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른이 된 희숙, 미연, 미옥의 이야기 [영화]

영화 <세자매> 속에서 나타나는 폭력 그 이후
글 입력 2024.06.2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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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원 감독의 독립영화 <세자매>는 2021년 1월 27일 첫째 희숙 역의 김선영, 둘째 미연 역의 문소리, 셋째 미옥 역의 장윤주 주연으로 개봉했다. 이 영화는 어린 내복 차림의 두 소녀(미연, 미옥)들이 밤거리를 뛰어다니는 장면으로 시작하며, 이 장면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 나온 것인지는 후반부에 들어서야 자세히 밝혀진다. 이 오프닝 이후 영화는 어른이 된 세 자매가 보여주는 삶의 군상들을 자세하게 묘사하며 서서히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미연과 미옥에게는 배 다른 언니이자(돌림자를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눈치챌 수 있다) 첫째인 희숙은 돈을 계속 필요로 하는 남편과 별거 중이고, 락에 빠진 딸과의 관계도 그닥 좋지 않다. 암에 걸렸지만 그 사실을 털어놓을 긴밀한 관계의 친구도 없고, 종종 자신이 운영하는 꽃집 속 꽃으로 자해를 하지만 딸에게 들키기도 한다. 다른 두 자매와 달리 경제적으로도, 커리어의 측면에서 더 열악한 위치에 있음이 암시된다. (그리고 나중에 희숙이 남동생과 함께 그 강도가 강한 직접적인 폭력의 피해자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둘째인 미연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고 고상해 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 남편은 대학 교수이고, 외적으로는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안정된 가정 속에서 교회의 성가대 지휘를 하며 교회 생활에도 충실하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들에게 종교와 격식을 강요하고 이는 학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여기서 미연이라는 인물 속 내면의 부조화와 폭력성이 암시되고, 남편의 불륜 사실이 밝혀지고 난 후 그는 이혼에서 유리한 조건을 점유하기 위해 준비하며 절정을 맞이한다.

 

셋째 미옥은 극작가로서 연극계에서 성공했지만 알코올 중독증에 시달리며 솔직하고 거침없는 말과 행동을 구사한다. 부유하고 자신보다 연상이며 항상 순애보를 보여주는 과일가게 남자 상준과 결혼했지만, 그가 전 아내와 낳은 아들 성운을 새엄마로서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라 매번 서툰 행동으로 귀결된다.

 


 

이해할 수 없는 세 명, 사실은 가정폭력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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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에 들어서 각각의 삶 속에서 부조화와 괴리를 겪고 있는 세 자매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의 가정 폭력 피해자임이 드러난다. 눈치를 보던 언니들을 대신해 바닷가에서 천진하게 춤을 출 정도로 너무 어렸던 미옥의 경우 그 당시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언니 미연에게 어긋난 기억의 조각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 물어보기도 한다. 맨발로 언니 미연과 함께 슈퍼로 뛰어갔던 과거 기억이 왜 발생했는지 미연에게 질문하는 미옥의 말은 오프닝 장면과 겹치며, 아빠가 언니 희숙과 남동생 진섭을 때린다고 신고하려 했지만 주변 이웃들이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사적인 일’이자 심각하지 않은 일상의 사건으로 치부하며 구조 신호를 묵살했던 장면이 (과거의 일을 표현하는) 흑백 화면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이러한 반전 속에서 세 자매가 겪는 여러 증상이나 이로 인해 파생되는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지게 되는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임이 밝혀진다. 아버지의 폭력을 겪었어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가족주의 질서 속에서 그 폭력의 발생과 원인은 ‘교육’이나 ‘훈육’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문화적으로 정당화되고, 신고와 회복이라는 공동체적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로 쉬이 봉합된다. 하지만 한번도 드러난 적 없던 상처는 그들에게 체화되고, 두 언니들처럼 그 기억을 억눌렀거나 아니면 셋째처럼 기억하지 못했음에도 유년 시절의 학대 트라우마는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현재 ‘세 자매’에게 개입한다. 자해로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는 희숙, 자신의 자녀에게 학대를 대물림하며 전형적인 위선을 보여주는 미연, 알코올 중독에 빠진 미숙의 모습을 통해 어린 시절의 외상이 어떻게 근본적인 원인을 숨긴 채 잠복해 있다가 의식 위로 드러나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의 피해 사실이 은폐되도록 한 원인은 한국 사회에 내재한 가부장주의와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생활의 영역으로 할당한 근대적 공권력의 공모다. 과거 슈퍼 속 이웃들과 미연, 미옥과의 대화 속에서 아버지라는 인물이 (미연과 미옥의) 어머니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암시되지만 어머니는 이를 크게 문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될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가정 폭력은 자연화된 상태다. 폭력의 피해자임에도 이를 드러내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희숙처럼 억누르고 자신의 잘못으로 탓하며 살거나, 미연처럼 가해자와 닮아가고 겉과 속이 다른 삶으로 사는 것, 그리고 미숙처럼 과거를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피해자가 택할 수 있는 여러 방어 기제의 양상들이다.

 

또한 이러한 맥락 속에서 결말 부근에 ‘목사’의 눈치를 살피는 아버지의 개신교 신앙, 정확히는 한국 교회 활동에 몰입한 점은 아버지처럼 교회 활동에 충실한 채 자신의 자녀에게 기도를 강요하는 미연의 모습과 겹치며 의미심장한 장치가 된다. ‘삼위일체’ 교리를 성가족에 적용해 아버지-어머니-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완전한 것으로 상정한 크리스트교 가족 윤리는 자녀의 순종과 복종을 전제한 위계적인 것으로서 한국 사회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만나 그 폭력성을 더 심화되도록 한다. 미연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할 때 종교에 매달렸음이 결말 부근의 대사를 통해 나타나지만, 기도를 하지 않는 자신의 어린 딸을 방에 가두는 장면에서 종교 역시 억압과 폭력의 재생산의 수단으로 전락했음이 드러날 뿐이다.

 

 

 

가정 폭력 피해자의 ‘부모-되기’


 

영화 <세자매>에서는 어른이 되어 ‘부모’가 된 세 자매들이 자신의 자녀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갈등과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장면이 묘사된다. 즉, 세 자매와 그들의 자녀는 가족이라는 이념형에 제대로 맞지 않고 튕겨져 나오거나 삐걱거리는 면모들은 이 작품이 가지는 리얼리즘적 요소를 더욱 강화한다. 희숙에게 욕도 서슴지 않고 희숙을 한심해하는 희숙의 딸, ‘고상한’ 말투로 신앙에서 비롯된 억압을 자행하는 미연의 아들과 딸, 그리고 부모의 이혼으로 혼란을 겪는 와중 생긴 새엄마 미숙을 대하는 ‘새아들’ 성운까지. ‘부모-되기’가 부모의 과제라면, 외상에 시달리는 세 자매의 ‘부모-되기’는 덜컹거림과 갈등을 수반한다.

 

그렇지만 <세자매>의 결말 시점 이후 자매의 세대와 그들의 자식으로 대변되는 그 다음 세대 간의 관계 회복의 가능성 역시 암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첫째 희숙의 딸 보미는 생일 축하를 위해 모였을 때 엄마의 암 사실을 밝히며 할아버지에게 따질 수 있었고, 왜 ‘사과를 못하냐고’ 어른들을 꾸짖을 수 있는 새로운 언어로 무장한 세대다. 엄마 희숙과 아빠인 희숙의 남편의 갈등을 보고 자랐을 그에게 이러한 감각은 낯선 것이 아니며 ‘효도’ 이데올로기의 위계적이고 불합리한 면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혼 가정인 미옥의 (양)아들 성운 역시 미옥과 러닝타임 초중반부에 친엄마와 학부모 상담이 겹친 일 때문에 새엄마를 ‘또라이’로 생각하지만 이 사실을 알아챈 아버지 상준에게 한 대 맞은 것보다 더 미옥이 상준을 ‘팬’ 일 덕분에 미옥과 더 친해질 가능성이 암시된다. 가장 모호한 부분이 신앙을 강요당했고 미연과 미연의 남편의 이혼이 예정된 이후 미연의 자녀들인데, 이는 미연이 이 영화가 끝난 뒤로 어떠한 행동을 취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결말에서 ‘분출’이 할 수 있는 일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마지막 폭력적인 가부장인 아버지 아버지의 생일 파티를 위해 대관한 장소 속에서 벌어지는 절정과 결말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희숙과 함께 아버지의 직접적인 폭력의 피해자이자 장애인인 남동생 진섭은 교회 목사님이 온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소변을 갈긴다. 이 이후 벌어지는 ‘소란’은 이 영화에서 모든 억압된 것들을 다 터뜨리는 극적인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한다. 미연은 과거 어린 시절의 경험을 울분으로 토하듯 외치며 사과를 요구하고, 희숙의 딸 보미는 여전히 눈치를 보는 희숙의 암 사실을 가족에게 밝히며 사과를 하지 않는 어른들을 향해 소리친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가해자인 아버지는 교회 목사에게 자신의 치부를 들킨 충격 때문인지 유리창에 머리를 찧으며, 사과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폭력과 학대의 경험에 대해 공동체가 논의하는 것이 시민사회의 필수 조건이지만, ‘작은-사회’인 가족에서는 물론 이웃들로부터 버림받은 그들의 상처는 한번도 해결을 거치지 못했다. 오랜 기간동안 쌓이고 곪은 상처가 외적인 것으로 표출되는 방식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성’ 대신 ‘광기’에 가깝게 울분을 터뜨리는 이 장면 속 표출의 욕망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새로운 정동을 반영한다. 체면을 차려 예의와 격식 있게 말하는 것이 곧 가부장제의 형식이자 어느 정도 젠더화된 요구인 상황 속에서 광기와 비-이성은 주류적인 형식과 대비되는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가부장제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인한 ‘남근적 폭력’인 상황 속에서, 세 딸들과 어린 장애인 남동생은 그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가부장제의 타자이자 ‘비-남성’ 소수자다. 그들이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곧 그들이 겪었던 폭력에 대한 공적 인정을 요구하는 것이며, 아예 밖으로 드러날 수도 없었던 가정폭력 사건을 이제 수면 위로 올리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영화 <세자매>를 보며 유사한 경험이 있던 이들이 그러한 ‘소란’이 주는 해방감을 느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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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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