는 장르적 특성 속에서 나타나는 근원적인 아쉬움이 서사의 흐름 전반을 지배한다는 것은 이번 라이선스 공연의 최대 약점이 된다. 이 작품에서는 코미디로서의 장르적 특성이 드러나는 원작의 서사와 장치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공연 예술이라는 형식에 호응하고 희극적인 요소를 강화하는 극적인 형식이 기반이 되기보다는 원작의 웃음 코드에 편승하려 하거나, 배우의 역량에 의존하게 된다. 유사한 여장 코미디 뮤지컬인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특히 1막의 다웃파이어와 완다의 대면 장면 같은) 정교한 콩트적 짜임새가 돋보이는데, <슈가>의 경우 빈약한 코미디의 뼈대 구조 ‘위’에서 배우들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식으로 웃음 코드가 구성된다. 배우들의 애드립과 ‘말장난’, 혹은 ‘케미’에 극의 분위기와 개그 포인트가 달려 있고, 따라서 웃음을 위한 형식적 구조가 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원본 텍스트 이외의 요소가 추가적으로 요구된다. 또한 원작 영화와 브로드웨이 초연, 그리고 한국 라이선스 공연의 방대한 시차 속에서 이 작품은 코미디를 완성시키기 위해 필요한 개그 코드를 ‘현대화’하지 못했고, 따라서 주류 규범을 강화하는 ‘펀치 다운(punching down)’ 유머 코드를 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영미권 크로스드레싱 코미디의 역사 속에서 점점 더 발전하고 있는 인종 및 젠더 규범에 대한 풍자와 날카로운 통찰이 부재하고, 주인공 둘의 강제된 ‘여성성’ 수행과 그 ‘삐걱거림’은 (예를 들자면,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다니엘이 여장을 통해 적극적인 돌봄 주체로 성장하는 서사와 달리) 다소 소모적인 웃음 포인트로 남는다는 점 역시 아쉽게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슈가>의 라이선스 역량 부족은 프로덕션이 작품을 새롭게 각색하는 것에 있어서 ‘비용 최소화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든다. 사실 이러한 모든 비판점 자체는 예산의 부족과 이에 수반되는 창작진의 인력 같은 인적 자본의 부재를 기반으로 하는 제작사의 부족한 자본력에서 기인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비교군으로 언급했던 또 다른 뮤지컬 작품들은 대부분 규모가 큰 대극장 뮤지컬 제작사의 작품이거나 혹은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창작된 작품이며, 풍부한 경제적 자원을 통해 무대 퀄리티와 더 높은 수준의 자문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단순히 특정한 작품에 대한 비난에서 끝나기보다는 부족한 자본력이 그대로 작품 자체의 질적 수준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를 상쇄하기 위한 스타 캐스팅과 홍보 등 우회적인 방법론을 택할 수밖에 없는 작은 규모의 제작사의 상황과, 이러한 위계를 낳은 한국 뮤지컬 시장의 구조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좋은 이야기를 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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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슈가>가 한국에 수입되면서 각색된 지점은 많지 않지만, 등장인물의 기본 설정과 캐릭터 빌드업이 한국적 정서와 실제 공연에 참여하는 배우의 특성에 맞게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원작 영화나 기존 브로드웨이 버전의 나이 설정과 달리 (실제 캐스팅된 배우의 나이 차이에 맞추어) 조가 제리를 ‘형’이라고 호칭함으로써 제리가 연상이라는 점이 명시되었고, 이는 조가 제리/다프네를 ‘사촌’이라고 소개하면서 둘 사이의 모종의 혈연 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슈가는 원작 영화 속 마릴린 먼로나 이전 버전의 배우들이 만든 이미지처럼 단순히 ‘멍청한 금발 미녀’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더욱 복합적인 내면을 지닌 캐릭터가 되었다. 따라서 한국 라이선스 공연에서 슈가가 자신을 ‘멍청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맥락에 따라 방어와 자기혐오, 긍정성의 다양한 의미를 오가게 된다.

 

제리/다프네 역의 송원근의 경우, <레드북>, <오페라의 유령>, <곤 투모로우> 등 다양한 작품에서 안정적인 넘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그의 잠재된 연기 역량과 자기 자신을 내려놓은 코믹 연기를 <슈가>를 통해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에게 특별한 필모그래피로 남을 것 같다. <이프덴>에서 루카스 역을 맡아 대리모의 윤리적 문제에 관한 대사를 추가하거나, <젠틀맨스 가이드>의 몬티 나바로를 맡아 자신을 향해 ‘플러팅’하는 헨리 다이스퀴스를 상대하는 연기에서 더욱 세심하게 개그 포인트를 연기하던 그의 특성이 이 작품까지 이어진다. 그의 제리/다프네는 (마치 <무한도전> 속 노홍철과 정준하의 관계성처럼) 조에게 계속 당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순수하고,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서 맡았던 ‘나타샤’ 캐릭터와 비슷한 톤을 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막장 드라마’라는) 매체의 장르 문법에 갇혀 있었던 ‘나타샤’를 극복한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다.

 

정택운의 조(조세핀, 주니어)는 알맹이가 없어도 화려한 겉모습을 능숙하게 꾸미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기꾼이지만, 동시에 슈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 반성하는 다면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뮤지컬에 완전히 정착한 아이돌 출신 배우들을 포함하여 같은 나이대의 뮤지컬 배우들 중에서 전체적인 ‘스탯’의 밸런스가 좋다는 점, 그리고 연극(<테베랜드>)을 경험하며 드라마를 이끄는 연기적 역량을 발전시켰다는 것이 그의 장점이다. 유연정의 슈가 케인은 본인을 지칭하는 대사 그대로 ‘멍청’하기보다 순진하고 여린 캐릭터로, 또래 나이대의 배우들에 비해 뮤지컬에 요구되는 여러 자질들의 성장이 빠르다. 우연히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에서 아나톨과 나타샤로 보았던 두 배우를 그대로 <슈가>에서도 보게 되었는데 두 배우의 더욱 ‘로코’의 느낌으로 변주된 케미는 물론 등장인물 간의 관계에서 두 작품이 대응되는 측면이 있어서 더욱 재미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단지 난봉꾼인 아나톨과 달리 조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인 ‘내면’이 있다는 사실이다. 진실된 사과와 함께 사랑을 고백하는 결말 직전의 조의 모습을 보면, 이번에는 똑같이 거짓말과 사기에서 시작된 소동극의 결말이 비극과 파국이 아닌 사랑과 안식이길 바라게 된다. 그 외에도, 코미디언 출신 김나희의 ‘스위트 수’는 <개그콘서트> 시절 자주 맡았던 ‘허당’ 혹은 ‘미녀’라는 전형적인 역할과 달리 카리스마 있고 쇼를 이끄는 밴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남희의 ‘오스굿 필딩’은 미워할 수 없는 감초 캐릭터이며, 스패츠(임춘길)와 비엔스톡(김도신) 등 다른 원캐스팅 조연들 역시 작품 곳곳에서 활약한다.

 

뮤지컬 <슈가>의 마지막은 조와 슈가, 오스굿과 다프네/제리라는 두 커플이 요트를 타고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떠나는 장면이다. 오스굿은 자신의 진짜 정체를 고백하는 다프네/제리를 받아주고, ‘완벽한 사람이 있나요?(Nobody’s perfect)’고 말하는 엔딩은 원작 영화도, 원작 영화를 따온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임팩트 있는 장면으로 통한다. ‘Happily ever after’이라는 해피 엔딩이 유예된 정지의 시간성 속에서 두 커플의 운명은 관객에게 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겨진다. 그 여백의 시공간은 원작 영화에게는 사회적 금기인 검열 제도를 우회하게 하는 통로가 되어 주었으며, 공연에서는 막이 내려간 후에 관객들의 당황한 눈빛이 교차되는 상황의 전제가 되었다. 낭만적이고 안정적인 사랑을 꿈꾸던 여주인공 ‘슈가 케인’을 처음 연기했던 원작 영화의 배우인 마릴린 먼로의 비극적인 생애와는 다르게, 슈가의 앞길에 행복과 사랑만이 가득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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