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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인간이라는 신성한 창조물을 금요일에 만들었고 소원을 들어주는 사탄인 지니를 목요일에 만든 장본인 ‘신’, 과연 그가 내리는 ‘권선징악’의 정의는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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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결말은 해피엔딩을 좋아하고 결국에는 선이 악을 굴복시키는 끝을 좋아한다. 새드엔딩도 매력있고 악이 승리하는 것도 현실적이라 의미는 있다만, 드라마에서만큼은 선이 악을 영원히 이기는 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선과 악의 싸움에는 끝이 없으니까 신이 인간이 아닌 어떤 창조물을 만들어내든 그 싸움이 없는 세상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긴 시간을 들여 납득이 가는 결말에 이르게 잘 빚어낸 드라마를 보면 정말 언젠가 선이 영원히 이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건 곧 작게나마 품을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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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은숙 작가의 넷플릭스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를 보고 난 후에는 어떤 게 ‘권선징악’일지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극악무도하게 나쁜 존재도, 청렴결백의 선한 존재도 없었다. 인간이든 천사든 사탄이든 동물이든, 생명이 붙어있는 것들은 모조리 선하고 악했다. -악하고 선했다.- 내가 아는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 그 둘을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악’의 근거를 찾는 것보다 차라리 ‘선’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편이 쉬워서 세상이 정해놓은 ‘선’을 따랐나 싶기도 하다.

 

 


‘권선징악’의 정의?


 

이 기사를 시작한 후 ‘권선징악’이라는 말을 벌써 3번이나 썼으니 늦었지만 이제라도 개념을 짚고 넘어가 보려 한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권선징악’은 ‘선을 추구하고 악을 벌한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선’은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음.’이고 ‘악’은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 나쁨.’이다. 그렇다면 ‘도덕적 기준’은? 어떤 기준이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명사는 결코 혼자 쓰이지 못할 것 같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라는 말이 있듯이 나라마다 도덕적 기준이 다를 터이고 작게는 가족마다, 크게는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서도 도덕적 기준이 다를 것이다. 이 우주를 만들어낸, 어쩌면 그것보다 더 큰 무언가를 만들어낸 시초의 우두머리가 나와 ‘선’과 ‘악’, ‘도덕적 기준’을 설명하지 않는 이상 다 해석하기 나름일 것 같다.-그 자가 와도 명쾌한 정의를 내려놓긴 어려울 것이다.-

 

‘권선징악’의 정의 하나를 설명하려 했을 뿐인데, 지금 이 문단에는 언급하지도 않은 질문들까지 내 머릿속에는 끝도 없이 생기고 있다. 세상은 절대 딱 떨어지게 이등분 할 수 없으며 그것만은 굳이 창조자가 나서지도 않아도 줄곧 긍정해 온 사실이다. 그 이분법에 해당하지 않는 건 ‘선과 악’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니 ‘선과 악 경계의 모호함’에 관한 물음표를 이 드라마를 본 직후에나 떠올렸다는 것은 그저 외면하고 싶은 사실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인간의 선함과 악함, 다~증명해낼 수 있니?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램프 주인의 소원 3개를 들어주는 사탄 ‘지니’와 그 램프의 주인인 사이코패스 ‘기가영’은 인간의 선함과 악함을 놓고 내기를 한다. 소원의 기회를 마주한 모든 인간의 끝은 결국 타락임을 굳게 믿어왔고 증명해온 지니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기가영은 첫 번째 소원을 쓴다. 생명이 있는 존재 다섯에게 각각 소원 3개를 빌 수 있게 하고 그중 3명이 타락하면 지니는 기가영을, 3명이 타락하지 않으면 기가영이 지니를 멸하는 것이다.

 

극이 전개되면서 숨겨져 있던 실마리들이 풀리고 꼬이기를 반복한다. ‘악’을 지칭하는 많은 장치 중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 ‘악’-또는 ‘선’-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악’을 일부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자신들도 모르는 새에. 그 예는 ‘기가영’을 ‘사이코패스’로 분류하는 것부터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위험하다고 보는 ‘사이코패스’는 그 정도와 기질에 따라 위험성이 천차만별이다. 물론 문외한이 내가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인간이 하는 많은 차별이 그렇듯 ‘사이코패스’도 사회적으로 정의하는 ‘정상’과 다른 부류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쉽게 상처 입힌다.

 

드라마에서 주변 사람들은 기가영에게 ‘못됐다’, ‘이상하다’, ‘악하다’라는 말을 상처가 되는 줄도 모르고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그 말이 입버릇이든 진심이든, 아무리 기가영이 감정 결여든 상처를 받는다. 사이 패스이기 이전에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지 않듯이 사이코패스도 모두 다른데, 인간은 단어를 만드는 동시에 ‘악’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끊임없는 비교와 욕망이 만들어낸 악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가지지 못한 것에 결핍을 가진다. 그게 가지면 해결되느냐? 그것도 아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자신보다 잘난 존재를 깎아내려도 해결되지 않는다. 무언가 얻으면 잃는 것이 존재하지만 그 질기고도 영원한 진리를 남은 소원으로 어떻게든 바꿔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은 무섭다. 하지만 그것도 희망의 일부였으리라. 인간으로 태어나 결핍을 끼고 살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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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주의’ 인간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이런 ‘악’을 두고 신기하게도 ‘지니’와 ‘사이코패스’가 ‘선’을 겨룬다.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역시 비상하다. 그런 캐릭터들을 데리고 인간의 선함을 끝내 증명해내 지니가 멸하였는지, 그래서 세상은 돌도 돌아도 선이 승리할 테니 가지고 있는 선한 본성을 잃지 말라느니 그런 뻔한 ‘권선징악’의 이야기를 뻔한 방식으로 들려줄 리가 없다. 우리의 김은숙은.


김은숙은 ‘선’과 ‘악’, ‘천사’와 ‘사탄’이라는 친숙하고도 잘 모르는 주제를 미끼 물기 좋게 던져놓고는 초점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저 우리가 이 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이 슬프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주어진 생을 잘 맞이하고 떠날 수 있는 태도는 무엇인지. 김은숙이 일러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과는 자연히 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선’은 내가 정의하고 느끼는 ‘선’이다. 나조차도 무엇이 ‘선’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으로 가는 길에 ‘악’한 짓을 안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미 그 경계는 모호해졌다.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악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옳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가치를 지니고 다른 환경에 처했고 다른 방식을 가진다. 드라마를 다 시청한 후에도, 이 글이 끝나가는 지금도, 여전히 옳음과 그름을 분명히 판단할 순 없지만 선택은 나의 몫이다.

 

내 삶이 고유하듯 타인의 삶도 고유하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한 가지의 교훈을 얻지는 못했지만 복잡하고 사랑스러운 생각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이 다짐과 희망과 절망과 슬픔의 문장들을 곱씹고 순간의 선택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선과 악의 경계를 춤추듯 탈 수 있으려나. 그걸로 ‘권선징악’도 가능하려나. 애초에, 누가 뭘 권하고 뭐가 벌해지는 게 타당한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길 그치지 않지만 종국에는 다~ 이루어질려나?


내가 만나는 지니는 나와 ‘권선징악’에 뜻하는 바가 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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