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수자와 다수자의 구분이 없는, 질 들뢰즈의 ‘리좀 Rhizome’

글 입력 2023.11.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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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들뢰즈가 주장한 리좀적 체계는 단일한 중심이 되지 않는, 비중심화된 세계이다. 리좀적 체계에서는 어느 부위가 본질적이며, 어느 부위가 부차적인지 한 눈에 구분되지 않는다.

 

리좀적 사유는 탈중심적, 탈위계적, 수평적 특징을 가지며, 리좀적 사유 모델은 소수자적 사유의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리좀적 체계는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는 체계인 동시에 무엇과 마주치고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전체의 규모와 의미가 변화하는 가변적 체계이다.

 

현대 사회에서 소수자들의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리좀의 중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다수자들을 중심으로 한 중심적 세계가 아닌 비중심화된 세계, 즉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리좀적 체계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리좀적 체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소수자들의 목소리와 그들에 대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정도에 비해 그들에게 눈길 한번조차 주지 않는 듯하다. 국회 앞에서는 늘 천막농성과 1인 시위가 진행되곤 한다. 이들은 항상 소리치며 자신의 권리를 알아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이 주변을 지나가는 시민들은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소리치지 말라,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시위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방법만이 그들의 유일한 호소 방법임에도 그 방법을 쓰지 말라하는 것은 그들에게 이야기할 마이크를 넘겨주지 않겠다는 뜻과도 같다. 즉, 소수자들에 대한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면 다수자의 목소리는 어떠한가? 그들은 소리치지 않는다. 그들은 소리치지 않아도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온갖 기사가 실리고, 그 기사를 많은 국민이 본다. 그들의 목소리는 소수자들과 달리 파장이 크다.

 

한창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가 논란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 탑승 시위로 인해 열차 운행에 지연이 발생하자 많은 이들은 비장애인들에게 민폐다, 장애인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해야겠냐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전장연이 과격한 시위를 벌이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그들에게 지금만큼 관심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소수자들의 이야기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방식으로라도 사람들에게 인상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주장하는 권리를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다.

 

이들의 시위 방법은 리좀적 체계로 나아가기 위한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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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젠더 갈등도 큰 화두에 오른다. 특히 20~30대 사이의 젊은 세대에서 젠더 갈등이 심하다.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하루에 몇 번이고 성별을 나눠 갈등을 조장하는 글,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는 글이 올라오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젠더 갈등 또한 우리 사회가 리좀적 체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젠더 갈등도 현재에 비해서는 확실히 적었다. 과거에 젠더 갈등이 없던 이유는 사회의 소수자였던 여성이 다수자인 남성과 소수자인 여성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인지하고 있음에도 자신들의 권리를 소리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젠더 갈등은 소수자인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소리치고, 행동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따라서 젠더 갈등이 없던 과거와 젠더 갈등이 있는 현재를 비교했을 때 갈등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예전이 좋았다, 평화로웠다고 말할 수 없다. 현재 우리는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냈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어야 한다. 현재의 젠더 갈등이 발생하는 과도기를 지난 후 젠더 갈등이 완화되고 평화로워질 때, 우리는 진정한 리좀적 체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국회는 우리 사회에서 다수자들의 집합소이다. 국회 의석 수 300자리 중 우리 사회의 소수자인 여자와 장애인의 자리는 얼마나 될까? 국회 내에서 비교했을 때 거대 정당에 비해 비교적 소수자의 위치를 갖는 소수정당과 무소속 국회의원 의석만 파악하더라도 15자리이다. 이는 전체 의석의 5%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여자와 장애인 국회의원의 모습은 더욱 보이지 않는다. 소수자들의 입지가 과거에 비해 넓어진 것은 사실이나, 아직까지는 다수자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이러한 모습은 아직 사회가 다수자와 소수자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과제는 다수자와 소수자의 차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사이에서도 다시 다수자와 소수자로 나뉘는 것처럼 우리는 맥락에 따라 자신이 다수자가 될 수도 소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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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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