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같지만 다른 공연, 발레 '백조의 호수' [공연]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비교, 분석
글 입력 2024.04.0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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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백조의 호수>는 러시아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아름다운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도 불구하고 흥행 참패를 거두고 <라 바야데르> 등 여러 고전 발레를 안무한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가 새롭게 안무해 다시 무대에 올렸다. 프티파와 이바노프가 새롭게 안무를 맡은 버전은 지금까지 수많은 안무가들과 연출가들의 안무와 음악의 변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발레 <백조의 호수>의 기본적인 틀로 기능하고 있다. 이 중, 한국의 두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UBC)은 각자 다른 버전의 <백조의 호수>를 무대 위에 올리고 있다. 국립발레단은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예술감독이었던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재안무한 버전, 유니버설 발레단 측은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전 키로프 발레단)의 예술감독이었던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재안무한 버전을 유니버설 발레단의 유병헌 현 예술감독이 개정한 버전을 올리고 있다.

 

 

 

유사한 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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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문화 요소이든, ‘차이’를 논하기 위해서는 동일성을 먼저 구분해야 한다. 두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남자 백조’가 나오는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나 백조 오데트를 환경운동가로, 악마 로드바르트를 사악한 자본가로 해석한 프렐조카쥬의<백조의 호수>처럼 모던한 방식으로 각색된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프티파-이바노프의 안무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라는 전통적인 고전 발레의 여러 형식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주역 발레리나가 백조 오데트와 흑조 오딜을 동시에 1인 2역으로 맡는 것이 관행인 것도 프티파와 이바노프 버전의 영향이다. 한국의 경우 발레 갈라나 주역 무용수의 부상 같은 이유로 인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한 발레리나가 오데트와 오딜을 동시에 맡아 왔다.

 

초연되었을 때에 비해서 기본적인 ‘막’ 구분은 여러 버전들마다 조금씩 다르더라도 (한국의 두 발레단의 경우 각 2막마다 2장이 있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자의 궁전-호수-궁전-호수로 이어지는 공간 변화는 유사하다. 호숫가 장면에서 백조들의 안무는 발레 블랑(Ballet Blanc, 백색 발레)의 전형이고, 오데트=선, 오딜, 로드바르트=악이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 역시 두 발레단 모두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설정이다. 지그프리트의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인 여왕이 성을 통치하고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바뀌지 않는 설정이다. 1막 백조 그랑 파드되, 2막 흑조 그랑 파드되 속 오딜의 32회전 푸에테 등 갈라 쇼에서도 자주 선보여지는 유명한 안무 역시 같은 위치에 같은 음악, 같은 안무 그대로 유지된다.

 

 

 

전반적인 해석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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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국립발레단이 따르고 있는 버전은 로드바르트는 지그프리트 왕자의 내면의 어두움, 악, 본능의 표현이다. 오딜과 오데트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조류라는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로드바르트와 달리 국립발레단의 로드바르트는 ‘악마’의 모습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국립발레단 버전의 ‘쉐도우 안무’는 지그프리드 뒤에서 로드바르트가 지그프리드와 같은 동작을 하거나, 지그프리드를 조종하는 식의 안무를 보여준다. 1막의 호숫가로 연결되는 장면이나 2막 후반부의 결투 장면 역시 마찬가지인데, 결투 장면은 로드바르트와 지그프리드가 마주 보고 싸우는 것이라기보다 지그프리드의 뒤에 있기 때문에 마치 ‘자신과의 싸움’인 듯한 느낌을 준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백조라는 동물과 인간이라는 형상이 명시되어 동화적이고 신비한 신화라면,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모든 것이 ‘환상’인지 아니면 실제로 현존하는 것인지를 의문시하게 하는 존재로 백조가 등장한다. 이 버전에서 로드바르트와 오딜이 지그프리드와 오데트의 또 다른 자아 혹은 내면의 거울이자 대칭이라는 설정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비추어 본다면, 지그프리드의 아버지 부재에 대한 결과로서 로드바르트의 출현은 필연적인 결과다.

 

지그프리드 왕자의 어머니인 여왕이 통치하고 있는 성(궁)의 복식들과 하인들의 구성을 살펴본다면, 유니버설 발레단의 왕궁은 중세 영주 시대의 제후국이나 공국에 가깝다. 왕자의 성년식에 마을 처녀들이 ‘성’에 방문할 수 있으려면 실질적으로 영지가 크게 넓지 않아야 가능하기 때문에 국민국가나 제국이 아닌 형태가 자연스럽다. 이는 <백조의 호수>의 기원 중 하나로 추측되는 것이 오랜 기간동안 국가의 통일을 이루지 못했던 독일 혹은 러시아 지방의 민담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자연스러운 설정이다. 반면 국립발레단의 왕궁은 더 왕국이나 제국, 절대왕정 시기에 더 ‘가까운’ 느낌을 준다. 의상이나 복식 역시 그러하고 공식적인 신하들이 존재한다. 지그프리드 왕자의 혼인 문제 역시 다른 나라와 연관되는 국혼의 느낌이 더욱 강조된다.

 

마지막으로, 두 버전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엔딩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이다. 먼저 유니버설발레단은 처음 <백조의 호수>가 공연된 이후로 엔딩의 변화를 많이 겪어 왔지만, 주로 새드엔딩으로 끝나며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까지는 로드바르트와 지그프리드의 결투의 결과 둘 다 모두 죽고, 백조는 인간이 되지 못하는 새드엔딩을 택하다 2010년대 중반 잠시 로드바르트만 죽고 오데트와 지그프리드는 살아남는 해피엔딩으로 전환되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 이후부터 무너지는 성 속으로 오데트가 사라지고 로드바르트의 날개를 뜯어 사실상 죽게 한 왕자는 오데트와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맹세를 지키기 위해 성으로 향해 결국 셋 다 죽는 엔딩을 택하고 있다. 성이 결국 무너지는 것도 유니버설발레단만이 보여주고 있는 무대 연출이다.

 

반면,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오데트가 지그프리드 왕자를 용서하고, 그 힘을 통해서 로드바르트를 물리치고 사랑을 이룬다는 해피엔딩을 유지하고 있다. 쭉 모호함과 환상성을 극적인 분위기로 깔고 있던 것과 상반되는 엔딩이고 짧은 피날레 부분에 복잡한 결말의 전개가 설득력있게 진행되기 어렵기 때문에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러한 해피엔딩은 이 버전이 유리 그리고로비치에 의해 만들어질 당시 러시아 인민들의 희망을 위한 해피엔딩을 원했던 당시 소련 정권의 영향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다른 세세한 차이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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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선보이는 <백조의 호수>의 두 가지 버전의 전반적인 차이 말고도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거나 망각할 수 있는 구체적인 부분에서도 세세한 차이가 있다. 먼저, 1막 지그프리드의 궁정 장면에서 발레리나 2명과 발레리노 1명이 선보이는 ‘파 드 트루아’(pas de trois, 프랑스어로 3인무라는 의미) 역시 안무의 흐름이나 중간에 광대 역할을 맡은 발레리노가 추가로 등장하는 것은 유사하다. 하지만 국립발레단은 지그프리드 역할을 맡은 왕자가 직접 선보인다면 유니버설 발레단 버전에서는 지그프리드가 아닌 또 다른 남자 무용수가 파 드 트루아의 한 축이 되고 지그프리드는 다른 사람들이나 여왕과 같이 파 드 트루아를 보는 입장이 되는 차이가 있다.

 

또한 1막이나 2막에서 궁정에서 호수로 이동할 때의 공간 변화와 장(章)의 이동이다.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에서는 지그프리드가 있던 궁정에서 막이 내려오고 조명을 사용하여 어두워진 후에 어느새 호숫가 장면으로 이동해 있는 등 공간의 변화가 모호하게 묘사된다. 지그프리드가 로드바르트를 먼저 목격하고 그의 계략으로 막 뒤에 있는 백조 무리의 환영을 본 후 오데트가 직접 등장하는 것도 그 특징이다. 반면 유니버설발레단에서는 성년식에서 받은 활을 들고 지그프리드 왕자가 성 바깥으로 향하고, 이때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들의 ‘무리’를 발견하고 그 후 백조들의 우두머리인 오데트를 표현하는 왕관이 달린 백조를 보고 활을 겨누려 하다가 오데트와 마주하는 식의 전개다. 이때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들과 오데트의 모습은 그림으로 담은 영상으로 처리된 이후, 지그프리드는 실제 등장하는 오데트를 만나는 식으로 연출된다.

 

다음으로는 2막 지그프리드의 궁정 장면에서 드러나는 차이이다. 먼저 유니버설 발레단에서는 흑조가 등장한 이후 각 나라 민속 춤이 시작되고, 스페인-나폴리-헝가리-마주르카(폴란드) 순이다. 왕자의 신부 후보들이 공주인 것처럼 나오지만 그 신부 후보들과 민속 춤과는 큰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춤을 추는 무용수들이 그 나라의 전통의상에 가깝게 입고 캐릭터 댄스를 출 때 신는 캐릭터 슈즈를 사용하는 등 서사와 관계가 없는 디베르티스망의 성격이 더 강하다. 반면 국립발레단에서는 2막이 시작되자마자 공주의 등장 후 바로 민속 춤들이 시작된다. 왕자의 신부 후보들이 각 나라의 공주로 등장하며 민속 춤에 맞춰 춤을 추고, 의상 역시 기본적으로 흰 색인 것은 공통적이지만 각 나라를 표시할 수 있는 머리 소품을 달거나 의상의 디테일을 다르게 하며 왕자의 혼인이라는 서사 속에 녹아든다. 민속 춤의 순서는 헝가리-러시아-스페인-나폴리-폴란드 순으로, 러시아 음악이 새롭게 추가되었고 마지막 순서인 폴란드의 비중이 더 높다.

 

흑조 그랑 파드되 장면에서 국립발레단은 로드바르트의 개입이 오딜에게 속삭이는 장면을 제외하고 없는 정도이지만, UBC는 로드바르트가 그랑 파드되의 아다지오 부분에서 지그프리드와 오딜 사이에 서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 외에도 유병헌 예술감독이 개정한 현재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안무에서는 지그프리드가 오딜에게 준 꽃이 검게 변하고, 꽃들을 지그프리드와 여왕의 눈 앞에서 뿌리는 흑조 오딜의 모습은 사악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그랑 파드되 장면에서도 백조의 환영이 잠시 보이는데 이는 마치 왕자의 ‘믿음’이 시각적 형태로 구현된 듯한 느낌이 들게 하며, 오딜과 로드바르트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후 마법에 의해 보이지 않았던 날갯짓하는 백조의 모습이 다시 등장한다. 반면 국립발레단에서는 왕자의 맹세 후 진실이 드러난 후 그제서야 반투명한 막 뒤에서 백조의 환영이 등장하고, 백조의 실루엣을 맡은 일종의 대역 무용수가 이 장면에 동원된다는 등의 차이가 있다.

 

이처럼, 한 작품에 있어서 여러 버전의 차이는 각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를 비교 및 대조해서 보는 재미를 준다. <백조의 호수>라는 한 작품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고, 그 변화의 구체적인 양상과 그 맥락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과정이다. 두 버전의 대표적인 차이로 꼽히는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처럼 무엇이 더 취향인지 혹은 그 정도가 어떠한지에 대한 적극적인 탐색의 과정 속에서 더욱 깊이 있는 문화 향유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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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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