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이곳에 운을 뗀다. 빈 시간동안 글쓰기를 중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묵혀두고 쌓아만 왔던 시간이 몇 달이나 흘렀을 뿐이다. 누군가는 왜 써놓은 글을 올리지 않느냐고 충분히 물을 법했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건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길이도 충분했고 내용도 잘 담았다 생각했지만 올리기가 무서웠다. 어느 순간부터 감상보단 개인사가 짙게 깔린 탓이다.
사실 문화예술과 관련된 글에 사견과 경험이 빠지기란 불가능하다. 리뷰란 자신이 어떻게 보고 듣고 느꼈는지를 쓰는 글이니 주관적인 성격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개된 곳에 올리지 못 했던 건 과도하게 감정이나 과거와 결부된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형체 없이 커져버린 두려움이 알아서 사람들의 반응을 재단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결론적으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어떤 글도 올리지 못했다. 꼭 이곳이 아니라 개인 SNS에도 한두번 드물게 올린 게 전부다.
돌아보니 에디터를 지속해온지 3년이 조금 넘었다. 글쓰기가 좋았던 탓에, 타인과 좋아하는 걸 나누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침체기도 적지 않았다. 앞선 순간이 너무 내면적이어서 문제였다면, 일이 너무 바빠 문장을 써내지 못 한 시절도 있었다. 잠시 기획자를 꿈꾼답시고 사람들과 함께 일하던 때다.
이땐 확실히 여러 분야에 각각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홍보부터 참가자 모집, 디자인, 예산 관린, 일정 수립 등 모든 과정을 아울렀고, 상황과 해결 방법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확실히 공유해야 했다. 글을 많이 쓰던 때엔 에너지가 내부로 향했다면, 기획자의 삶은 시선을 철저히 외부에 두었다. 핑계 같지만 문단을 이어가는 게 쉽지 않았던 이유다.
돌고 돌아 올핸 새로운 기회로 다시 글쓰는 삶을 살고 있다.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마음 한켠엔 차분히 텍스트를 떠올리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했던 게 방향키를 돌리는 원인이 됐다. 가장 좋아하는 문화예술 콘텐츠인 음악을 중심으로 글을 쓰는 삶은 오래 전부터 바라왔던 일. 정해진 문법과 필요한 지식을 체득하는 과정이 고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좋아하는 일이기에 잘 버티는 중이다.
다만 또 불안감과 마주했다. 원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고민이 떠나질 않는다. 현실적인 고민이었다면 차라리 다행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스스로를 옥죄는 불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문화예술 관련 리뷰를 쓰는 일만큼 일기로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작업을 20대 내내 해오고 있는 나로선 결국 지금이란 생각으로 가장 선명한 감정을 붙잡아 쓰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좋아하는 걸 중심에 두지 않은 이유
음악, 공연, 그리고 페스티벌. 20대가 된 이래로 삶에서 빠지지 않았던 문화콘텐츠다. 친구들과의 약속보다 공연 일정을 챙기는 게 우선이었고 주말엔 페스티벌 스팟으로 향하기 위해 평일에 일을 끝내려 안간힘을 썼다. 분명 필수적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2순위다.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꿨고, 이를 실현한 적도 있었지만 그게 음악과 공연 산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했으면서도 두 산업을 기피했던 건 음악과 공연이 도피처였다는 데 있다. 음악을 들으며 우울한 감정을 해소했고, 공연장에서 떼창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으며, 페스티벌에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덩달아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을 좋아했던 이유는 콘텐츠 본연에 있기 보다 삶이 힘들었을 때 곁에 둘 수 있는 대상이어서였다. 감정을 색으로 나타낸 스펙트럼이 있다면 내 인생은 그동안 짙은 파란색에 위치했을 터다. 그걸 더 이상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게끔, 중앙으로 돌려놓을 수 있게끔 도와줬던 게 음악과 공연이었다.
그렇기에 늘 도피처로 삼은 대상을 일로 할 수 있는지에 의문을 품었다. 가장 하고 싶었지만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던 까닭이다. 글을 쓰는 일이든, 공연 기획자의 삶이든 마찬가지였다. 좋아하는 게 직업이 되는 순간이 찾아오면 이전만큼 감흥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두려움은 배가 됐다. 심지어 행사 기획자를 꿈꾸며 부딪혔던 시절 이미 겪어보기도 했다. 업계의 민낯을 마주하며 지쳐가는 와중 감흥이 많이 사라졌다는 걸 마주했을 때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음악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까 무서웠던 거다. 늘 힘든 순간에 함께 했던 건 음악이었는데 일이 되면 질려 버릴까봐. 겪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지만 그만큼 소중한 대상이자 도피처였기에 이를 잃는다는 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다. 힘들 때 잡아 줄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디에 의지할 수 있을지, 어떻게 버텨 잘 살아낼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다.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우울함에 빠지기 쉬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진해보려고 한다
작년 한 해 졸업을 앞두고 진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해 방황했다. 도피하듯 대충 맞는 일을 찾아 들어간 회사에선 매일이 지옥 같았다. 나쁜 근무환경도 아니었으나 그간 가졌던 열정은 빠르게 시들었고, 적당히 할 것만 하자는 생각이 만연해진 탓에 불씨를 지피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중도 퇴사를 감행했다. 인생에 몇 안 되는 자발적인 포기 경험이었기에 자괴감과 충격이 컸고, 이는 끝없는 무기력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한 해를 흘려 보내려 할 즈음 마주한 게 최근의 기회다. 똑같은 필진 모집 공고를 재작년에도 봤고, 지원서를 다 작성했으나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지원하지 못했다. 힘들었지만 기획자의 삶이 아직은 재미있었던 시기. 조금 더 경험을 쌓으면 생각했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도 보였기에 꿈꾸던 일이었음에도 향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했던 두려움도 당연 한몫했다.
1년이 지나 끝이 안 보이는 고민과 불안 속에서 다시 본 공고가 계속 맘에 걸렸던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것도 자신이 없었고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만 같았던 시기 다시 기대볼 건 희미하게라도 꾸준히 지속해오던 글과 음악이으니까. 자신감은 이전보다 더 하락한 상태였지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넣은 지원서는 예상치도 못한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얼마되지 않긴 했지만 합격 안내 문자를 받았던 순간이 아직도 선하다.
약 한 달간 꾸준히 글을 쓰고 피드백을 받았다. 붙은 이래로 잘할 수 있을지, 질려버리진 않을지 끊임없는 불안감을 달고 살았던 거치곤 한 주 한 주 조금씩 발전을 거듭했다. 이 감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무엇을 써야 할 지 모르는 데서 오는 막막함과 나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불안을 배가시킬 때도 적지 않다. 끝없는 고민과 사투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버티고 전진할 수 있는 건 좋아하는 걸 넘어서 삶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희로애락의 순간부터 분노, 절망과 같은 극단적인 감정으로 점철되었던 시기까지도 음악은 늘 함께였으니 오래 듣고 생각해야 하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 곁을 지켰던 그 친구를 이제서야 알아가는 느낌인지라 미안한 마음이 있다.
오랫동안 늘 도피처로 찾았던 음악에 이젠 뿌리를 내려볼까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인 문제부터 지속가능성까지 산재한 문제는 여전하지만 일단 묵묵히 밭을 일구는 데 집중해본다. 작든 크든 글을 쓰는 데선 꾸준히 결과물을 내왔으니까. 이곳이 온전한 내 터전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일은 아직 섣부르지만 매주 삽을 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정이 지난할 지라도 부디 지치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