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음악으로 북돋운 반짝이는 이야기, 뮤지컬 '여기, 피화당'의 김진희 작곡가

글 입력 2024.03.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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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화당_메인포스터(조정).jpg


 

음악으로 북돋운 반짝이는 이야기

뮤지컬 '여기, 피화당'의 김진희 작곡가

 

 

고전 소설 <박씨전>에는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백성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당시 수많은 여성들은 지배층의 무능함 때문에 패전국 백성이 되어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갔을 뿐더러, 고향에 돌아온 후에는 가족과 사회의 멸시 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지요. 패전국 백성으로서의 아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으로 사는 울분은 신묘한 능력을 지닌 '박씨'의 이야기로 승화됩니다. 남성보다 더 뛰어난 능력으로 청나라 장수를 무릎 꿇리고 나라를 구한 '박씨'의 이야기에서 당시 여성들의 아픔과 욕망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뮤지컬 <여기, 피화당>은 이 오래된 이야기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 넣습니다. 늘 <박씨전> 옆에 쓰여 있던 '작자 미상'에 구체적인 작가의 이름과 서사를 새겨 넣으며, 그 오랜 아픔과 욕망을 지금, 이 시점에서 새롭게 발굴해 내는 것이지요. <여기, 피화당> 속 여성들이 노래하는 '지금은 어둠 속에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반짝이길'이라는 가사의 그 '언젠가는'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인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발굴해 낸 이야기를 음악으로 반짝이게 만든 김진희 작곡가를 만나, '여기' 우리 눈앞에 '북돋운' '피화당'에 관해 물었습니다.

 

 


 

 

뮤지컬_여기, 피화당_공연사진 1.jpg

 

 

김한솔 작가님께서 작곡가님께 협업을 제안하시면서 <여기, 피화당>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작품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대본을 받기 전에 작가님께 연락을 받고, ‘이런 소재로 작업할 거다’라는 이야기를 먼저 들었는데요. 그때부터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박씨전>의 내용 자체를 각색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작가들의 이야기를 풀면서 <박씨전>의 이야기도 동시에 전하는 컨셉이 매력적이고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 기대감으로 대본을 봤는데, 역시나 극중극의 <박씨전> 이야기와 작가들의 이야기가 상호작용하면서 나아가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가 그 음악을 작업해야 하니까(웃음). 특히 극중극이 일반적인 가사가 아니라 <박씨전>의 대사와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까 고민도 많이 됐어요. ‘상황은 너무 재밌는데, 이걸 음악적으로 어떻게 꾸려야 더 빛날 수 있지?’ 하는 기대와 고민이 있었죠.

 

 

작가님과의 호흡이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저는 정말 수월하게 작업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가님께 감사한 마음이 있고요. 수월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작가님께서 제 음악을 존중해 주셨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썼지만 확신이 안 들 때는 작가님께 음악의 일부분만 먼저 들려 드리기도 했는데, 작가님의 “나는 좋았어요.” 한 마디에 용기를 얻고 스스로를 믿으면서 작업할 수 있었어요. 또 제가 여러 방향의 톤 중에서 고민할 때, 작가님께서 “이런 방향이면 더 좋을 것 같다.”라고 말씀해 주시면 감을 잡기도 편했어요. 전반적으로 저의 음악을 존중해 주시는 안에서, 아이디어도 던져 주시니까 큰 도움이 됐죠. 그리고 한솔 작가님 가사를 보면 작곡가 입장에서는 음악적인 형식에 딱딱 들어맞는 게 있어서 음악 소재들이 빨리 생각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정말 좋았어요. 작가님도 그러셨길 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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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피화당>의 음악적 톤 앤 매너가 무엇인지도 궁금했어요.

 

이 작품은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어쨌든 현재 관객들에게 와닿아야 하고 공감이 되어야 하잖아요. <여기, 피화당>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니, 음악적으로 과거를 잘 묘사하면서도 현대의 관객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죠.

 

그래서 동양적인 요소와 현대의 요소를 잘 섞어 보기로 결정했어요. 고전과 현대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시대와 음악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노력했죠.

 

 

그 밸런스를 맞추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장르가 퓨전 사극이나 코미디가 아니고, 역사의 어두운 면을 다루는 작품이다 보니까 고민되는 지점이 있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도 했고요. 그래서 일단 극중극 <박씨전>에서는 의도적으로 국악적인 느낌을 더 가미해서 (밖의 이야기와) 구분을 두어 보기로 했어요. 그 밖의 부분에서는 동양적인 색채를 섞기도 하고 빼기도 했는데, '이 곡은 무조건 동양', '이 곡은 무조건 서양' 이런 식으로 정해 놓은 건 아니었고 막상 쓰다 보니까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넘버는 조금 더 현대적인 느낌이 나고, 어떤 짧은 섹션은 마당극 분위기가 나고, 또 어떤 것들은 그 중간 느낌이 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고 구성한 것도 있지만, 그때그때 장면의 분위기나 감정선에 따라서 만들기도 했죠.

 

 

뮤지컬_여기, 피화당_공연사진 4.jpg

 

 

이번 작업을 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음악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실은 동양 음악과 함께, 서양의 민속 음악이나 전통 음악도 들어보면서 참고했어요. 동양과 서양의 민속 음악에 어느 정도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두 개를 자연스럽게 접목시키려고 했거든요. 그런 느낌이 가미된 뮤지컬 음악을 찾아서 들어보기도 했고요.



대금, 해금, 아쟁, 북, 드럼,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 등 악기 편성에도 큰 공을 들이신 것 같습니다. 다양한 악기로 작곡, 편곡을 하실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사실 국악기의 음정 피치가 양악기와 조금씩 다르거든요. 같은 ‘도’여도 국악기의 ‘도’와 양악기의 ‘도’가 미세하게 달라요. 그래서 같이 연주했을 때 거기에서 오는 멋스러움이 있는데, 어떨 때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음이 안 맞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저도 국악기와 양악기가 동시에 나올 때의 조화를 매력적으로 느꼈는데, 막상 녹음까지 다 하고 들어보니까 어떤 부분은 국악기의 미세한 음정들이 부딪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게 나중에는 보컬 라인을 방해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일부분은 국악기의 음량을 조절하거나 과감하게 뺐어요. 편곡할 때 그런 과정이 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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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극 <박씨전>의 경우에는 해설자의 해설이나 등장인물의 대사가 그 씬을 이끌어 가잖아요. 그런 경우에는 그런 대사나 해설에 맞춰서 음악을 쓰신 건가요?

 

네, 맞아요. 말, 대화로 이루어진 부분이다 보니까 극중극 첫 번째 이야기, 첫 소절은 마당극, 판소리 느낌으로 썼어요. 그러면서도 여러 캐릭터가 나오니까 그 안에 다양한 요소들을 섞고 싶었어요. 캐릭터마다, 또는 그 캐릭터가 어떤 상황에 처했느냐에 따라 다른 음악을 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어떤 분은 재지한 느낌도 있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장르를 혼재해서 자유롭게 쓰다 보니까 그때부터는 작업이 쭉쭉 나아갔던 것 같아요. 

 

 

<박씨전>의 결말부를 쓰는 가은비, 매화, 계화가 반주 없이 노래하는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반주 없이 배우의 목소리만으로 음악을 끌고 간다는 게 꽤 큰 선택이었을 것 같아요.

 

과감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원래 초반 연습 때는 그 부분에 반주가 깔려 있었어요. 그때도 화려한 반주는 아니었고, 패드 정도로 조용히 반주를 깔았는데, 연습이 진행되면서 그것마저 빼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죠. 과감하게 들어내 보니까, 오히려 이게 이 여자들에게 더 알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침묵이 더 호소력 있고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배우들도 무반주이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호흡을 끌고 나가면서 감정에 집중할 수 있고, 그러면서 장면이 밀집되고 극대화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그녀들의 용기와 강인함이 더 표현되고, 뒤에 빵 터지는 부분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것도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을 관객분들이 좋게 봐 주시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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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은 협업 예술인만큼 음악을 만들 때 이렇게 구현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한 장면도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후량과 강아지가 가은비 일행을 찾아갈 때 ‘들썩들썩’ 노래하는 장면도 신선했어요.


말씀하신 그 장면을 대본에서 처음 봤을 때, 작가님 정말 대단하고 재치 있다고 생각했어요. 후량과 강아지가 (가은비 일행을) 찾아가는 과정을 의성어, 의태어로만 표현하면서 강아지의 귀여운 면을 보여 주고, 후량이 마냥 무게 잡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 두 사람이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는 것도 보여 주잖아요.


'박씨전 첫 번째 이야기'도 인상 깊었어요. 여자들이 피화당을 지을 때 '동쪽에는 청색에 맞춰 푸른 흙으로 나무뿌리를 북돋으고'처럼 주문을 외우듯이 반복하는 가사가 있어요. 멜로디도 실은 단순한 부분이라, 어떻게 연출될까 궁금했죠. 완성된 장면을 보니까 조명과 안무의 힘 덕분에 미장셴이 너무 좋더라고요. ‘청색’에는 진짜 청색 불빛만 나오면서 한 배우에게 포커스가 맞춰지고, 한 명 한 명씩 조명을 쏘다가 나중에는 마지막 가사에 맞춰 노란색 조명이 여자 세 명 모두를 감싸는데, 신비하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이건 제가 의도했던 건 아닌데, 극중극 <박씨전> 안에서 배우분들이 목소리 톤을 조금씩 바꿔요. 저는 그것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악보에 기입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근데 연습 때 배우분들이 <박씨전> 안에서는 목소리를 창극처럼 두껍게 또는 울림이 있게 변화를 주는데, 그 덕분에 <박씨전>이 더 구분되더라고요. 배역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지니까 몰입되는 효과도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재미있었어요.

 

 

배우들이 직접 스토리텔링 하는 것처럼 극중극 <박씨전>을 소화하니까 구분도 확실히 되고, 재미있더라고요.

 

맞아요. 그전에는 이야기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배우분들 덕분에 이야기가 더 구분되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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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님께 <여기, 피화당>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이전에도 <박씨전>을 알고 있었지만, 저도 이번 계기로 책을 제대로 읽어 볼 수 있었어요. 또 그 이면의 이야기로 추가된 우리나라 역사 속 피해 입은 여성들의 이야기, 또 현재에도 일어나는 비슷한 일들에 대해서 되새기면서 생각해 볼 수 있더라고요. 전에는 그런 뉴스를 보면 ‘너무 화가 난다.’는 생각으로만 그쳤는데, 뮤지컬로 위안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위로와 희망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또 작곡가로서는 음악적인 역량을 넓힐 수 있는 기회였어요. 이전에 작업했던 뮤지컬들이랑 <여기, 피화당>은 소재나 장르면에서도 달랐고, 이번에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음악적인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었죠. 

 

 

앞으로 어떤 뮤지컬을 만들고 싶으신지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창작진으로서 제가 해 보지 않은 소재, 장르나 새로운 음악적인 톤이 있으면 다 감사하게,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몇 가지를 꼽아 보자면 제가 평소에 판타지, 코믹, 감동 이런 것들을 좋아해요.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안에서 감동을 얻어 갈 수 있는 것들을요. 블랙코미디, 풍자류도 좋아하고요. 그래서 “너 좋아하는 뮤지컬이 뭐야?”라고 물으면 답하기가 어려워요. 워낙 많으니까(웃음). 근데 제가 좋아했던 작품을 떠올려 보면 청소년, 혹은 청년들의 성장 드라마가 꽤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어린이, 청소년, 혹은 20대 청년들의 성장통이나 성장 드라마를 그린 작품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 졸업 작품 역시 성장, 코미디 쪽이기도 했고요. 아니면 지금 제가 말한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어우러진 작품도 있겠죠?(웃음). 저는 다 감사하게,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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