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뒤면 한국에 간다. 정신이 없다. 봐야 할 다섯 과목의 시험과 귀국 준비,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여행들. 욕심쟁이에게는 몸이 더 필요하다. 여느 때와 같이 시내로 나가는 버스 안에서도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놓칠 수 없어 창문에 딱 달라붙어 있곤 한다. 분명히 그리워질 이 순간들을 알고 있음에도 붙잡을 수 없다는 것. 아름답지만 서글프다.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며. 반년간 몸담았던 튀빙겐을 되돌아본다. 이 글은 튀빙겐에게 바치는 헌정의 글이 되겠다. 녹색 위주로. 일기 그리고 보고서 그 중간쯤이 되었으면 한다.
튀빙겐은 독일의 남서부 지역 바덴뷔르템베르크 (Baden-Wuettenberg)에 위치한 시골 대학 도시이다. 위쪽에는 프랑크푸르트가, 오른쪽에는 뮌헨이 있다. 1477년에 설립된 튀빙겐 대학교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대학 도시라고 불릴 만큼 캠퍼스과 도시의 경계가 모호하고 전체 인구의 ⅓ 이 대학생인 만큼 젊은 활기를 느낄 수 있다. 실제로 2022년 기준, 독일의 모든 도시 중 가장 낮은 평균연령을 기록했다. 1995년에는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된 적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다른 어떤 도시를 여행해도 이만큼의 젊음을 느끼기는 어렵다. 덕분에 치안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다.
튀빙겐 하면 친환경을 빼놓을 수 없다. 원체 환경에 관심이 많은 독일이지만, 튀빙겐은 유독 녹색 도시라고 불릴 만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실제로 녹색당의 초강세 지역이기도 하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넥카강(Neckar)과 왼쪽에 위치한 산림. 토요일에는 버스가 무료이고, 도시의 중심가는 모두 자가용이 아닌 버스와 자전거를 위한 것이며, 포장세(Package Tax)를 처음으로 도입한 곳이기도 하다. 그 흔한 스타벅스도 없는 이 사랑스러운 도시에는, bio market이 무려 3곳이나 있다.
예사롭지 않음을 감지 한 나는 간단한 서치를 한다. 2019년 7월, 튀빙겐 시의회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순 제로”(Netto-Null)로 만들기 위한 기후 보호 프로그램의 초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2020년 11월, 난방과 전력 그리고 교통 분야에 이 프로그램을 채택했으며, 튀빙겐 시장 보리스 팔머 (Boris Palmer) 는 15년의 역임 기간 동안 크게 이바지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이 담긴 계획서는 모두 독일어로 되어있어서 읽을 수 없지만. 지난 6개월간의 경험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모두가. 정말 모두가 버스를 이용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아무래도 유모차를 끄는 엄마 아빠들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대부분 아이를 가진 가정의 외출은 자가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 대중교통은 항상 사람이 붐비고 불편하기 때문이겠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아이가 조금 소란스럽게 굴더라도 괜찮다. 유모차나 휠체어가 무거워서 버스에 올라오기 힘들어도 괜찮다. 이미 준비된 그들을 위한 넓은 공간, 아이는 원래 다 그렇지- 라는 사랑스러운 눈빛과 따듯한 무관심. 어르신분들과 아기들을 만난 버스는 바닥과 가깝게 내려가거나 기사님이 직접 뛰어와 주시곤 하니까 말이다. '대중' 교통의 이름값을 단단히 하는 튀빙겐의 버스. 심지어 모두 전기 버스이다!
가난한 교환학생은 튀빙겐에서의 외식이 손에 꼽는다. 그중 Döner 를 먹으러 갔을 때였다. 영어를 못하시는 점원에게 손짓발짓을 통해 얻어낸 음식에는 포장세가 포함되어 있었다. 자릿세는 많이 봤어도. 포장세라니. 2022년 1월부터 튀빙겐은 도시의 포장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일회용 플라스틱 품목에 세금을 도입했다고 한다. 호일과 접시, 아이스크림 컵을 비롯한 모든 일회용 식음료 용기에 포장세 50센트(약 730원), 일회용 수저에 20센트(약 300원) 정도를 부과한다고 한다.
재활용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우리나라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만, 독일에는 유리병을 색깔대로 분류하고.... 무엇보다 교환학생의 소확행 '판트(Pfant)'가 있다. 2003년 1월부터 독일에서 시행하고 있는 공병 회수금 제도로, 한국어로 ‘보증금’이라는 뜻이다. 크게 일회용 공병 회수와 다회용 공병 회수로 나뉘는데, 독일 슈퍼마켓에 가면 판트 기계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페트병, 알루미늄 캔, 유리병의 바코드 위쪽에 표시된 Pfant(판트) 마크를 확인하고 기계에 넣어주기만 하면 끝이다. 독일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97~99%의 일회용 공병이 회수된다고 한다. 페트병 뚜껑이 한국과는 달리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데, 이는 뚜껑의 회수율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이다. 보증금은 바코드 형식의 영수증으로 돌려준다. 계산할 때 현금처럼 포인트를 사용하거나 캐셔에게 현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다. 덕분에 과자를 공짜로 먹거나, 양파를 무료로 얻는 것만 같은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튀빙겐 마을 초콜릿 마켓에서 두바이 초콜릿을 담고 있는 일회용 컵에도, 기숙사 안에 위치한 클럽의 술잔에도 보증금이 존재한다. 한국도 공병 회수를 하지만 이에 대한 참여도는 대단치 않다. 소주병 같은 유리병만 가능해서인지 특히 젊은 사람들의 인식이 아쉽다. 단순히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함이라기보다는 환경 보호에 대한 의식이 선행되면 좋겠다. 공병 회수 시스템을 보다 더 편리하게 자동화하여 만든다면 참여율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참 그리고 Vegan을 빼놓을 수 없다. 기숙사에서 친해진 독일 친구들 5명 중 3명이 고기를 먹지 않는다. 덕분에 얼마 전 있었던 디너 파티에서의 메뉴를 닭갈비에서 떡볶이로 변경했다. 그날 다른 친구들의 오이 애호박 파프리카 당근 버섯 그리고 고구마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장 보러 마트에 가면 아주 다양한 비건 식품을 볼 수 있다. 비건이 없는 품목이 없을 정도로. (하리보에도 비건이 있다. 내 취향은 아니었다) 심지어는 어떤 레스토랑이나 음식점에 가도 비건 메뉴가 꼭 존재한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에 한창 빠져있을 때라, 한국에서는 비교적 보기 드문 모습이라 신선하게 느껴졌다. 곱창, 막창, 선지, 삼겹살, 순대, 돼지껍데기....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면서도. 거리 두어 생각 해보는 기회였다. 내가 먹는 음식들이 정확히 어떤 음식들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의 입으로 전달되는지 다시금 생각해 본다. 내가 먹을 것들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행복했던 것은 초록색을 가까이서 자주 볼 수 있다는 것. 기숙사에서 3분만 걸어 나오면 육교가 나오고, 작은 언덕이 나온다. 언덕 위에 올라가 의자에 앉으면 내려다보이는 튀빙겐. 날씨가 좋을 때면 무작정 나와 걸었다. 가끔은 노래를 틀고 춤을 추기도 했다. 어딜 어떻게 걸어도 날 반기는 나무들. 서로 누가 더 키가 크고, 몸집이 큰지 자랑하지 않는 검소한 그러나 개성 있는 건물들이 날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독일에서 나는 이방인이지만, 나무들 사이에서 나는 이방인이 아니니 말이다.
여전히 담고 싶은 것들이 많다. 녹색 키워드를 과감히 빼버리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나만의 이야기들을 줄줄이 써 내리고 싶은 욕구를 눌러 담으며. 얌전히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9월의 꿀벌들, 10월의 낙엽들, 11월의 구름들, 12월의 불빛들, 1월의 별빛들 그리고 다가올 2월의.... 작고 사랑스러운 초록빛의 튀빙겐은 언제까지나 나의 도피처가 되어줄 터이다. 삶이 버거워질 때면 튀빙겐을 떠올려야지.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이런 공간에 속한 경험이 있었지- 하며. 잊지 않고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함께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