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술인 복지정책 (2), 대한민국에서 예술인으로 살아가기

글 입력 2024.02.2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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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 제1조에서는 예술인의 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를 보장하여 예술 발전에 이바지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현재 법적인 조항 아래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예술인 복지는 사실 문화예술 분야에서 고려되어 오지 않았으며, 창작자인 예술인보다는 주로 그들이 제작한 창작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 시기만 해도 문화예술 창작자는 노동자로 인식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의 근로기준법에 의거했을 때, 예술인 근로관계의 명확성을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예술의 길로 간다는 건, 배고프고 가난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으로 비추어졌고, 창작활동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는 게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졌다.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는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지만, 법률에 명시돼있는 권리에 대한 부분은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어 법적 보호에서 떨어진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2011년,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인의 허망한 죽음과 예술 활동을 창조 노동(creative work)으로 인식하면서, 예술인 복지가 쟁점화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예술을 노동이라 주창한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출범을 기점으로 예술인 복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거쳐 시행되는 동시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2012년에 설립되면서, 예술인 복지를 위한 기반 마련이 본격화되었다. 이를 통해 예술인은 국가적 차원에서 예술인 산재보험 및 예술활동증명, 표준계약서 등 제도화된 지원을 수혜받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게 되었다.


제도의 도입 및 적용에 더하여, 2017년에는 예술인들이 문화예술노동연대를 결성 및 ‘문화예술인 노동자선언’을 통해 문화예술인이 모든 법과 제도 밖에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문화예술노동연대가 선언에서 제기한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예술인 복지법에 따라 사업을 시행해 왔으며, 2023년 기준 16개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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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복지 지원은 예술인 복지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사항을 5가지 영역(창작역량 강화, 직업역량 강화, 불공정 관행 개선, 사회안전망 구축, 기반조성)으로 분류함에 따라 시행되고 있다. 해당 기관의 지원을 통해 예술인 신문고는 신고사건 1,474건에 대한 조치를 취했으며, 예술인 성폭력 피해 신고·상담에 따른 심리적, 법률적 지원을 행해왔다. 또한 예술인 68,347명을 대상으로 권리보호 교육을 실시했다. 예술인 자녀돌봄 지원의 경우, 연간 이용자 수가 2014년 1,563명에서 2022년 4,826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는 2020년 12월, 예술인을 적용 대상에 포함한 3년 만에 가입자가 21만 명에 다다르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게만 적용되었던 제도에 예술인도 포함되면서, 고용 및 생활 안정의 측면에서 수혜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문화예술 창작자의 많은 피해가 있었던 불공정 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서면계약 체결률을 대폭 확대하기도 했다. 이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복지예산은 2018년 278억 원에서 2022년 1,020.8억 원으로 3.7배 증가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성과 달성뿐만 아니라, 예술인 복지법을 시행 및 확대하여 예술인 복지 지원에 힘써왔다는 점에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활동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술인의 창작활동 증진 및 예술발전에 이바지해야 하는 「예술인 복지법」의 목표로 볼 때, 예술인 복지 지원 추진현황은 창작활동의 증진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경제적 지원이나 계약, 권리보호 등 기본적인 토대 마련에 집중되어 있다.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의 추진배경에서는 지금까지의 복지정책이 예술인의 창작 활성화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한 연결고리가 부재한 상황임을 명시한다. 부재를 개선해야 하는 당위성을 명시한 동시에, 유네스코에서 선포한 「문화예술인의 지위에 대한 권고」를 따르는 확장된 범위의 제도가 필요함을 덧붙이고 있다.

 

유네스코는 앞선 20세기 말, 예술과의 긴밀한 관계를 위해 창작활동의 중요성을 논의하였고, 1980년 제21차 정기총회에서 「문화예술인의 지위에 대한 권고」를 만장일치로 채택 및 제도에 대한 사안을 체계화하여 최초로 문서화했다. 전문과 9개의 장으로 구성된 본 권고는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위한 모든 항목을 망라하며 예술과 사회의 관계, 예술인의 지위보호 및 직업훈련에 대한 내용을 담고있다. 유네스코의 권고는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국제적 기준의 틀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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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F.A.I.R.) 복지정책’을 핵심으로 하는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 2023, 13쪽.

 

 

불과 10여 년 전 촉발되어 이어져 온 예술인 복지법은 2023년 1월, 역대 정부 최초로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이 수립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2023년부터 2027년까지 향후 5년간의 계획을 통해 창작 주체인 예술인을 고려하는 장기적, 수요자 중심 법안을 수립했다. 본 법안은 ‘공정한(F.A.I.R.) 복지정책’을 핵심으로 예술인의 지속 가능한 창작환경 조성과 삶의 질 개선이라는 목표하에 이전의 정책을 보완하면서 4개 전략과 13개의 세부과제를 담은 종합적인 예술인 정책으로 확장되었다.

 

예술인 복지정책의 비전은 ‘문화매력국가의 기반, 예술인이 존중받는 사회’다. 비전의 기반은 작년, 문체부에서 발표한 세계일류 문화매력국가로의 도약을 위한 새 정부의 업무계획에서 비롯되었다. 다섯 가지의 큰 카테고리로 분류된 업무계획에는 예술인 지원에 대한 사안이 포함되어 있다. 자유의 가치와 창의가 넘치는 창작 환경을 만들겠다는 계획하에 젊은 예술인 및 경력단절 예술인 지원, 인재 양성, 기초예술 지원 확대, 예술인과 예술기업의 협업 등을 내세웠다.

 

또한 문화매력국가 목표의 맥락에서, 문체부는 문화활동의 걸림돌이 되는 대표적 규제 5가지를 선정 및 개선을 추진하였는데 여기에는 예술인의 예술활동증명제도 심의 절차에 대한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은 문체부 업무계획과 대표적 규제 5가지가 발표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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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의 비전 및 전략 체계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 2023, 14쪽.

 

 

4개 전략과 13개의 세부과제로 구성된 기본계획은 예술인을 법적으로 보다 명확히 정의하기 위해 법적 정의를 규정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를 위해 예술인 복지법 제2조(정의)를 개정해 복지 대상을 명확히하고자 했다.


 

 

전략 1

자유로운 예술활동을 위한 법·제도 개선

 

 

전략 1에서는 예술인을 크게 ‘예술인’과 ‘예술활동증명 예술인’으로 구별하고, 예술활동증명을 받지 않은 ‘예술인’도 수혜자이자 직업적 권리보호 대상으로 지정했다. 예술인 정의의 개정과 연계하여 예술활동증명 제도를 개선하기도 했다. 정의 개정 전, 예술강사의 경우 계약의 형태상 예술활동증명 대상에 해당하지 않았다. 이에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예술교육지원 등의 활동을 하는 자들까지 예술인 개념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한 예술 활동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3년 또는 5년마다 갱신된 활동 사항을 증명해야 했다. 절차의 복잡성, 증명까지 소요되는 6개월의 시간과 더불어 경력단절 및 신진 예술인은 충족하기 어려운 시스템적인 이슈가 존재했다. 이에 기본계획에서는 예술활동증명 제도를 개선해 증명 기간을 5년 단위로 일원화하고, 20년 활동 이후에는 재신청을 면제하여 비효율적인 과정을 개선하고자 했다. 예술활동증명을 심사하는 처리기관은 지역으로 분산해 심사 처리를 약 12주로 줄이고자 하였다. 

 

증명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예술인이 본인의 경력을 확인할 수 있는 확인 시스템으로 전환해 ‘예술활동확인제도’로 운영하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예술인 신문고를 통해 이루어져 온 성희롱·성폭력 피해관련 신고 및 상담 및 피해지원의 경우, 3종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예술인 실태조사를 개편해 예술인 권리보호 및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부문을 신설함으로써 예술인의 종합 실태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 실태조사의 결과는 데이터로 활용되어 예술인의 직무체계 분류와 지원정보 플랫폼 활성화에도 활용될 계획이다. 


 

 

전략 2

예술활동의 지속을 위한 안정적 삶의 기반 조성

 

 

전략 2는 맞춤형 복지 서비스의 지원으로 예술인이 예술 외적인 요인에 구애받지 않고 창작을 지속해나갈 수 있도록 제도를 수립했다. 기존부터 시행해 왔던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를 정착하고, 홍보와 상담을 강화해 가입자 및 수혜자를 확대하고자 했다. 예술인 고용보험 시행 3년 차인 11월 말 기준, 가입자는 총 20만 7,063명으로 방송·연예(35.6%) 분야의 신고 건수와 20대 이하(38.5%) 수혜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된 상황에서 제도의 정착 및 확대는 필요해 보인다. 

 

이외에도 재해보상에 관한 예술인 산재보험과 심리상담 제도를 보완·개선하고, 무용 예술인 중심의 의료비 지원이 고려되었다. 사회보험료 및 금융서비스를 지원하는 계획과 공공임대주택을 활용해 서울과 전주, 밀양, 부천에 생활·창작공간을 설립하여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하는 사업도 국토부와의 연계로 시행되고 있다. 기존에는 생활안정자금의 측면에서 생활공간 지원만 추진되었다면, 예술인에게 중요한 창작공간의 안정화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창작준비금과 같이 경제적 지원과 관련한 정책에서는 사후관리에 대한 절차도 포함되었다. 활동보고서 관리 강화를 통해 수혜 이후의 결과를 보고하고, 보고된 결과로 창작준비금 지원 정책의 방향성을 정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4개월에서 10세까지의 예술인 자녀돌봄을 지원하는 정책은 주말·야간 돌봄을 제공하는 시간대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재 예술인 자녀돌봄을 수행하는 기관은 대학로와 마포 총 2곳으로 서울 내에서의 기관 확보에 더하여, 지방에서의 운영도 빠른 시일 내에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전략 3

예술인 권리보장 체계 확립 및 공정환경 조성

 

 

전략 3은 예술인 권리침해와 관련한 신고대상 범위를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예술인 권리침해 신고 건은 2023년 8월 말 기준, 163건으로 수익 및 불공정 계약과 관련한 신고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신고 이후의 조치에 대해서는 사건 대비 조사관의 낮은 수로 늦은 검토로 인한 실질적인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기존의 정책이 불공정 계약에 대한 신고와 전자계약 서비스 지원으로 이루어졌다면, 범위 확대에 따라 표현의 자유, 성희롱, 불이익조치, 예술인조합 활동 방해 등으로 피해지원 체계가 개편되었다. 불공정 계약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서면계약 문화를 정착하는 새로운 시도도 도입하였다. 현역 예술인으로 제한되었던 권리보호 교육은 예비예술인과 장애예술인으로 확대되어 유형에 따른 교육콘텐츠가 다양하게 개발될 예정이다.

 

 

 

전략 4

예술인 역량 강화와 예술의 가치 확산

 

 

전략 4는 기존의 예술인 파견지원 ‘예술로’를 세분화하여 추진하고자 했다. 리더예술인, 참여예술인, 참여기업 및 기관으로 분류되던 인력을 단계별 지원 정책으로 바꾸어 예비예술인(예술대 재학생), 신진예술인(진입초기), 한국예술창작 아카데미(안착) 총 3단계의 점진적인 구성으로 구성하였다. 단계별 과정에서 참여기업 및 기관과의 연계를 통한 인턴십과 일자리를 지원해 과정과 결과가 유의미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예술인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강화를 위한 대국민 캠페인을 전개해 국민이 예술인 복지를 인식하고, 예술 후원을 통해 정책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고자 했다. 일반시민 200명, 문화예술인 3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복지사업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예술인 복지사업 재원 마련 방법에 대한 답변으로 ‘자체적으로 수익 사업을 마련해야 한다’가 39%로 가장 많아 예술인복지법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으로는 기부를 통한 재원 마련 방안(예술계의 기부 28.5%, 민간 부문의 기부 27%)이 뒤를 이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예술인 복지가 개인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였다.

 

더하여,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 게시물 225건(2023.1.1.~4.27.)을 조사한 결과, 예술정책 관련 보도자료는 단순 행사성·홍보적 차원을 제외하면 빈도수가 10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로 보았을 때, 수립된 정책에서 일반시민의 인식도를 제고할 방안을 마련하였다는 것은 이전의 한계를 반영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예술인의 복지 문제를 들여다보는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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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전략을 총괄하는 추진체계는 범정부 차원의 협력적인 예술인 복지정책 네트워크 강화를 궁극적인 방향으로 설정하였다. 기본계획을 총괄하는 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예술인 복지정책을 시행해오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중간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지정하였다.

 

지역 단위에서도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 지역예술인 복지 종합지원 센터를 설립하여 공공기관 및 유관 부처와의 협력을 통한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하였다. 문화예술 기관뿐만 아니라 고용부, 복지부, 국토부, 통계청 등 8개의 유관 부처가 협력함으로써 업무량의 분담과 다양한 차원에서의 고려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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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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