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눈을 돌려 내 관점과 생각을 뾰족하게 다듬기 시작한 지 딱 1년이 됐다. 물론 그전에도 나만의 언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하고 있었으나 초점은 외부에 맞춰졌다.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 어딘지, 브랜드가 어떤 톤으로 고객에게 접근하는지, 매체별 광고 전략은 무엇인지 등 대체적으로 유행하는 마케팅 사례를 찾아 애쓰며 제작하는 콘텐츠와 연결시키고자 노력했다. 콘텐츠, 브랜드 마케터를 진로로 삼았을 때 일상화했던 습관이었다.
평론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턴 요구하는 능력이 달라졌다.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지만 이 또한 누군가에게 읽힐 글.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선 근거가 합리적이어야 했고 이를 위해 관련 지식과 작품을 파고들길 반복했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작업은 확실히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필드에서 내 콘텐츠 앞에 대중을 모을 방법은 대체로 소재에 한정되곤 했다. 시의성이 있거나 많이 바이럴되는 작품을 건드리면 좋든 나쁘든 평소보다 조회수와 반응이 증가하는 걸 목격했으니. 다른 경우라면 글과 평점에 자극적인 요소를 부여하는 것인데 내 스타일과는 다소 맞지 않다.
돌아보면 분석이라는 명목 아래 방향성이 다른 일을 해왔고, 또 하고 있다. 전자는 유행과 세상을 읽는다면 후자는 작업물과 창작자를 읽는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있다면 결국 '사람'이다. 유독 서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험에 의해 동화되는 경우가 잦은 나는 내 주변부터 불특정 다수에 이르기까지 긍정적인 영향과 영감을 주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희망하는 직업이 선명했던 적은 초등학교 시절이 마지막이면서도 이 바람만큼은 당장 형체는 모호해 보이지만 어떻게든 실현하고 싶다는 의지가 꾸준히 강했다.
그래서 사람과 관련된 콘텐츠에 지속적인 관심을 쏟는다. 글, 영상, 이미지 등 형식과 상관없이 인터뷰라면 일단 관심을 기울였고, 누군가의 팬이 되어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나중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조그마한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해 보기도 했는데 모든 체험은 취향과 심리를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노력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적용한다면 결국 한 분야의 '덕후'만이 알 수 있는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소통하는 콘텐츠보다 다소 일방향적인 최근의 글을 작성하는 와중에도 분명 그동안의 경험이 유의미하게 발현됐던 적이 있었다.

이런 나의 관심사를 정면으로 건드린 책이 바로 <사람을 기획하는 일>이다.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사람'과 '기획' 모두 오랫동안 주의를 깊게 두고 있는 단어였던 만큼 양쪽에서 모두 도움 되는 내용이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내용은 사람들의 속성을 탐구해 오래 남는 기획이 무엇인지 가리킨다.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현직 PD의 경험이 그만의 언어로 쓰여 어렵지 않고 핵심을 명료하게 짚는다.
사람을 기획하기 위한 준비물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자보다는 따뜻한 조도의 조명이 필요한 일입니다.(19p)
몇 장을 채 넘기지도 않은 챕터1의 도입부에서 가장 공감되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출을 올리는 행위도 팬을 만드는 일도 결국 사람으로 귀결된다. 타겟의 마음을 움직여야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람을 향하는 일엔 애정이 가장 중요하다 느낀다. AI가 부상하여 이미 우리의 삶으로 침투한 지 오래, 이젠 반듯하고 깔끔한 매무새는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 되어버렸다. 결국 학습된 AI가 따라 할 수 없는 지점은 결점으로 치부되는 속성과 완전하지 않은 실패담, 지난한 반복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내용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내가 여러 콘텐츠를 보며 반응하는 지점과 정확히 같아 반가웠다.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장면 하나일 수 있지만, '살아낸다'는 것은 수많은 서사와 번외의 일들이 함축되는 일입니다.(26p)
연장선으로 이 문장의 '살아낸다'는 표현이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었다. '살아낸다'라는 표현에 유독 애정이 많이 가는 이유가 있다면 그만큼 치열한 생의 의지가 담겨있다는 점이다.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성공에서 느끼는 달콤함보다 각자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극복하는 방식이었다. 그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나도 한 번 더 다짐할 수 있었고, 공감하며 웃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반응했던 포인트가 결국 다른 이들도 움직일 수 있는 소재가 되지 않을까.
결국 오래 가는 브랜드란, 자기만의 언어와 태도를 잃지 않는 브랜드이기 때문입니다.(76p)
그러니 마지막은 애정 어린 시선을 견지하되 나만의 것을 찾아 알맞은 온도로 다듬어야 한다로 귀결된다. 급변하는 세상, 누구나 인플루언서가 되어 사람이 브랜드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그때그때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이에 맞춰 전략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겠으나 본질은 이 책의 문장들이 가리키는 지점에 있다고 믿는다. 일시적으로 반응하는 지점은 특별함과 빼어남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운을 남기는 것은 인간적인 면모일 것이다.
평소와는 다르게 미괄적인 흐름으로 글을 구성했다. 리뷰에 앞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무용하다 느껴질 수 있으나 사람을 기획하는 일의 연장선으로 내 이야기와 함께 느낀 바를 자연스레 녹여내고 싶었다. 나는 아직도 어디로 향해야 할지 그 길을 찾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건 '사람'을 중심에 두고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 이처럼 어떤 일이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획득해야 하는 필드에 있다면 작게라도 영감을 얻어갈 수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