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가 그리는 사랑 [영화]

짧은 시간, 긴 여운
글 입력 2023.08.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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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애매한 자투리 시간이 남을 때, 혹은 침대에 누웠지만 잡생각에 잠들지 못하고 허공만 30분째 바라보고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들지만 2시간짜리 영화를 틀기는 망설여지고 계속 같은 영상이 반복되는 유튜브는 싫증 날 때, 단편영화를 찾곤 한다.

 

그중에서도,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장르의 특성을 살려서 개성 있는 작화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동시에 길고 따뜻한 여운을 준다. 10분 이내의 짧은 러닝 타임을 갖지만, 오밀조밀한 장면 연출을 통해 다양한 소재를 매력적으로 담아낸다. 이러한 애니메이션의 특장점을 살린 작품 3편을 추천하고자 한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국내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들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 The Starry night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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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에>는 한 노인과 반려견의 이야기다.

 

간단한 짐을 꾸리고 옛 고향을 향해 여행길에 나선 노인은 사랑했던 여인의 잔상을 마주한다. 함께 바닷바람을 맞으며 길을 거닐고, 맑은 물속에서 수영을 하고, 별이 빛나는 창가를 바라보며 소파에서 잠들던 순간들을 새록새록 떠올린다. 반려견과 함께 일찍이 세상을 떠난 여인을 그리워하는 노인의 여정이 애틋하게 그려진다.

 

화려한 그래픽과 색감 대신, 부드러운 그림체와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 우쿨렐레 연주가 따뜻함을 더한다. 바닷가, 정원, 술집의 테라스가 어우러지는 골목 풍경은 유럽의 작은 지중해 마을을 떠올리게 하고, 노인의 추억이 깃든 장면들은 금빛으로 빛나며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소 단순한 플롯을 갖지만, 다정한 셋의 모습과 배경 요소들을 통해 한여름 밤의 꿈을 꾸는 듯한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노인의 표정은 내내 덥수룩한 수염에 가려 보이지 않고, 대사도 한 마디 없지만 이내 인물의 감정에 이입하게 된다. 특히 바닷가 모래사장에 누워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던 노인 위로, 여인의 형상을 띤 별자리가 쏟아지는 장면은 긴 여운을 준다.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던 그리운 기억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새겨지는 순간을 느끼고 싶다면 감상해 보기를 바란다.

 

 

 

시즌스, Season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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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스>는 사랑의 과정을 사계절의 흐름에 빗대 표현한다.

 

봄에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던 식물이 봄과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진 후, 붉은빛의 꽃을 만개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 식물을 변색하게 만드는 가을, 눈과 혹한으로 생명을 얼리는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꽃은 끝내 사라진다. 한 해가 지나고 나서 다시 돌아온 봄은 꽃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있는 나비를 보며 꽃을 그리워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의인화한 수준 높은 그래픽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각 계절을 상징하는 네 캐릭터의 뚜렷한 외형과 특징이 도드라지며 흥미를 더한다. 파릇한 싹, 따가운 햇볕, 새빨간 낙엽, 눈의 결정 등 계절의 대표적인 상징이 깃들어 있는 캐릭터들의 이미지와, 계절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배경음악을 통해 작중 세계에 대한 생생한 상상을 가능케 한다.

 

자연과 시간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봄과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고대하며 온 힘을 다해 매서운 추위와 폭풍에 저항하는 꽃의 모습이 그려진다. 봄이 남기고 간 사랑의 징표인 나비를 껴안은 채 꽃이 온갖 고난을 버텼듯, 우리가 절망과 좌절에 맞설 수 있게끔 힘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사랑임을 느낀다.

 

 

 

러브 스파크, Love Spark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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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파크>는 한쪽 핀이 짧은 외톨이 플러그의 이야기를 그린다.

 

여느 플러그들은 전구가 달린 소켓들 중 자신의 짝을 찾아 함께 빛을 내며 하늘로 떠오르고 있다. 어떤 소켓과도 맞지 않는 외톨이가 할 수 있는 건, 잡동사니 가득한 어두운 방에서 홀로 각양각색의 전구들을 만들며 자신의 짝을 기다리는 일뿐이다. 머지않아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처한 덩치 큰 소켓을 만나지만, 그 역시 처음에는 외톨이의 짧은 핀을 보고 달갑지 않아 한다.

 

하늘로 날아가는 이들을 부러워하던 둘은 연결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설상가상 전구까지 깨지고 만다. 절망에 빠진 소켓을 보고 고민하던 외톨이는 직접 만든 알록달록한 별 모양 전구와 조명들을 그에게 건넨다. 남들과 모양이 다르다면, 남들과 다른 전구를 끼우면 되는 법. 별 전구를 끼우고 조심스레 다시 연결을 시도하자 결합한 몸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내 그들의 조명 빛이 공중에서 오색찬란하게 발광한다.

 

플러그 그리고 소켓, 두 물체에 완벽하지 못한 우리들의 모습이 투영된다. 우리 모두는 결핍을 갖고 있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결핍을 받아들이거나 극복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 준 타인을 만나고 그와 서로 의지하게 될 때, 우리는 다시 일어서서 날아갈 힘을 얻는다. 남들과 다르다면,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이겨내라는 진심 어린 응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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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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