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군중 속 고독 - 아! 몰라 Overlook-Overwatch

글 입력 2023.11.22 13:1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아!몰라-Overlook-Overwatch 포스터.jpg

 

 

지난 11월 16일,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댄스 프로젝트 Tan Tanta Dan(안무 최진한)의 <아! 몰라 Overlook-Overwatch>가 올랐다.

 

2020년에 초연하여 이번은 세 번째 공연으로 작품의 주제는 같지만, 매번 표현과 내용은 바뀌어 오른다. 안무가 최진한은 개인과 집단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양면적인 마음을 담아내고자 했다.


전체적으로 각각의 구성요소를 보는 재미와 쾌감이 큰 작품이었다. 반대로 서사성이 짙지 않은 공연이었기에 장면과 장면 사이의 관계와 이야기를 느끼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극적인 요소는 짧은 순간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충분했는데, 그중 개미의 외침이 그랬다. 공연 중 느꼈던 놀라운 퍼포먼스는 혼자의 기억으로 남겨두고, 공연을 보며 상기시킬 수 있었던 최근의 고민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걱정을 곱씹어 보고 감상한 흔적을 써 내려가 본다.

 

 

[700]KakaoTalk_20231122_130711016.jpg


  

까만 무대 위 민첩하게 기어가는 하나의 생물체를 바라본다. 그 움직임은 사람의 것이 아니다. 가느다란 다리와 봉긋하게 솟은 등, 엉덩이에서 헐렁거리는 조각은 척 봐도 개미를 떠올리게 했다.

 

샤샥거리며 끝에서 끝으로 기어가는 개미. 움직임이 너무 사실적이고 징그러워서 몸 구석구석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평소 생각하던 개미의 인상과는 다르게 그 움직임을 괴상하다고 느끼며 그와 비슷한 대상으로 바퀴벌레를 떠올렸다. 그렇게 개미는 지나가고 무대는 빨간빛으로 물든다.


무수히 많은 개미가 나와서 춤을 춘다. 이들은 똑같이 움직였다가도 어느새 보면 한 두 마리가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 비슷한 것 같다가도 잠시 뒤면 다른 대형을 하고 있고,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였다가도 떼어졌다 붙기를 반복하면서 개미 집단에는 끊임없이 변화가 생긴다.

 

조금씩 다른 움직임을 찾아내면서 전체의 구성을 바라본다. 마치 틀린 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시야를 넓혀 보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단 한 마리의 개미에 집중한다.

 

 

Overlook-Overwatch 사진_2021-4.jpg

사진 ⓒBAKI

 

 

개미들은 하나의 무리에 종속되어 있다. 그리고 두 마리씩 만나 합쳐진다. 그러고는 다시 바닥으로 가 합체된 몸을 떼어내고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그 모습은 번식처럼 보였다. 개미들은 수없이 합쳐졌다가 두 배로, 네 배로, 여덟 배로 번식하며 탄생을 반복한다.


장면이 전환되고, 몇 마리의 개미만이 무리를 지어 춤을 출 무렵 하나의 목소리가 무대를 채운다.

 

“저기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큰 동굴 안에 있는 듯 둥글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완벽히 혼자였다. 주변에 사람이 많은데 목소리는 어두운 독방에 갇힌 것처럼 홀로 있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은 외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찾는다. 40대에서 50대 언저리의 여성처럼 들리는 목소리는 나의 어머니나 옆집 이웃을 생각나게 했다.


그 정겨운 목소리에 다가가고 싶지만, 관객으로서 몸을 움찔댈 뿐이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자, 목소리는 더욱 처연해진다. 나는 슬슬 그녀가 처한 상황이 궁금해진다. 도대체 무슨 부탁이길래 아무도 들어주질 않는 걸까.

 

“거기 아무도 없어요? 옆에 핸드폰이 떨어졌는데, 조금만, 조금만 손을 뻗으면 되는데.”

 

아. 그 정도의 부탁이구나. 그러나 목소리는 끝내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는 파묻힌다. 수많은 인파 속 고독하게 외치던 개미는 목소리로만 존재했다가 무대 위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곤 다른 개미 무리에 의해 덮치듯 사라지고 묻혀버린다. 몇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지하철에서 있던 일들을 떠올리며 내가 겪고 보았던 여러 광경과 사건들을 훑어본다.

 

 

Overlook-Overwatch 사진_2021-2.jpg

사진 ⓒBAKI

 

 

3~4년 전 대학에 다닌 시절에는 지하철 역사에서 늦은 밤 술에 취해 누워있는 여자를 보고 걱정이 되어 다가가 깨웠다. 벤치에 누워있던 사람을 일으키고 집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몇 주 전 지하철에서 봉을 잡고 힘겹게 서 있던 한 여자가 내 옆에 앉았을 땐 불안한 눈빛으로 흘긋흘긋 쳐다봤다. 금방이라도 토하면 어쩌나 싶은 마음으로 엉덩이를 들썩였다. 다른 자리로 옮길지 고민하는 찰나에 한 여자가 다가와 그녀의 앞에 섰다. 뭔진 몰라도 지켜보려는 것 같았다. 그 잠깐동안 어딘가 불편한 감정을 느껴버린 나는 일어나려다 포기하고 불편한 자세로 내릴 때를 기다렸다.


개미의 외침은 나에게 타임랩스를 건 것처럼 과거의 두 시간으로 데려다 놓았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했고,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군중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간단한 도움도 요청하거나 받기 어려운 요즘이니 말이다. 이젠 단순한 도움을 행할 때도 나의 안위를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 우선한 순서가 되었다.

 

두 달 전에는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한 사람의 눈에 띄는 행동이 흉기 난동으로 오해받아 약 20명의 승객이 다치는 사건이 있었다. 사람에 대한 의심, 공포가 확산하면서 개인의 무의식에 단단히 뿌리내린 것처럼 보였다. 이제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간에서도 긴장하고 의심하게 된 것이다.

 

 

Overlook-Overwatch 사진_2021-3.jpg

사진 ⓒBAKI

 

 

그렇게 개미 무덤이 사라지자 두 개미가 나와 한 곳을 향해 기어간다. 한 마리는 아주 느릿느릿 기어가고, 한 마리는 서서 격렬하게 뛰어나간다. 그러나 둘의 속도는 같다. 둘은 정반대의 에너지로 나아가지만, 같은 속도로 가고 있다.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속도를 바꾸어 가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한다.


아주 천천히 기어가는 개미 뒤로 애써서 힘겹게 뛰어 걸어 나가는 개미를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이미지는 청년이었다. 고군분투하며 매 순간을 초 단위로 격하게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청년들의 속도는 노력에 비해 느려 보이거나 느린 것처럼 느껴진다. 땀을 닦으며 뛰어나가도 실제 몸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굴에 도달한다. 어딘가 씁쓸해지는 감정이 들었다.


굴속으로 들어갔던 두 개미는 무리 지어 일렬로 들어가는 개미들에 의해 공간을 침범 당한다. 그러나 잠시 뒤 개미 무리는 두 마리의 머리에 밀려나온다.



Overlook-Overwatch 사진_2021-5.jpg

사진 ⓒBAKI

 

 

댄스 프로젝트 Tan Tanta Dan 의<아! 몰라 Overlook-Overwatch>는 심도있는 연출과 구성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인간의 개미화는 사실적이다 못해 징그러워서 몸을 부르르 떨게 했고, 단체 안무의 디테일은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수선하지 않게 딱딱 떨어지는 안무 자체에 대한 놀라움을 보는 재미가 있으면서도 서사의 흐름 없이 장면 장면이 구성되는 과정을 해석하는 재미가 있었다.

 

공연을 보며 떠올리던 짧은 단상들을 풀어내다보니 공연의 순간이 또렷이 지나간다. 독특한 충격과 신선함을 주신 댄스 프로젝트 Tan Tanta Dan(안무 최진한)에 감사의 박수를 전한다.

 

 

[700]KakaoTalk_20231122_130711016_14.jpg


 

++

인간들의 권태와 소음 속에 시간만 그을음처럼 짙어져 간다. 

(황폐한 도시) 불통의 사회, 망각의 이 땅 위에서 

비는 내리고 다시 물이 되어 고이고 고여 

서슴없이 우리의 가난한 가슴팍으로 밀려든다.

계절은 또 떠나가고 세월도 떠나고

원초적 순환의 공간속에 내 영혼을 찾으려 허덕이다

이제서야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발견하고

한동안 (무심히 바라보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팔을 뻗어 잡은, 내가 알고 지내던

너의 모습은 어디로 떠나고 낯설게만 느껴지는가

저 차가운 시선은 가면 속 따스함의 거짓을 알기 때문일까

나는 외톨이가 될 것이다.

스쳐 가는 것들이 던져 주는 납덩이 같은 체념의 무게 결코 영원하지도 않을 감각으로 뭉쳐진 단백질인걸 깨닫고 무기력한 생물적 굴레의 침묵속에서 잠을 깬다.

끝이 닿지않는 미궁을 헤메다 채워지지 않는 빈가슴으로

결국은 사육되지 않으려고 굶주린 영혼을 부축하며

해를 향해 얼굴을 들어본다.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멋쩍은 웃음을 건넨다)

 


[김예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