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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이 시대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의 생각은 정말로 우리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오류를 거니는 산책자


 

지난 12일,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개최된 《오류를 거니는 산책자》를 보고 왔다. 서울 거주민이 아니기에 전시 하나를 정하는 일에도 꽤나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저장해둔 전시 리스트 중 이 전시를 고른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일단 볼 것이 많아 보였다. 둘째, 미술관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해 두면 거의 매일 스토리가 올라온다. 반듯하게 정돈된 글자와 사진 이미지가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셋째는 전시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보는 독자가 있다면, 전시는 3월 29일까지 운영되니 서두르길 바란다.

 

서울대학교 초입에 있는 미술관에 도착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까지 전시장의 규모가 꽤 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기억에 의지해보면 지하 1층부터 시작해 4층 내지는 5층까지 전시 공간이 구성되어 있었다. 멀티 채널 비디오, 인터랙티브 비디오, 사진, 평면 그림 등 ‘오류’라는 하나의 지점에서 시작된 다층적 산출물을 한데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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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직접 촬영 / 안태원, 〈오류를 거니는 산책자〉 전시, 서울대학교미술관, 2026

 

 

 

혼종성 목격 현장


 

오늘, 이 글에서는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안태원 작가의 작품이다. 포토샵에서 바로 인쇄해 낸 듯한 그의 작품 표면에는 전통 회화가 지닌 물감의 물성, 깊이감, 화가의 흔적과 작품이 거의 사라진 듯 보인다. 작품 속 인물의 표정 역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나 정서가 빠진 채, 텅 빈 눈과 불명확한 시선으로 어딘가를 응시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선택 툴’로 도려낸 듯한 거친 가장자리, 시트지처럼 매끈하고 균질한 질감은 오프라인 작업임에도 온라인 이미지의 속성을 정교하게 묘사한다. 인간과 고양이의 특정 부분이 결합된 모습, 고양이와 사마귀 혼종의 인물은 실재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 마치 AI가 만들어낸 것 같은 깨진 형태를 가지고 있다. 기술의 산물과 현실 인물이 혼성된 존재로 제시됨으로써 포스트휴먼적 정체성의 징후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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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직접 촬영 / 유정우, 〈오류를 거니는 산책자〉 전시, 서울대학교미술관, 2026

 

 

 

당신은, ㅇㅇ이 되기를 택하시겠습니까?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작가 유정우의 2채널 비디오《X10》이다.

 

작품을 보며 급하게 메모장에 기록해 둔 영상 속 내레이션을 잠시 들여다보자. 내용의 상세함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감안하고 봐주길 바란다. 맞춤법 역시 ‘오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 거짓말을 천년하면 이는 진실이 된다. 우리는 오늘날 이를 가짜 뉴스라고 부른다.

- 총알은 몸을 관통하지만 이런 류는 정신을 관통한다.

- 불안한 시민을 통제하기 쉽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임ㅅ는 사실이다.

- 당신이 느낀 공포, 불안 이런 것들은 정말 당신이 느낀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심어준 것일까요?

- 당신은 무기가 되기를 선택하시갬ㅅ습니까. 아니면 자유로운 정신이 되기를 선택하시겟습니까.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더

 

7분가량의 영상은 두 개의 모니터에 나뉘어 상영되는데, 두 화면의 내용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의사로 보이는 어떤 인물이 등장해 VR 기기를 착용한 또 다른 인물에게 “초점을 최대한 중간에 맞추세요.”라고 말한다. 반대편 모니터를 보면, 화면에 놓인 동그라미 도형은 끝끝내 중간에 위치하지 않는다. 사방을 오가며 정처 없이 헤맨다. 중간을 맞추고 싶은 그의 마음이 오갈 데 없는 도형의 움직임으로 반사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전환, 그 속에서 등장하는 내레이션은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AI가 입력된 문장을 그대로 출력하는 듯한 건조함을 지니고 있다. 도래했거나 도래할지도 모르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읊으며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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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직접 촬영 / 정성진, 〈오류를 거니는 산책자〉 전시, 서울대학교미술관, 2026

 

 

 

댓글 이후의 사고는 정말 내 생각일까?


 

《X10》을 보며 한 가지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유튜브 영상을 볼 때면 영상보다 댓글 창을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영상을 보는데 댓글부터 확인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으나, 실제로 그렇다. 혹은 영상 속 관점이 나와 다르면, 다른 사람들도 이 사람처럼 생각할지 궁금해져 영상을 보는 도중 댓글 창을 찾기도 한다.

 

나와 같은 의견을 지닌 댓글을 확인하면 안심한다. 그러나 반대 관점에 좋아요나 공감의 대댓글이 많다면 의구심을 가지다가도 어느 순간 설득당하기도 한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 작품 속 내레이션을 바라보았을 때, 내 생각이 오롯한 고찰에서 나온 것인지 유튜브나 릴스의 댓글을 통해 삽입된 사고인지 판단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시는 완벽을 추구하는 동시대의 입력값과 출력값 모두에 일종의 아마추어리즘적 즐거움을 드러낸다. 자칫 기괴해 보이는 형상들, 작가 정성진의 ‘반합흉상’, ‘반합삼흉상’의 혼종적 정체성은 인간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보편적인 형상을 단호하게 추월하는 불확정한 주체를 드러낸다.

 

무한한 생명성에 대한 상상은 인간의 역할에 관한 질문을 불러일으키고, 변형된 이미지는 정체성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산책자’처럼 잠시 멈춰 완전성 이면에 존재하는 오류를 바라보자. 완전함을 향해 달려가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믿는 세계는 얼마나 견고한지 질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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