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즐거운 나의 집 만들기 프로젝트 [영화]

글 입력 2024.03.2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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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영화 가여운 것들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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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것들 ; POOR THING 


 

영화를 보면 남의 집을 구경할 수 있다. 다들 어떻게 생활하는지 혼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 궁금하지 않은가. 섣불리 남의 집을 방문할 수 없기에 영화에서 집이 주는 의미는 캐릭터 자체에서 나아가 하나의 생활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스크린으로 맡을 수는 없지만 한 캐릭터가 집에 들어서면 그의 냄새로 가득 찬 듯한 느낌을 받는다. 대개는 사람 냄새 가득한 따뜻한 공기가 느껴지지만 <가여운 것들>(2024,요르고스 란티모스)에서의 집은 소독약 알코올 냄새가 스치듯 날 것 같다. 실험실 같은 집에서 걸음마부터 대화하는 것을 배운 벨라 벡스터는 덩컨 웨더번을 따라 집 밖을 나가 세계 각지의 호텔들을 전전하며 세상 냄새를 맡는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냄새가 가득 찬 즐거운 나의 집을 꾸리는 여정을 담고 있다. 


원작 소설은 맥스 맥캔들리스의 입장에서 덩컨과 벨라의 편지 속 입장 차이로부터 발생한 진실의 부재를 감안하고 그들을 관찰했다면 영화 <가여운 것들>은 벨라의 성장 서사를 뚜렷한 직렬의 형태로 진실의 부재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극의 초반부 맥캔들리스가 벨라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것처럼 과한 광각렌즈와 줌인 편집을 통해 관찰자 시점으로 벨라 중심의 모든 등장인물을 실험체와 같이 바라보게 한다. 흑백과 컬러의 편집기법으로 그녀가 갇혔던 삶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며 벨라의 거주지가 변화할 때마다 그녀의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한다. 유럽 여행 중 혼자 바깥세상을 바라볼 때는 보랏빛 하늘에 케이블카가 날아다니는 광경이 펼쳐지며 꿈의 세계 같아 보인다. 현실을 처음 마주하는 비현실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준 뒤 매음굴 시퀀스부터 현실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주어 심정의 변화가 극대화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벨라는 눈에 띄게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관객은 실험체의 변화양상을 관찰하게 된다. 그렇기에 벨라와 주변인에게 직접적인 공감을 자아낼 수는 없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인간의 성숙 과정을 바라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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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의 여정 1) 벡스터의 집


  

궁궐 같은 집 안에는 시체들이 즐비하고 개닭, 돼지닭처럼 이상한 생명체들이 있다. 그들만의 체계 속에서 창조주의 역할을 하는 고드윈 벡스터는 투신자살한 빅토리아의 태아를 꺼내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몸에 이식한다. 그녀는 자기 아이의 뇌를 가진 벨라 벡스터가 되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벨라는 25살의 몸으로 걸음마부터 식사, 대화를 배운다. 고드윈 벡스터(벨라는 GOD윈 벡스터라고 부름)에게 시체 해부를 배우며 조수활동을 하는데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때면 아동기, 청년기의 성적 욕구를 유독 심하게 겪는다. 

 

그녀의 성적 욕구는 프로이트의 아동발달단계(구강기,항문기,남근기,잠복기,생식기)로 설명가능하다. 벡스터의 집에서 그녀는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의 혼란스러운 발달 과정을 겪는다. 입, 혀, 입술 등 구강에 집중하며 쾌감을 얻다가 대소변을 통해 쾌락을 느끼는가 하면 정신에너지를 성기에 집중시켜 쾌락을 느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현재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여러 남자들을 이용한다. 

 

바깥세상의 사람들과 삶이 궁금하지만 자신을 돌봐주는 고드윈 벡스터는 이를 막는다. 그녀를 끔찍히도 가엾이 여긴다는 핑계로 동료 의사 맥스 맥캔들리스와 약혼을 추진하고 그녀가 떠나지 않도록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벨라는 우연히 만난 덩컨 웨더번을 따라 세상 바깥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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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의 여정 2) 호텔


 

덩컨 웨더번과의 유럽 여행 초반, 벨라는 그동안 벡스터의 집에서 자유를 억압받던 삶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여행을 즐긴다. 마차 안에서 스쳐 지나가던 거리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세상을 관찰한다. 호텔 숙소에서는 틈만 나면 일명 ‘뜨거운 뜀박질’을 해댔으며 식욕, 성욕, 수면욕 등 본능으로 가득 찬 하루를 보낸다. 웨더번조차 그녀를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남근기에 해당하는 발달 단계로 벨라의 머릿속에는 성적충동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자유를 경험하는 벨라가 못마땅했던 덩컨 웨더번은 벨라를 억지로 싣고 크루즈 여행을 시작한다. 배 안에서 그녀는 성적충동에만 앞선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의문을 푸는 사람이 되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뜨거운 뜀박질을 하러 가자고 해도 책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하는 등 지적 활동에 에너지를 집중시킨다. 벨라의 변화에도 이미 몸과 마음 모두 그녀에게 빼앗긴 덩컨 웨더번은 결혼을 하자고 졸라댔고 벨라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자신은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고 당신이랑은 재미를 보려는 거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책을 읽는다. 남근기에 머물러 있는 덩컨을 지나 잠복기에 돌입하여 지적 만족을 줄 수 있는 대화가 더 재밌어진 것이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 법을 알게 된다. 앞서 호텔에서 우는 아이를 한 대 때리려고 시도했듯이 벨라는 자신에게 거슬리는 것은 다 치워버려야 했으나 어느덧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에 깊은 공감을 느끼고 가여움이라는 감정을 처음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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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의 여정 3) 매음굴


 

벨라는 덩컨 웨더번과의 헤어짐과 동시에 매음굴에서 매춘을 하며 파리에서 산다. 뜨거운 뜀박질도 하면서 돈까지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더할 나위 없이 오케이를 한 것이다. 직접 돈을 벌고 삶을 꾸리지만 남성에게 선택 당한 사람은 호불호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행해야 하며 다양한 변태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일이 끝난 뒤 친구와 해부학 수업, 사회주의 공부를 하며 지적 탐구를 병행한다. 발달단계 중 성숙기에 접어든 벨라는 앞 단계에 잠복되어 있던 성 에너지가 무의식에서 의식의 세계로 나와 성적 욕구와 지적 에너지의 탐구욕이 함께 발현된 것이다.

 

벨라는 덩컨과 유럽 전역을 여행하고 매음굴에 있을 때도 종종 벡스터에게 편지로 그녀의 소식을 전했다. 벡스터의 집에서 벨라에게 반했던 맥캔들리스는 그녀의 과격한 소동에도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벨라는 벡스터가 죽어간다는 전보를 받고 급하게 벡스터의 집에 왔다. 벡스터의 건강악화로 인해 맥 캔들리스와 벨라는 결혼식을 빠르게 진행하려고 하지만 결혼식 도중 그녀는 빅토리아로서의 과거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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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의 여정 4) 블레싱턴 경의 집


 

벨라 벡스터로서 살기 이전의 삶으로 살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덩컨과의 여행, 매음굴에서의 생활에서 늘 의문이었던 그녀의 과거이기에 맥스 맥캔들리스와의 결혼을 취소하고 빅토리아 블레싱턴으로서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과거는 임신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이 다가 아니었다. 커다란 집에서 장관이 귀가하기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며 외출도 허락 없이는 불가했다. 괴팍한 취향을 가진 장관은 하인들을 총을 휘두르며 악랄하게 하인들을 괴롭힌다.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장관의 집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이전의 삶에서도 그 시절 상류층 여자들의 조신함을 갖추기 보다는 성적 욕구를 드러내 왔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성적 욕구는 프로이트의 아동발달단계에 따라 성장해 간 점도 분명히 있으나 유전적으로도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벨라는 이전의 빅토리아가 아니기 때문에 장관에게 쉽게 휘둘리지 않고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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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의 여정 5) 벡스터의 집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집주인인 고드윈 벡스터가 유독 가엽게 느껴진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정신적, 신체적 실험체로서 학대당했다. 얼굴이 조각나있고 소화기관, 성기도 제 기능을 못 한다. 유능한 과학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감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버지를 원망한다는 감정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시체를 해부하고 고치는 의학적인 사실만을 알고 있던 그는 벨라를 통해 실험체 이상의 부성애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벨라가 떠나자 벨라와 닮은 인간 생명체를 재창조하였는데 그 생명체에게는 일말의 감정조차 허락하지 않고 실험체로서 대했다. 이는 벨라에 대한 그리움의 반증이었다.


벡스터가 벨라에게 처음 가여움을 느낀 것처럼 벨라는 처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여움을 느끼고 이후 덩컨과 벡스터, 블레싱턴 장관에게도 가여움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벨라는 여러 집을 거치면서 나 자신만 생각하는 시기를 지나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정신적 성숙의 상태로 성장한다. 애정의 형태는 신체적 애정이 우선되었으나 결국에는 다른 사람에게 가여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을 갖게 되고 나아가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의사란 벡스터의 후계자로서 선택한 것이자 가여움을 느끼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의 종착지로 보여진다. 누군가를 가엾이 여긴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해서도 연민을 갖고 바라보는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감정이다. 소중한 벡스터와 맥 캔들리스, 덩컨 등 여러 인물과의 여정을 통해 벨라는 스스로에 대해 이해하고 확신을 갖게 되었고 점차 사람들을 품을 줄 아는 사람으로 나아가게 된다. 

 

My father once told me, "Always carve with compassion." 

He was a fucking idiot, but it's not bad advice.


파이널 시퀀스에서 여유로운 웃음을 띠는 벨라 벡스터는 ‘즐거운 나의 집 만들기’에 성공한다. 자신을 지지해주고 사랑하는 맥스 맥캔들리스와 직접 재창조한 동물들, 지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와 그녀 자신이 합쳐진 그녀의 집은 어느 때보다 밝고 사람 냄새로 가득 채워져 있다. 몸과 마음의 풍족함과 이를 나눌 사람들이 곁에 있는 집은 너무도 평화로워 인간 너머의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이상 세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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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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