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촬영
영화관이라는 해협 속 낯선 즉시성
Guest Visit의 약자로 알려진 GV는 흔히 관객과의 대화라고 불린다. 상영이 끝난 뒤 감독이나 배우가 무대에 올라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종의 Q&A다. 대개 극장의 손님이라고 하면 관객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GV에서의 guest는 관객이 아니라 무대 위에 서는 사람을 가리킨다.
내게 GV는 처음이었다. 감독에게 궁금한 것을 직접 물어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을 품고 예매를 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는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왜인지 질문에 대한 형태를 다듬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머릿속에서 나뒹구는 질문을 정리하는 사이, 다른 이들이 먼저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앞선 질문들에서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처음이었던 GV의 엄숙함 혹은 어색한 공기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보통 나의 경우 영화는 상영이 끝난 후부터 시작된다. 영화관을 나와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작품에 대해 계속 곱씹다 보면, 흐릿한 형체가 질문이라는 뚜렷한 형태로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휘발될 세라 메모장에 오타를 내며 무언가를 적는다. 집으로 돌아와 영화의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한다.
GV는 즉각적인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자리다. 종종 GV 토크 관련 영상을 찾아볼 때면, 그 현장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질문을 했을까에 대해 상상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앉으니,머리가 하얘졌다. 내가 감독도 아닌데 말이다. 전문가에게 던지는 질문은 어쩐지 떨림을 동반한다. 특히 영화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해지고 싶었다.
다른 이들의 GV 경험은 어땠는지 어땠을까. 나처럼 망설이다가 30분이 훌쩍 지나가 버린 사람도 있을지, 혹은 능숙하게 질문을 던지는 '프로 질문러'도 있는지 궁금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면 댓글로 자신의 일화를 나누어주면 좋겠다.
<불타는 초상>, 다큐멘터리, 2021
시네마 천국, 시네마 클럽
1월의 끝자락, 부산에 새롭게 문을 연 서부산영상미디어센터에서 부산-독립-영화 상영회가 진행되었다. 최근 5년 사이 부산에서 제작된 독립영화를 조망하는 자리였다. 상업성과 흥행의 논리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지역의 삶과 감각을 기록해 온 영화들을 다시 바라보자는 목적성을 지닌다.
상영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가 ‘신나리 감독 단편 전’이었다. 〈붉은 곡〉(2018), 〈불타는 초상〉(2021), 〈달과 포크〉(2020), 〈미조〉(2024)까지 네 편의 단편이 상영되었다.
나는 평소 영화를 볼 때 사전 정보를 거의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다른 이들의 감상을 통해 작품을 파악하기 이전에, 영화의 감각과 오롯이 충돌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그날도 작품과 감독에 대한 어떠한 정보 없이 신나리 감독 단편 전(GV)을 예매했다.
GV는 네 편의 단편 상영이 끝난 뒤 시작되었다. GV라 하면 보통 극을 연출한 감독이 직접 상영관에 오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곳에 신나리 감독은 오지 않았다. 오가는 대화 속에서 감독님의 공백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등장하지 않았기에, 그저 의아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대신 영화를 연출한 PD들이 참석했는데, 시간이 마무리되어 갈 때쯤 감독님이 백혈병에 맞서 투병하다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쯤 시네마 천국에 계실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유추해 본다.
<미조>, 다큐멘터리, 2024
여담으로, <미조>는 지역명과 함께 '예쁘게 다듬은 손톱'을 뜻하기도 한다.
미완의, 미완결 완결
신나리 감독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붉은 곡>이 가장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가 끝나고 집에 가는 버스에서도 계속 곱씹게 되는 것은 <미조>였다. 앞선 이유 때문일까. 마지막 상영작인 <미조>의 완결되지 않은 듯한 시나리오는 어쩌면 감독님 자신의 인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미조〉는 경남 남해군에 있는 섬마을 ‘미조’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한 노인이 배를 타는 장면을 따라가며 시작한다. 노인은 배에서 내려 시장으로 향한다. 옷을 구경하고 상인들과 대화를 나눈다. 어느 장면에서는 네일 숍에서 선명한 분홍색 매니큐어를 바르는 손이 화면에 등장한다.
그러나 〈미조〉는 영화 감상에 있어 우리가 익숙하게 기대하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처음의 인물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또 다른 공간과 다른 사람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중심인물도, 분명한 사건도 없다. 카메라는 섬마을 사람들과 풍경 사이를 옮겨 다닌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이 당황스러운 전개가 무엇인지 고민하느라 벙벙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GV에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감독이 처음부터 영화 촬영을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조에 도착한 뒤 “여기는 찍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촬영이었기에 계획된 연출에서는 나올 수 없는, 아침에 휘갈겨 쓴 일기장 속 문장처럼 자유로운 장면들이 이어졌던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을 삭제시킨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다른 사람과 풍경을 비추며 계속 흘러간다. 다큐멘터리의 묘미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듯 〈미조〉 역시 그런 흐름을 그냥 담아낸다. ‘그냥’ 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의도를 향해 달려가기보다 유동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결같았다.
겉에서 보면 각자의 삶은 모두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삶을 살아내고 있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꾸려가고 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는 자신의 삶이 무엇보다 요란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렇기에 단편 속 일상들이 어쩐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달과 포크>, 다큐멘터리, 2020
걸음걸음 여백 맞추기
이를테면 <달과 포크> 속 태피스트리 작가는 방학이 되면 새벽마다 부산 해변가로 향한다. 쓰레기를 줍는다.
집에서는 포크라는 물성을 활용해 실과 실 사이의 공백을 메우고, 달이 뜬 어둑한 시각에는 병원으로 향한다. 누군가의 곁을 지키며 연달아 포크 질을 한다. 그것 역시 실과 실, 혹은 달과 실 사이의 여백을 메우기 위함이다. 그 인물은 이번 GV에서 진행을 맡은 박민경 감독이다. 신나리 감독의 영향으로 단편 영화 감독이 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누룩의 시간>은 신나리 감독에게 채 보여주지 못했다.
미조의 풍경도 그랬다. 분홍 매니큐어를 바르던 손, 밭을 앞에 둔 어느 노인의 집, 그리고 화면 속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감독과 PD의 목소리. 정리되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진 장면들이 하나의 퍼즐을 완성한다. 비록 어떤 조각이 빠져 있더라도 전체 형상을 보면 어떤 그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정확한 길과 정답을 정해놓고 걸어가려 하지만, 그럴 때 예기치 못한 사건이 등장하면 쉽게 방향을 잃게 된다. 그러나 큰 방향성만 정해둔 채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 새 갈망했던 오아시스에 도착해있다.
신나리 감독의 영화는 그런 작품이었다. 20년 넘도록 실을 짜는 일에 열정을 바친 태피스트리 작가가 늦은 나이에 영화 제작을 시작하고, 젊은이들이 떠나가고 인적이 드문 곳에 남겨진 누군가. 그리고 떠나갈 무언가.
영화를 보는 내내 작품 전반이 남겨진 것과 흘러간 것, 사라질 것과 남겨질 것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국 장의사> 스틸컷
병원에 있으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고 순간을 포착하는 일에 몰두했다는 신나리 감독에 대한 일화를 전해 들으며, 무언가를 그렇게나 사랑하는 마음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날 자리했던 PD들은 여전히 감독님의 자리를 대신해 남겨진 영화를 완성하고 있다.
일상을 파고든 감독의 심미안.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가 생각보다 짙은 마음을 이고 지고 돌아온 날이었다.
내 삶 역시 겉에서 보면 이토록이나 평온해 보일까.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