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전기가 사라진 세계를 상상해 본다. 그 결핍은 과연 우리의 삶을 어디까지 흔들어 놓을까.

    

전기는 늘 우리 곁에 있다. 아침에 눈을 떠 휴대폰 알람을 확인한 후 뮤직 앱에 들어가 음악을 튼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생성형 AI에게 질문한다.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한다. 화장실의 불을 켜고 끈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은 모두 전기라는 기반 아래 구축되어 있다. 만약 이 모든 과정이 하루아침에 불가능해진다면?

 

정전이 18시간째 지속된다. 휴대폰 배터리는 2%에 불과하고 와이파이는 끊긴 채 어떤 정보에도 접속할 수 없다. 냉장고 속 식료품이 걱정되어 문을 열어보지만 냉기는 사라지고 미지근한 공기만이 남아 있다. 주변은 어둠에 잠긴 채 희미한 달빛만이 공간을 겨우 비춘다.


 

 

"전기,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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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직접 촬영 / 송예환 <월풀>, <전기의 소수자들>, 일렉트릭 쇼크, 북서울미술관, 2026

 

 

전시 <일렉트릭 시티>는 공간의 흐름을 [사건 전]과 [사건 후]로 나누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과 그것의 붕괴 이후를 상상하게 만든다.

 

송예환의 <월풀>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의 폐쇄적 구조를 형상화한다. 작가는 이를 소용돌이 형태로 바라보며, 한 방향으로만 순환되는 소통과 고립의 상태를 드러낸다. 분할된 화면 속 인물들은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대화를 시도하지만 끝내 맞닿지 못한다. 화면 속 손 또한 무언가를 잡으려 하지만 끝내 잡히지 않는다.

 

전시 공간 후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숨겨져 있다.

 

“해당 프로젝터는 기존 태양광 패널로 충전된 배터리로 구동되었으나, 배터리 소진으로 인해 현재는 미술관의 전력을 사용해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자립적인 시스템처럼 보였던 장치조차 결국 전기에 의존하고 있음을 드러내며, 우리는 전기가 없는 상태를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사건 후'의 세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암시하며 전기 없는 세계에서의 취약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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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직접 촬영 / 모바일 도슨트, 일렉트릭 쇼크, 북서울미술관, 2026

 

 

이어지는 전시 <유령과 바다, 그리고 뫼비우스>를 따라가다 보면, 근처에 챗GPT 기반의 모바일 도슨트가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관객은 텍스트 입력 또는 음성 인식을 통해 작품에 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 역시 잠시 멈춰 질문을 던져보았다.

 

 

Q. 김우진 작가의 작품이 두 개의 모니터에 나뉘어서 상영되는 이유는 뭐야?

 

A. (요약) 해당 구조는 시작과 끝이 없는 뫼비우스적 서사를 구현하기 위한 장치이며, 언어의 소멸과 기억의 형식을 순환 구조로 시각화합니다.

 

 

모바일 도슨트의 말을 정리해보면, 작가가 두 화면을 마주 보게 배치한 것은 뫼비우스 띠와 같은 순환 구조를 형성하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그때의 답변만으로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에 대해 추가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작품이 '전기'라는 매개와 어떤 연결성을 가지는가?" 미디어 아트는 전기 없이 작동할 수 없는 장르이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두 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구조 역시 전기적 시스템 위에서만 구현되며 전기가 끊기는 순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작품의 키워드인 ‘유령’은 전기와도 닮았다. 유령은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부유하고, 전기 역시 보이지 않지만 작동한다. 이러한 비물질적 존재 방식은 작품의 서사와 전기라는 매개를 연결하는 지점으로 작동하는 듯 보인다.

 

 

 

전류로 밤을 깨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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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직접 촬영 / 교각들, <밤보다 무서운 밤>, 일렉트릭 쇼크, 북서울미술관, 2026

 

 

사건 전과 사건 후를 가로지르는 몰입은 전시장 전반에 배치된 인터랙티브 장치들을 통해 경험적으로 구성된다. 전시장 곳곳의 도슨트를 비롯한 다양한 장치들은 관객을 전시에 참여시키며 몰입의 상태를 형성한다.

 

특히 교각들의 <밤보다 무서운 밤>에 구현된 MR(Mixed Reality)은 기술 생태계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디지털 기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와 영속성을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한 물리적 자원은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관객은 자신의 손에 흐르는 전류를 통해 소녀들을 깨운다. 문제를 외면한 채 무력함 속에 잠을 청하는 우리의 모습이야말로, 작품의 제목처럼 '밤보다 무서운 밤'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기록이 불가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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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직접 촬영 / 김우진, <마지막 기록 보관소>, 일렉트릭 쇼크, 북서울미술관, 2026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작품은 김우진의 <마지막 기록 보관소>이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공동체의 정체성과 기억을 보존하는 중요한 매개임에도, 세계의 언어는 약 2주에 하나씩 소멸하고 있다. 이러한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작가는 언어의 발화를 소리로 전환하고 이를 오르골 악보의 형태로 기록한다. 관객은 공간에 놓인 오르골의 손잡이를 직접 돌리며 각 언어가 지닌 음을 청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기록 방식은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또 다른 보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벽 한편에는 전기 없이 햇빛만을 사용해 제작할 수 있는 시아노타입 이미지가 함께 전시되어 있으며, 이는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기록 방식의 물질적 대안을 드러낸다.

 

 

 

연명하는 전기


 

제주어를 들어보면, 같은 나라 속 언어임에도 불어를 듣는 것만큼이나 낯설게 다가온다. 낯섦을 체감하는 순간에야 그것이 하나의 언어를 넘어 특정 시절과 공동체의 기억을 담은 체계라는 것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언제든 휘발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디지털 기록을 오프라인으로 전환하는 작가의 시도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전시의 마지막 챕터에서 전혀 다른 형상으로 또 한 번 반복된다. 출구 앞쪽의 벽에 부착된 휴대폰에는 미술관 일평균 전력 소비량이 담겨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의존해 온 기반을 다시금 드러내는 장치인 셈이다.

 

<일렉트릭 쇼크>는 전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미디어 아트의 조건을 전면에 드러내며 위기의 최전선에서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을 사유하고 개입할 수 있는지를 가늠한다. 동시에 마지막까지 우리의 전기 의존성을 체감하게 하며,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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