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쟁’은 없고 ‘평화’는 흔들리는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공연]

이머시브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의 가능성
글 입력 2024.06.1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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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재연은 제작사 쇼노트(shownote) 주관으로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2024년 3월 26일부터 6월 16일까지 진행된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작곡과 연출에 참여한 데이브 말로이는 원작 중에서 초중반에 해당하는 2권 5장을 중점으로 그 이전의 설정이나 이야기를 추가해서 발췌 및 각색해 총 160분이라는 무대를 꾸몄다. 극에 관객 참여 요소가 있고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이머시브(Immersive) 형식의 뮤지컬이라는 점 역시 이 작품의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와 객석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다른 뮤지컬 작품들과 다르게 무대에는 ‘상수’와 ‘하수’, ‘앞무대’와 ‘뒷무대’라는 엄격한 구조적 형식 대신 전면이 개방되어 있고, 오케스트라가 무대 공간의 일부로 존재하며 전체 음악을 통제하는 음악감독은 피에르가 주로 있는 원형 공간에 같이 있다. 무대에 있는 무대석인 ‘코멧석’ A, B, C, D구역이 있고, 배우들이 객석을 돌아다니며 관객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정식 공연 시작 전 5~8분 전부터 배우들의 극 중 배역으로 객석을 돌아다니는 ‘프리쇼’가 진행되고, 극 내에 관객의 적극적인 반응과 참여를 요구하는 극 중의 상황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일종의 ‘일렉트로 팝 오페라’로서, 대사 대신 가사로만 극을 이어가는 송스루(Sung-through) 작품이다. 마지막 피에르와 나타샤의 재회에서 오케스트라 음악이 멈춰진 채 피에르의 대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노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극 중에서 그 씬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은 애드리브에도 멜로디를 붙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또한 피에르는 아코디언, 아나톨은 바이올린, 나타샤는 북처럼 배우들이 작품의 흐름 속에서 각자 맡은 악기를 연주하는 ‘액터 뮤지션’의 역할을 겸한다. 역할을 맡은 배우가 자신이 맡은 역할을 3인칭으로 표현하는 서술 방식이 가사에 가끔 사용되기도 한다는 점도 이 뮤지컬의 특징이다.

 

 

 

나타샤와 피에르라는 두 주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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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코멧>은 브로드웨이 버전 원제가 ‘Natasha, Pierre and the great comet of 1812’(나타샤, 피에르, 그리고 1812년의 대혜성)일 정도로 명시적으로 내세운 주제를 지탱하며 이끌고 가는 두 인물은 피에르와 나타샤이다. 이 극의 원작인 『전쟁과 평화』의 영향을 받아, 역사를 이끄는 것은 위인(나폴레옹을 연상시키는)이 아니고 모든 존재가 역사의 파도에 휩쓸릴 뿐이라는 미시사의 핵심을 궤뚫는 메시지가 중심 인물인 피에르의 목소리로 가사에 삽입되어 있을 정도다. 이 작품은 피에르와 나타샤의 ‘실패’의 과정과 다시 시작하는 순간까지 한 서사로 담아낸다. 피에르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무대에 있고 피에르 역할과 건반을 연주하는 단장의 역할까지 같이 겸하며 (모자를 기준으로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처음을 열고 끝을 마무리한다. 백작의 서자였으나 직위와 재산을 상속받은 피에르는 귀족 사회의 위선과 여전히 ‘죽은 것처럼’ 살고 있는 삶에 환멸을 느끼던 중이었다. 아내 엘렌의 외도 대상인 돌로코프와 결투하지만, 결투에서 운 좋게 이기고도 달라지지 않은 삶에 새롭고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노래한다. (‘잿더미(dust and ashes)’)

 

약혼자 안드레이의 (참전으로 인한) 부재와 모스크바로의 입성을 통해 처음 객석에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나타샤는 아나톨 쿠라긴에게 반해 약혼을 깨고 사랑의 도피를 계획하지만 실패하고 그가 결혼 전적이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된 후 독약을 마시고 자살 시도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안드레이가 돌아온 이후 약혼은 깨지고 절망에 빠진 나타샤에게 피에르가 위로의 말을 건네며 <그레이트 코멧>은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초반부 귀족 사회에 대한 환멸에 빠져 있던 피에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희망과 인생의 의미를 찾고, 모스크바 사교계에 입성한 어린 나타샤는 아나톨과의 불 같은 사랑과 실패로 사교계의 냉정한 질서 속에서 명예를 잃고 실추될 위기에 놓이지만 피에르의 말을 통해 희망을 얻으며 끝나는 구도는 극의 시작이었던 피에르와 나타샤라는 상이한 두 축이 하나로 겹쳐지며 ‘성장할 기회’라는 차원에서 그들을 한 데 묶으며 끝난다.

 

 

 

‘전쟁’ 없는 상황 속 유예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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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코멧>은 서사 중심으로 진행되는 한국에서 흥행한 뮤지컬의 공식과는 달리 이머시브 뮤지컬이라는 형식에 집중한 작품이다. ‘내용’이 작품의 ‘의미’를 담보한다면 <그레이트 코멧>에는 ‘의미’는 극도로 없거나 피상적이다. 원작 속 볼콘스키 공작이 1년간 안드레이와 나타샤를 떨어뜨려 놓았던 것과 달리 뮤지컬에서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으로 안드레이가 전쟁터로 떠나는 설정으로 바뀌었고, 참전한 안드레이의 부재를 통해 극은 시작되고 돌아오면서 극은 끝난다. ‘평화’가 '일상'으로 등치되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초-중반에 벌어진 나타샤와 아나톨의 스캔들에 집중하는 것은 원작인 『전쟁과 평화』의 ‘깊은’ 의미에 비하면 ‘사랑과 전쟁’급의 극히 얕은 내용으로 여겨질 수 있다.

 

원작인 『전쟁과 평화』에서 참전한 아나톨과 안드레이를 모두 죽게 만든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을 겪고 피에르와 나타샤는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그리고 이는 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작가의 자아를 투영한 캐릭터인 피에르를 통해 구현하는 『전쟁과 평화』 혹 주제와 정확히 부합한다. 나탸사는 톨스토이의 또다른 작품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와는 정확히 반대의 길을 간다. 톨스토이의 작품 세계에서 『전쟁과 평화』의 나타샤의 변화는 진화 혹은 성장으로 의미화되었고,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의 변화는 퇴행 혹은 타락으로 의미화되었다*. 원작의 나타샤는 아나톨과의 염문, 안드레이와의 파혼, 모스크바를 덮친 나폴레옹의 침공을 겪은 뒤 피에르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정숙한 귀부인’으로 ‘성장’했으며, 귀족들 중 누구도 나타샤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아나톨과의 스캔들을 문제삼지 않을 것이다. 반면 안나 카레니나는 남편과 아이를 둔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중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져 집에서 뛰쳐나온다. 사생아를 낳고 브론스키의 사랑이 식어가는 것과 아이에 대한 ‘모성애’로 인해 고통받던 안나는 결국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만다. 작품 속 두 캐릭터의 출발역과 종착역, 그리고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완전히 반전되어 있다.

 

하지만 여성 캐릭터의 진정한 성장을 단순히 결혼과 양육이라는 전통적인 여성상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만 재현하고 그 이외의 삶을 일탈(『안나 카레니나』 속 안나 카레니나) 혹은 미완의 삶(『전쟁과 평화』 속 나타샤의 오빠 니콜라이와 결혼하지 못하고 독신으로 산 소냐)으로 취급하는 믿음은 심문되지 않아도 괜찮은가? 『전쟁과 평화』 속 스캔들로 인한 명예의 실추와 전쟁을 겪었던 나타샤의 성장은 위대하고 감격적이지만 『안나 카레니나』 속의 안나와 비교해보았을 때 톨스토이가 그리는 여성-주체의 성장 혹은 퇴보의 서사는 문제적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원작으로 하는 많은 새로운 창작 작품들이 안나의 운명을 단순히 몰락과 파국의 과정으로 의미화하는 원작의 시선을 답습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외피를 하고 있는 자신의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각성에 집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론 안나의 끝은 죽음이었지만 그러한 비극적 운명마저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안나의 결단이 가질 수 있는 전복적인 면모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원작 속 도덕의 가치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 현대의 수용자는 안나와 정반대의 길을 가는 ‘나타샤’의 행보를 어떻게 의미화할 수 있을까?

 

나타샤와 피에르의 원작 속 ‘해피엔딩’ 작품 속에서 피에르가 ‘악독한 핏줄’이라고 말하기도 한 쿠라긴 남매의 결말은 끔찍하다. 원작에서 엘렌은 또 다른 귀족과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임신했지만 임신 중단을 택하며, 임신 중단을 위한 약물을 복용하고 부작용으로 죽게 되었다는 것이 암시된다. (그리고 이는 나타샤가 독약을 마셨지만 살아난 것과 묘하게 중첩되며 대조된다.) 또한, <그레이트 코멧> 속에서 ‘멀리 저 멀리’ (원어 가사와 원작을 참고하면 페테르부르크Petersburg**로) 떠나며 퇴장했던 아나톨은 『전쟁과 평화』에서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 이후 참전한 전투에서 다리가 잘려 고통을 받다 사망한다. 이러한 엘렌과 아나톨의 죽음은 극 내에서 피에르의 ‘자유’(자연스러운 혼인 관계의 해소)와 안드레이가 죽어가는 아나톨에게 행하는 용서를 통한 ‘깨달음’을 등장시키기 위한 장치로 쓰이며, 톨스토이의 도덕적 가치 내에서는 성적 쾌락과 방종의 결과이자 징벌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전쟁과 평화』 속 결말에 다다르기 전에 모든 것을 종료시켜버리는 <그레이트 코멧>의 시간성에서는 엘렌은 ‘헤프’고(‘slut’) 아나톨은 ‘핫’하지만 톨스토이 세계관 속 도덕적 타락의 상징이었던 그들의 성적 매력과 성적 방종은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엘렌의 성적 ‘방종’으로 여겨졌던 기질은 언제든지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과거의 텍스트를 새롭게 독해하고 새롭게 전유할 능력을 갖춘 현대의 관객들에 의해 자유와 주체성의 기표로 전환될 수 있다. 커튼콜에서 조연들 중 가장 큰 박수를 받는 이가 엘렌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피에르와 결혼하기 전,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결여한 채 대혜성이라는 스펙타클로 이 작품이 종결되면서, 나타샤에게는 성장의 기회만 주어진 채 성장이 유예되었다. 뮤지컬에서 새롭게 창조된 캐릭터가 『전쟁과 평화』 속 결말을 그대로 따르게 될 지는 알 수 없고, 미완의 정동 속에서 현대의 관객들은 항상 새로움을 발견하고 원작을 비판적으로 전유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의미’를 결여하거나 피상적인 ‘의미’만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 작품이 원작과의 관계 속에서 수행적인 가능성을 갖게 되는 이유다.

 

* 윤새라. (2020). 톨스토이의 나타샤와 안나: 진화 혹은 역행의 서사. 슬라브硏究, 36(4), 195-219.

** 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페테르부르크, 레닌그라드로 도시의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19세기 러시아 귀족 문화와 전통이라는 흥미로운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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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에서는 러시아 문학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친숙함을 느낄 만한 러시아 제정 시대의 문화가 묘사되는데, 공식적인 크리스트교(정확히는 러시아 정교회)와 민속적인 고대 러시아 토착 신앙에서 비롯된 문화가 혼재되어 나타나는 러시아의 ‘이중신앙’의 반영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프롤로그 시작 부분에서 전쟁터로 떠나는 안드레이가 나타샤에게 십자가 목걸이를 걸어주는 것은 도덕과 규범을 규율하는 크리스트교 윤리가 십자가라는 기표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고, 아나톨의 부탁을 받은 엘렌이 나타샤의 십자가 목걸이 대신 자신의 목걸이를 걸어주는 것은 나타샤가 안드레이 대신 아나톨과의 도피를 택하게 되는 2막에서 벌어질 사건을 암시한다.

 

또한 이 작품 속에서 배우들은 러시아 민속 지방의 전통 춤을 추기도 하고, 앙상블들이 민속 음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그리고 1막에서 소냐와 나타샤가 불을 끈 채 촛불을 들고 거울을 응시하는 것은 러시아 여성들이 거울을 통해서 미래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믿었던 거울점이라는 풍습에 따른 것인데, 이는 고대 슬라브 신앙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때 나타샤가 거울 점이라는 미신을 통해 누군가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상황이 묘사된다. 나타샤는 이를 안드레이가 위험에 처했음을 알리는 것인지 아니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 불길해하지만, 사실 『전쟁과 평화』의 내용을 고려한다면 거울 뒷편에 ‘잿더미’를 부르고 난 후의 피에르가 서 있다는 점은 꽤나 미묘한 요소다. <그레이트 코멧> 속에서는 명시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전쟁 이후의 피에르와 나타샤의 결혼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소냐는 딱히 무언가가 보인다는 언급이 없는데 이는 원작 속 소냐가 결혼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당시 서구의 귀족 사회에서 통용되던 결투의 방식인 결투 신청과 서로에게 총을 쏘는 관습이 피에르와 돌로코프에 의해 행해지고, 또 다른 러시아 문학인 『예브게니 오네긴』(푸쉬킨) 등의 작품에서 결투 중 죽음이 발생하며 서사의 국면이 전환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돌로코프만 팔에 총을 맞고 회복한다. 그리고 이는 피에르와 엘렌, 돌로코프의 삼각관계는 당시 러시아 귀족 사회 내에서 불륜 그 자체는 죄가 아니었지만 이를 ‘드러내는 것’은 (마치 안나 카레니나처럼) 명예의 실추이자 심각한 흠결로 여겨졌던 상황을 반영한다. 또한 2막 초반 ‘letters’에서 피에르가 안드레이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 중 카드점, 정확히 ‘카발라 점’(초연, 원어 가사)은 유대교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은 프리메이슨에 빠져 있던 당시 피에르가 자유주의자였지만 스스로 황제가 되어 전쟁을 일으킨 나폴레옹을 성경 속 악마(신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에도 나왔듯 ‘666’은 악마의 숫자)로 비유하는 비약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당시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상황과 그 속에서 한때는 나폴레옹을 존경했지만 배신감을 느낀 피에르가 느끼는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부각하기 위해 사용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 소냐는 암묵적으로 나타샤의 오빠 니콜라이 로스토프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전쟁 후 그가 안드레이의 여동생 마리 볼콘스카야와 결혼하면서 이 약속은 사라진다. 초반에 ‘전쟁 나간 두 약혼자’라고 언급되는 부분은 나타샤의 약혼자 안드레이와 소냐의 암묵적 약혼자이자 나타샤의 오빠인 니콜라이 두 명을 지칭하는 것이다. 원작 속 전쟁, 그리고 그 속의 여러 전투들이 뮤지컬 문법에 맞게 배치되면서 원작의 설정이 수정되거나 생략되었는데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음악과 연출의 새로운 형식적 실험, 그리고 배우들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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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코멧>에 사용되는 음악의 측면에서, 장르나 악기의 스펙트럼이 넓다. 일반 뮤지컬의 오케스트라에서 사용되는 악기와 전형적인 멜로디의 구성을 포함하여 결투가 벌어졌던 클럽의 장면에서는 현대적인 EDM이 사용되기도 한다. 1막에 나타샤와 소냐가 기괴하다고(‘grotesque and amazing”) 느꼈던 오페라 장면의 음악이나 고대 러시아 원시 신앙을 생각나게 하는 문양들은 (물론 100년 정도의 시간적 차이가 있지만) 스트라빈스키의 원시주의 사조와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음악이자 작품인 ‘봄의 제전’을 연상시킨다. 무대에 현대적인 연출이나 음악적 장르를 가미하고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며 동시에 뮤지컬이 줄 수 있는 음악적 전형성의 장점까지 알차게 쓰며 넓은 스펙트럼을 오가는 이 작품을 보면 왜 브로드웨이에서 신선한 흥행작으로 통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음악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음악적인 형식 자체에 반영되기도 하는데 1막에서 껄끄러운 관계인 나타샤와 안드레이의 여동생이자 볼콘스키 공작의 딸 마리 볼콘스카야의 불편한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불협화음이 쓰이기도 한다. 또한 볼콘스키 공작 집의 방문에서 환대를 받지 못했기에 절망에 빠진 채 돌아가는 나타샤의 솔로곡인 ‘No one else’부터 이른바 ‘극중극’인 오페라가 공연되는 동안 극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묘사되는 ‘the opera’는 모조리 극 속 캐릭터인 나타샤의 주관적인 시선이 극의 흐름과 연출 및 음악적으로 완전히 일치되어 있는데, 기괴한 오페라와 낯선 사교계의 모습이 주는 긴장이라는 감정이 아나톨의 등장과 아나톨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설렘’과 ‘두려움’까지 연결된다.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운문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크랑코의 발레 <오네긴>에서 오네긴이 타티아나의 목에 키스하는 장면부터 타티아나의 꿈이 무대 위에 묘사되었듯이, 오페라 장면 속에서 아나톨이 나타샤에게 키스하면서 그 전까지 갈등하던 나타샤의 아나톨에 대한 사랑은 안드레이를 향한 사랑의 감정보다 앞서게 된다. 오페라 장면에서 아나톨의 모습은 ‘객관적’ 인물로서 존재한다기보다 마치 나타샤가 느끼는 아나톨에 대한 주관적 감각이 투영된 채 존재하고, 그 공간에 두 캐릭터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환상적 효과를 낸다. 이러한 미묘한 구도는 ‘메타적’이고 현대적인 연출의 일환으로 읽을 수도 있고, <그레이트 코멧>에서 큰 위상을 차지하는 나타샤의 사랑 속 나타샤의 인식을 부각하기 위한 것일수도 있다.

 

다음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우선 케이윌 피에르는 본디 선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든 인류애가 바닥나고 환멸로 인해 도저히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동시에 그는 (결말부와 연결되는)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을 불안정하게 쥐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2막 초반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향해 총을 겨눈 채 언젠간 죽이리라고 말하는 장면은 전체적인 역사와 나폴레옹을 지지했다가 돌아선 원작 속 피에르의 과거를 알고 본다면 이 극의 소소한 재미라고 할 수 있고, 피에르와 엘렌의 파탄난 부부관계 역시 흥미로운 포인트 중 하나다. 유연정 나타샤는 ‘나타샤는 어려’라는 가사에 알맞게 해맑은 모습으로 시작한다. ‘어리지만 동시에 (‘사랑’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성숙함’이 고전 소설이나 희곡 여주인공의 전제 조건인 상황 속에서 그는 안드레이의 부재 속 외로움, 아나톨과의 도피 실패 같은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사건들을 겪으며 순식간에 독약을 먹어버리기까지의 급격한 혼란 속의 파동을 체화한 연기를 보여준다. 또한 유연정 나타샤의 감정이 그대로 표현되는 넘버 <‘No one else’>는 2016년 <프로듀스 101> 시즌 1 방영 당시 ‘다시 만난 세계’ 미션 중 고음 하나로 데뷔 순위권으로 올라섰던 것을 떠오르게 한다.

 

'어린' 유연정 나타샤와 '핫한' 정택운 아나톨이 속삭이는 사랑의 모습은 겉으로만 보았을 때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가문이라는 금기 속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맹세하는 청춘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케미'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짧은 사랑이 마치 ‘백년쯤 된’ 것 같다는 나타샤의 믿음과 사랑의 헌신은 자신의 혼인 경험을 숨긴 능숙한 바람둘이 아나톨과 그에 공모한 아나톨의 친구 돌로코프와 누나 엘렌의 협력 속에서 허구와 기만이라는 위태로운 구조물 위에 서 있다. 가장무도회(‘the ball’)에서 키스를 통해 나타샤의 마음을 확인한 정택운 아나톨이 입술이 번진 채로 엘렌에게 시그널을 주는 모습과, 그에 동조하여 사악한 웃음을 짓는 누나 엘렌의 모습은 창세기 속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하는 뱀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또한 두 매력적이면서 사악한 남매의 계획은 <백조의 호수> 속에서 왕자 지그프리드를 속이는 흑조 오딜과 오딜의 아버지인 악마 로드바르트의 육친성에서 기인한 공모를 연상시킨다. 자신의 잘못을 절대 반성하지 않는 아나톨은 피에르에 의해 모스크바를 떠나게 되고, 아나톨의 퇴장 이후 이 작품은 결말 부에 다다르며 그 이후 여러 인물 간의 관계(예를 들어 피에르와 엘렌)가 많이 변할 것임을 암시한다.

 

홍륜희 엘렌은 영악하게 사교계를 주름잡고 있는 ‘사교계의 여왕’이자 피에르를 농락하며 결혼생활을 유지해 온 인물이며, 특유의 카리스마가 플롯에 더욱 긴장감을 부여하고 갈등과 대립의 관계를 더욱 강화한다. 류수화 마리 대모(마리 볼콘스카야와 구분하기 위해 마리야 d.로 표기)는 가문의 명예를 무엇보다 중시하고, 효은 소냐는 신앙심에서 비롯된 윤리적 규범을 체화한 인물이며 이것이 아나톨과 나타샤의 도피 계획에 결정적인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돌로코프, 마리 볼콘스카야 공녀, 볼콘스키 공작과 안드레이(1인 2역), 발라가 같은 등장인물들을 비롯해 많은 앙상블들이 앙상블이자 액터뮤지션으로 참여하며 무대의 안과 밖이라는 경계가 사라진 <그레이트 코멧>이라는 전체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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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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