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심청이가 MZ로 돌아왔다 - 심청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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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1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심청날다’ 서울 공연이 진행되었다. 이 국악 뮤지컬은 판소리를 록, 블루스, 재즈 등 현대 음악의 장르와 결합하여 밴드 ‘날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9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러닝타임은 총 80분이다. 어린아이들부터 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모였다.
국악 뮤지컬은 처음이라 설렘과 긴장을 안고 향했다. 실제로 구현된 현대적인 심청전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설렘, 특히 국악과 서양 악기들을 어떻게 융합해 어우러지게 만들었을지 몹시 궁금했다. 또 한편으로는 수험생 때 공부하기 위해 읽었던 고전문학을 오랜만에 만난 것에 대한 긴장도 존재했다. 생각해 보면 판소리는 노래인데 그때는 왜 비문학 읽듯이 밑줄 쳐가며 딱딱하게 읽었는지, 뮤지컬 심청날다를 보고 이제는 고전문학을 정말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공연은 유명한 민요 중 하나인 쾌지나 칭칭으로 시작되었다. 베이스 소리를 선두로 악기들이 하나둘 들어오며 화음이 쌓여가는데 이로써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과 현대의 서양 음악을 결합하는 시도를 하는 밴드라는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이는 일렉기타, 키보드, 드럼 같은 악기의 소리가 들어간 음악을 주로 듣는 21세기의 사람들에게 민요가 더 쉽게 다가갈 기회였다. 밴드 음악을 즐겨 듣는 나 역시도 맛있는 베이스 라인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쾌지나 칭칭을 더 귀 기울여 들었다.
극에는 판소리의 요소들이 사이사이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다. 판소리는 서술자가 극 중 개입을 하기도 하고 청중이 참여하기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반찬 투정을 하며 나가는 심청이를 보고 청중들에게 요즘에는 어떤 음식이 유행이냐는 물음을 던지고, 그 물음에 어린이들이 적극적으로 답한다. 마라탕이요. 탕후루요. 라는 대답이 들려오면 소리꾼은 다시 반응을 해준다. 그런 반응에 재미를 느낀 이들은 그다음에도 적극적으로 계속 극에 참여한다. 무대와 관객석 사이의 벽을 허물고 소통함으로써 극을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다.
심청전은 눈이 먼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져 효를 하는 ‘효녀 심청’에 대한 이야기다. 효를 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내용은 무거운 분위기와 진지한 심청이를 연상시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심청날다 속 심청이는 요즘 말로 MZ 심청이로 해석되었다.
‘효녀’ 심청이 아닌 ‘소녀’ 심청임을 강조하는 ‘소녀 심청’의 장르는 락이다. 락은 주로 젊은이들의 시대에 대한 반항정신, 자유, 진취적인 태도를 담았기에 강렬하고 거친 사운드가 특징이다. 이러한 락을 맹인 아버지를 두고 어린 나이에 효도하기 위해 철 들어야만 했던 어린 심청이의 솔직한 심정을 표현하는 데 활용한 것이다. 사실은 효녀 심청이 아닌 그냥 평범한 소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담긴 가사와 락이라는 장르가 잘 어울렸기 때문에 ‘소녀 심청’이 가장 현대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실제 심청전에서는 볼 수 없었을 심청이의 모습이기에 반짝이는 상의와 롱부츠를 신고 무대를 가볍게 누비는 자유로운 심청이가 낯설면서도 친근했다.
심청날다의 심청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함은 덤이고, 노래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위해 인수당에 뛰어들겠다고 했다. 뉴진스가 될 수 있냐는 천진난만한 심청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끔뻑 속아 넘어가는 순수한 심청이. 현대 사회에서 어리디어린 16세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심청날다의 심청이는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는 너무나 철들어버린 심청전의 심청의 모습을 볼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뮤지컬이라면 음악은 물론이고 춤 동작도 함께 들어간다. 판소리에도 몸을 움직여 가락이나 내용을 표현하는 발림이 있다. 이러한 발림은 심 봉사가 맹인 잔치를 가던 중 방아 찧는 여인을 도와주며 부른 방아타령에서 가장 돋보인다. 손과 발을 위주로 위아래로 휘젓는 동작을 반복하는 데 직관적이고 쉬워 내적으로 함께 보이지 않는 방아를 찧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중간중간 4명의 무용수가 나와 보컬 뒤에서 춤을 추며 무대를 메꿔 주기도 한다.
심청날다는 현대음악을 접목한 동시에 현대기술도 실용성 있게 무대에 활용했다는 것에 주목했다. 바다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극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어떤 무대 효과를 줄 것인지에 대해 프로젝션 맵핑으로 답했다. 용궁이 배경일 때는 바닥에 물결치는 표면을 투영해서 바다임을 표현했으며 또한 화초타령에서는 곡과 맞추어 꽃이 온 사방에 휘날리는 듯한 영상을 관객들과 가까운 벽면까지 투사함으로써 공간을 확장했다는 점도 인상 깊다.
LED에 나오는 미디어 아트는 음악의 속도나 분위기에 맞추어 빠르게 변화를 준다. 만약 실제 물리적인 무대미술을 사용했다면 그 정도의 속도로 장치를 전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디스플레이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 역시도 적절한 몰입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국악 뮤지컬을 보러 간다고 집을 나설 때, 국악 뮤지컬이 있느냐는 질문을 들은 것을 보면 국악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꽤 생소해 접근하기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메트라이프 재단의 The Gift를 통해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뮤지컬, 판소리, 국악, 밴드음악을 다 즐기며 새로운 문화예술에 대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던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시도를 하는 공연으로 빛나는 예술단체를 만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유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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