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 한국 라이선스 재연이 2025년 9월 27일부터 12월 7일까지 서울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1993년 동명의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Mrs. Doubtfire)>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2019년 시애틀에서 프리뷰 공연을 거쳐 브로드웨이에서는 2021년 초연된 작품이다. 제작사 샘컴퍼니와 스튜디오선데이의 합작으로 한국 라이선스 공연은 김동연 연출과 황석희 번역의 협력 속에서 2022년 전 세계 최초의 라이선스 공연이 초연되었다. 코미디 장르의 특성이 강한 이 뮤지컬은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대본, 연출에서 변화가 가해질 수 있는 논레플리카(Non-replica) 형식으로 수입되었으며, 서사가 전개되는 상황 속 플롯과 얽히면서 가중되는 코믹한 요소의 조합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다니엘은 유쾌한 성격의 성우이지만, 애드립을 너무 자주 넣는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리디아, 크리스, 나탈리 3남매를 사랑하지만 그의 무능에 지친 아내 미란다와의 갈등으로 결국 이혼하게 된다. 아이들, 특히 첫째인 리디아는 예상치 못한 변화에 혼란을 겪고 법원은 다니엘에게 아이들과의 일주일에 한 번의 면접권만을 허락한다. 다니엘은 미란다가 베이비시터 채용 공고를 내자 스코틀랜드 출신 할머니 ‘미세스 다웃파이어’라는 이름의 유모 경력자로 위장해 전화 면접을 본다. 샵을 운영하는 친형 프랭크와 남편 안드레의 도움으로 가발과 특수 분장을 하고, 성우였던 자신의 장점을 살려 목소리 연기를 통해 쉽게 의심하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신한 그는 결국 자신이 살던 집에 유모로 들어가며 미란다와 아이들의 신뢰를 얻으며 유모 생활에 적응해간다. 하지만 법원 아동보호과 공무원 완다의 의심과, 새롭게 등장한 미란다의 새 남자친구 후보이자 사업 파트너인 스튜어트, 다웃파이어가 아빠임을 알게 된 리디아와 크리스 등 다양한 변수 속에서 다웃파이어이자 다니엘은 점점 더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시간이 지나며 더해지는 거짓말은 위기로 다가오면서 이야기는 절정으로 향한다.
다니엘은 왜 미세스 다웃파이어로 변화해야만 했을까?
원작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배경으로 하던 1990년대 미국은 신자유주의의 도입으로 인해 기존의 중산층 핵가족 모델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생계를 담당하는 남성 가장(breadwinner)와 가사 노동을 담당하는 가정 주부 여성, 그리고 아이들로 구성된 전통적인 백인 중산층 가족의 모습은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재현되었지만, 여성의 이중노동을 통해 유지되었던 비백인 가정이나 일부 노동계급의 사례에는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았을 뿐더러 신자유주의의 도입으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 기초한 가족제도는 다수에게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가부장제와 결합했던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해체는 ‘남성성의 위기’를 불러왔고, 근대적인 공과 사의 공간 분할과 함께 작동하는 젠더 질서 역시 변화하며 기존의 ‘산업예비군’에 속해 있던 여성들의 적극적인 일자리 진출을 유도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 성공한 커리어우먼인 미란다와 직장에서 해고된 다니엘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반영하는 것이다. 결국 다니엘이 그의 무능력함에 지친 미란다에게 이혼을 당하고 기존의 ‘가정’에서 추방되는 상상력 역시 다니엘로 대표되는 남성 주체가 더 이상 가장으로 기능할 수 없음을, 더 나아가 가족 구성원에서도 빠질 수 있음을 함의한다. 원작 영화와 뮤지컬은 약 2~30년의 시차가 있지만,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지금 변화된 모습은 자연스럽고 원작 영화의 설정들은 공통적으로 적용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추가적으로, 뮤지컬 2막 초반 다양한 사이즈의 여성복 브랜드를 런칭하며 직업적으로 성공한 미란다의 모습과, 미란다에게 구애하기 위해 자신을 가꾸며 헬스를 하는 새 남자친구 후보 스튜어트의 모습은 젠더화된 공과 사의 영역 구분을 해체하는 2물결 페미니즘 이후의 시대상과 젠더 관계의 변화를 반영한다.
다니엘은 아이들을 돌볼 도우미를 뽑겠다는 미란다의 결정을 알게 된 후 자신의 성우 경력을 활용해 장난전화를 걸며 미란다의 기대치를 낮춰 놓고, 의도적으로 호감을 살만한 ‘친근한 할머니’의 목소리를 한 상태로 지원한 전화 인터뷰에서 미란다의 좋은 반응을 얻는다. 그는 메이크업 샵을 운영하는 형 프랭크와 그의 남편 안드레의 도움을 받아 가발과 화장, 의상을 착용하고 ‘미세스 다웃파이어’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의 모습을 하게 된다. 미란다는 집안일과 양육의 경험이 많아 보이는 다웃파이어의 모습에 만족하고, 할머니 분장을 하고 자신이 얼마 전까지 살았던 집에 위장 취업한 다니엘은 스코틀랜드 출신 완벽한 할머니 ‘다웃파이어’의 모습으로 요리와 청소, 집안일, 아이들을 케어하는 일의 균형을 배우고 과거 자신의 무책임함을 극복하려 노력한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덕분에 아이들의 돌봄을 원했던 미란다와 정서적 안정을 원했던 아이들은 모두 만족하게 되면서 다니엘/다웃파이어는 완벽한 돌봄 주체로 거듭나며, 그 과정 속의 시행착오들은 작품의 개그 포인트가 된다.
또한 다니엘은 임시로 방송국에서 청소를 하는 일자리를 구하게 되며 방송국의 일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아동용 쇼의 촬영 현장을 청소하고 있던 그는 방송 촬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시대에 흐름에 맞지 않는 ‘노잼 개그’를 하는 ‘졸리 아저씨’의 쇼는 더 이상 아이들이 원하지 않고, 자넷 PD가 새로 투입시킨 자신의 조카 루피 레니는 힙합을 하고 루프스테이션 같은 신문물을 잘 다루지만 전형적인 ‘신세대’의 모습으로, 졸리 아저씨는 물론 다른 아이들 역할을 맡은 출연자와도 이질적이며 팀에 녹아들지 못한다. 결국 녹화는 중단되고, 쉬는 시간에 PD의 조카가 가져온 루프 스테이션을 통해 자신의 장기인 목소리 변조를 활용해 혼자 음악을 활용한 쇼를 연습하던 다니엘은 해고의 위기를 느끼고 있던 자넷 PD의 눈에 들게 되며, 이는 단순히 청소 노동을 넘어 방송국에 진행자로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것을 암시한다.
원작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포함하여 ‘진보’와 ‘백래시’가 동시에 발생했던 영미권의 1990년대의 여장 코미디물은 “해로운 남성성(toxic masculinity)의 극복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결국 남성의 억울함을 위로하고 정상 남성의 자격증을 재발행했다는 점에서 퇴행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즉, (원작 영화에만 국한되는 설명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가부장적 남성성에서의 이탈이 결국 코미디의 소재로만 동원되고 남성성의 회복을 통해 다시 정상 규범으로 회귀하게 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약 30년이 지난 뒤 원작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새롭게 ‘리뉴얼’한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원작의 장점은 흡수하되 과거 원작 영화에서 지적되었던 비평적 평가를 반영해 세부 사항을 변화시켰고, 대안적 돌봄 남성성을 실험하는 작품으로 거듭났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변화시킨 것은 단순히 ‘남성성’을 회복한 다니엘이라는 남성 주체 한 명이 아니라, 다니엘이 속한 가족제도 자체이기 때문이다.
* 손희정, “[비평] 해석의 묘를 마음껏 즐기자, 성공적인 포스트 #미투 대중 서사 <파일럿>을 향유하는 몇 가지 경로”, 씨네21, 24.08.08.
사랑이 있는 한(As long as there is love): 새로운 친족의 조건
레스토랑 라 로사(La Rosa)에서 가족들에게 다니엘의 정체가 들통난 이후, 자넷 PD에게는 쇼의 진행자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지만 또 다시 이뤄진 조정에서 다니엘은 아이들을 만나기 어렵게 된다. 아이들도 미란다도 새로운 돌봄 도우미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미란다는 법원 감시관 완다와 대화하게 된다. 가정폭력, 아동 학대 같은 사건들을 수 없이 접했던 아동보호과 공무원 완다는 자신의 전 남편 역시 ‘나쁜 남편’이었고 싱글맘으로 아들을 양육하고 있다는 것을 미란다에게 밝히고, 다니엘의 행적을 쭉 지켜본 인물로서 그의 무모한 행동이 결국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이야기해준다. 아이들도, 자신도 다웃파이어를 그리워하는 상황에서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모습으로 방송에 출연해 인기를 끄는 다니엘의 모습을 본 미란다는 돌봄 도우미를 새로 고용하는 대신 다니엘이 자신이 일하는 동안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게 허락하고, 다니엘은 ‘다웃파이어’라는 캐릭터로 인기를 얻게 된다.
프랭크와 안드레는 완다를 통해 여자 아이를 입양하고, 완다는 자신의 아들(크리스 역할 아역 배우 중 그 회차가 아닌 다른 아역 배우가 담당)을 삼남매에게 소개시킨다. 프로그램을 만든 자넷 PD부터 졸리 아저씨와 루피 레니까지, 다양한 캐릭터가 다 같이 마지막 넘버 ‘As long as there is love’를 부르면서 끝나는 해피엔딩이다. 다니엘과 미란다라는 이혼 가정, 프랭크와 안드레 부부, 즉 ‘입양’을 통해 자녀를 갖게 된 퀴어 가정, 싱글맘 완다와 아들이라는 한부모 가정, 자넷 PD와 루피 레니라는 숙모와 조카 관계까지, 다양한 친족 관계가 엔딩 장면을 장식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쇼’의 하이라이트를 넘어 현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관계의 양상들을 재현하는 것이며, 이들이 이미 존재했음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캐릭터가 유명해지고, 캐릭터의 이름을 딴 쇼가 흥행하는 결말 장면에서 또한 주목해야 할 점은 이전 쇼의 진행자였던 할아버지인 ‘졸리 아저씨’(Mr. Jolly)가 단순히 자넷 PD가 만든 쇼의 진행자가 미세스 다웃파이어로 ‘대체’되면서 ‘해고’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보낸 편지를 전달해주는 역할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글씨를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작은 소리를 잘 듣지 못하고, ‘요즘 감성’을 모르고 ‘옛날 개그’만 하는 졸리 아저씨가 1막에서 잘 수행하지 못하던 진행자로서의 노동은 사실 그의 노화된 몸에서 기인하기에 노인의 사회적 취약성을 함의한다. 졸리 아저씨는 1막에서 사실상 다니엘/다웃파이어의 잠재적 라이벌로 제시되지만, 2막에서 다웃파이어의 성공은 그의 ‘도태’로 이어지지 않는다. 2막에서 졸리 할아버지가 쇼의 다른 역할로 등장한다는 점은 시간이 지나 주된 생산을 담당하는 세대 교체가 이루어져도 시민 사회에서 노인의 ‘자리’(어떻게 본다면 ‘시민권’의 은유) 역시 존재(해야)한다는 것을 잠재적으로 암시한다. 이혼 가정, 성소수자 가정, 한부모 가정, 그리고 노인까지, 그 어떤 인구집단도 놓치지 않겠다는 집요함이 느껴진다.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재현하고, 이를 명시하는 것은 기존의 가부장적 가족 제도에서 배제된 이들을 포용하려는 근대의 관용일 수도 있고, 남성 가장(breadwinner) 중심의 생계부양자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혼 가정과 퀴어 가정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장’하지 못한다면 폐지가 예정된 근대 가족제도가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시도하는 것일수도 있다. (그러니까 ‘수정된’ 가족주의다.) 일과 가정 모두에서 무능하다고 평가받던 다니엘이 돌봄의 화신인 다웃파이어로 변화하면서 ‘남성성의 위기’가 새로운 돌봄 남성성의 탄생으로 전환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대안적 남성성’을 통한 ‘변화한 젠더 및 가족 관계’라는 이 뮤지컬의 주제는 소피아 루이스의 『가족을 폐지하라』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자본주의의 근간으로 여겨지는 가족 제도의 형상화된 가족 자체를 의문시하자는 상상을 하는 국면까지 가족주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보여주는 새로운 가족주의의 미래는 급진적이지 않은 생각이다. 하지만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그리는 가족의 모습은 현재 사회의 가족 관계와 가족 제도의 미래를 설명함에 있어 기본이 되어야 할 만큼 교과서적인 예시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교과서적인 교훈이 점차 인구 구성이 변화하고 다양한 가족의 유형이 존재했음이 가시화되고 있는 현재 한국 사회와 대중들에게 필요한 것임은 명백하다. 쇼의 고민상담 코너에서 이혼 가정 아이의 사연을 읽어주며 ‘사랑만 있는 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다웃파이어의 모습은 현대 사회 가족 제도의 영역에서 새롭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명시하기 때문이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재연의 모습, 변화된 캐스팅과 개그 포인트는?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각색, 번안을 허용한 논레플리카 뮤지컬로, 2022년 라이선스 초연부터 원작 영화를 기반으로 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한국에 맞게 ‘현지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원작에서는 방화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에서 차용한 ‘다웃파이어’(Doubtfire)와 최대한 비슷한 발음을 음차하기 위해 전화 인터뷰를 하고 있는 다니엘 뒤로 한 여성이 다른 남자에게 구애하는 장면에서 ‘다 오빠에요’라는 대사가 나오도록 상황을 만든 것, 성우 일을 하던 다니엘이 객석에 공연 전 주의사항을 더빙하다가 애드립을 넣는다는 이유로 해고되면서 시작하는 독특한 구성, 한국의 대중문화를 연상시키는 요소를 포함한 기타 다양한 개그포인트 등 한국 관객들에 맞게 구성된 극적 장치들은 한국의 대중문화에 익숙한 관객들이 반응할 수 있는 코드에 맞게 가공한 설정이다.
2022년 라이선스 초연과 달리 2025년의 재연은 다양한 맥락이나 유행 속에서 공연의 특정한 디테일들이 변화하기도 했다. 초연과 재연의 배우진이 달라지면서 ‘필모 개그’나 배우에 맞게 수정된 애드립이 곳곳에서 등장했고, 기존의 다른 뮤지컬 작품의 요소뿐만 아니라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 드라마 등 매체의 유행어나 성대모사가 가짜 전화 인터뷰 장면, 완다와의 첫 면담 장면에서 배치되기도 했다. 다웃파이어로 분한 다니엘이 요리를 하기 위해 영상을 보며 따라하는 장면(‘Easy peasy’)에서는 초연의 경우 백종원과 고든 램지를 노골적으로 연상시키는 두 셰프의 영상이 표현되었지만, 재연에서는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패러디 요소가 삭제되었다. 프랭크와 안드레의 샵에 간 다니엘이 자신을 여자로 변신시켜달라고 말하면서 펼쳐지는 대규모의 쇼적 스펙타클이 빛나는 장면(‘Make me a woman’)은 예술가부터 연예인까지 다양한 여성상들이 등장하는데, 여성 정치인의 경우 엘레노어 루즈벨트, 마거릿 대처와 클린턴 정부의 법무부 장관 자넷 리노 등이 등장했던 브로드웨이 버전의 인물들이 현재 한국과는 시공간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소 최근의 인물인 힐러리 클린턴으로 변화하기도 했다. 초연에는 한국적인 맥락을 강화하기 위해 ‘오스카의 윤여정’이라는 대사로 윤여정 배우 분장을 한 앙상블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서인지 ‘신사임당’으로 교체되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브로드웨이 버전에서는 시인 ‘오스카 와일드’, 정확히는 ‘a little bit of Oscar wild’가 초연에서는 프레디 머큐리로 등장했지만, 재연에서는 게이, 바이섹슈얼 남성이 등장하는 부분이 삭제되었다는 점이다. 이 넘버에서 퀴어 남성이 등장하는 것이 의미있는 이유는 ‘여성성’이 고정되지 않고 탈부착가능한, 유동적인 것이라는 함의가 있기 때문인데, 깊은 의도는 없었겠지만 유행의 반영, 앙상블의 사용, 기타 다른 기술적인 여건들 사이에서 빠지게 되면서 의미가 축소된 것이 아쉽다. 추가적으로, 마지막 넘버 ‘As long as there is love’가 시작되기 전, 미란다와 가족들이 방송 캐릭터가 된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초연의 경우에는 인형과 함께 직접 등장했지만 다웃파이어는 인스타 라이브를 연상시키는 UI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는 모습을 미리 녹화된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변화되기도 했다.
코미디와 드라마가 교차하고, 코미디가 여러 배우들의 합을 통해서 지탱되는 상황에서 ‘최애 장면’ 몇몇을 꼽자면, 1막에서는 이혼한 다니엘의 집에 찾아온 감찰관 완다가 다웃파이어 모습을 한 다니엘을 발견하자 다웃파이어가 다니엘을 자신의 남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다. 다니엘과 다웃파이어는 욕실에서 실시간으로 변장을 하면서 등장하는 것은 원작 영화와 유사하지만, 다니엘의 형 프랭크가 등장하면서 일시적인 오해가 생기자 ‘출생의 비밀’이라는 거짓말을 하고, 그제서야 눈치챈 프랭크와 뒤늦게 등장했지만 눈치가 빨라 쉽게 조력해주는 안드레의 합이 더해져서 그 장면 전체가 콩트와도 같은 치밀한 개그 포인트가 된다. 또한 그 후에 완다가 의심하지 못하도록 프랭크가 다니엘의 분장을 도와주는 사이 안드레가 완다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입양을 언급하는 것이 결말 부분 프랭크와 안드레의 입양 장면의 복선이 되는 등 원작 영화에 비해 더욱 조밀해졌다. 일반적으로 영화나 드라마 등 원작이 있는 작품이 뮤지컬화되면서 텍스트에 내재한 담론이 확장되는 일은 흔치 않은데, 20년이 넘는 시차 때문인지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제한된 형식 속에서 원작 영화에 비해 더욱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2막 역시 완다가 다니엘을 의심하다가 결국 다니엘과 다웃파이어를 월요일에 동시에 소환하면서 다니엘이 부담을 느끼고 꿈을 꾸는 장면에서 느끼는 다니엘의 긴장, 그 월요일이 오기 전 주말에 '다니엘'로 참석해야 하는 자넷 pd의 식사 제안과 '다웃파이어'로 참석해야 하는 가족들의 생일파티 초대가 같은 레스토랑 ‘라 로사’에서 겹치면서 발생하는 장면 역시 개그 포인트가 산재되어 있다. 이때 라 로사의 가수가 부르는 노래(화자를 속인 남자를 저주하는 노래) 가사 속에서 다니엘이 느끼는 긴장과 다웃파이어와 다니엘로서의 빠른 전환이 절정에 달하며 결국 그가 가족들에게 정체를 들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 이후 아이들과의 면접교섭권이 더욱 제한되고 어른들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아니면 그보다 더 성장한 리디아와 나누는 진솔한 대화(‘Just pretend’) 장면은 진지한 감정의 흐름이 중요한 장면이다. 2막의 묘미는 다니엘의 긴장과 다웃파이어라는 ‘부캐’와의 혼란 속에서 코믹적인 요소가 등장하고, 코믹과 섞인 긴장이 서사의 전개와 함께 드라마로 전환되는 그 흐름인 것이다.
초연의 정성화 다니엘/다웃파이어, 신영숙 미란다에 이어 재연의 황정민 다니엘/다웃파이어, 린아 미란다는 코미디와 가족 드라마라는 작품의 내재한 두 축에서 균형을 이룬다. 전반적으로 초연과 재연 모두 적절한 실력과 어울리는 캐릭터성을 가진 배우를 찾았으며, 뮤지컬 마니아층도, 뮤지컬을 많이 접하지 못한 대중도 모두 수요층으로 흡수시킬 수 있는 ‘충분히 좋은’(good-enough) 캐스팅이다. 조연 역시 단순한 개그 포인트만을 위해 치고 빠지는 소모적인 캐릭터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이 광범위한 가족 드라마에서 자신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매력적인 조연을 꼽아보자면, 먼저 법원의 행정 공무원 완다 역할의 하은섬(김나윤) 배우다. <웃는남자>, <레베카>의 개그 캐릭터이면서 부분적으로는 빌런인 조연 캐릭터와, <멤피스> 재연에서 남자 주인공 휴이의 어머니 글래디스 역할을 매력적으로 만든 하은섬 배우의 연기가 완다의 다양한 면에 잘 녹아들었다. 각종 개그씬의 합을 맞춰주는 역할이나, 다니엘이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봐 계속 걱정하게 만드는 업무 능력, 다니엘의 꿈(’You’ve been playing with fire’) 속에서 냉철한 법의 집행자이자 진실의 폭로자로 재현되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까지. 다니엘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공무원 완다도 결국 아들을 사랑하는 ‘싱글맘’이자 일과 양육을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으로서 미란다에게 다니엘을 위해 조언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다니엘의 형 프랭크 역의 최호중 배우는 <그레이트 코멧>, <물랑루즈> 같은 굵직한 뮤지컬에서 감초 조연으로 활약해 왔는데, 이 작품에선 유독 2020년 초연이 올라왔던 뮤지컬 <제이미>에서 드랙퀸이 되고 싶어하던 주인공 제이미를 격려하던 전직 로코 샤넬(드랙퀸 네임), 현직 옷 가게 주인인 ‘휴고 아저씨’가 떠올랐다. (프랭크는 거짓말을 하면 목소리가 커지는 버릇이 있는데, 이 장치가 작품에서 다양한 개그 포인트에 쓰인다. 프랭크의 버릇이 조카인 크리스에게도 똑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프랭크의 남편이자, 영미권 게이 문화에서 한 축인 디바 여성 가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도나 썸머를 향한 팬심을 드러내는 안드레 역을 맡은 서동진 배우는 유쾌한 캐릭터성 속에서 개그 포인트를 강조하는 역할을 능숙하게 수행한다. 다니엘과 미란다의 딸이자 15세 첫째 리디아 역할을 맡은 김태희, 설가은 배우는 초연, 재연 모두 똑같이 참여한 유일한 아역 배우인데, 뮤지컬 ‘아역’의 계보 속에서 그들이 훌륭한 배우로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웰 메이드’로 평가받는 대극장 뮤지컬의 구성 요건은 간단하다. 평균 이상의 넘버와 평균 이상의 줄거리, 평균 이상의 짜임새, 평균 이상의 스펙타클, 그리고 평균 이상의 배우진까지. 완벽한 대극장 뮤지컬은 특정 한가지 요소의 완벽함이 아니라 모든 ‘평균 이상’의 요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맞물렸을 때 최종적인 결과로 탄생한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그러한 의미에서 잘 만들어진 작품이고, 최종적인 완결성의 차원에서 높은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뮤지컬 마니아층이 아닌 대중에게 입문작으로 2025년 하반기 대극장 뮤지컬 중 고전의 영역에서는 <맘마미아>를, 최근 작품에서는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추천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