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실 12월에는 '괴물'보단 '원더풀 라이프'를 [영화]

영화 '원더풀 라이프' 리뷰
글 입력 2023.12.0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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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스포일러가 존재함을 미리 알립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열여섯번째 장편 영화인 ‘괴물’이 성황리에 개봉한 시점에서 나는 집에서 ‘원더풀 라이프’를 보았다. (‘괴물’도 곧 볼 것이다. 나도 사실 보고 싶다) 그의 두 번째 영화인 ‘원더풀 라이프’는 1999년에 개봉했다. 00년생인 나보다 먼저 태어난 영화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나의 생 이전에 탄생한 생 이후를 다루는 영화를 생의 가장 푸른 계절에 본다는 것. 영화가 선사하는 오묘한 경험이다. 예술에 올라탄 우리는 손쉽게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

그러나 어느덧 12월. 한 해의 마지막 달. 거스를 수 없는 현실. 이맘때쯤 나의 기분은 말 그대로 허무하다. 치열하게 사는 사람에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간다. 그것은 곧 시간이 나의 것도 나의 것이 아닌 것도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시간이라는 게 오롯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쪼개고 통솔하며 열심히 소비하던 순간도, 누구에게나 주어지기에 가치 없다는 듯이 여기는 태도로 펑펑 써버렸던 순간도 모두 정답이 아니었다고 12월은 내게 일러준다. 시간은 상대적이라지만 평생 동일한 속도로 흐르는 걸 부정하지 말라고. 어떻게 살았건 모두에게 여지없이 한 해는 끝났다고. 우리는 주저 없이 한 살 더 먹게 된다고.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늙어가고 있지만 12월은 나의 늙어감을 잔인하게 통보하는 달. 두 자릿수의 고지서가 곧 마음속으로 쓸쓸히 날아올 것이다.

정도껏 쓸쓸하기 위해 우리는 연말을 핑계로 사람들을 만나고 위로처럼 덕담을 주고받는다. 집으로 돌아와 하는 일은 고요히 한 해를 회고하는 일. 그러나 그건 나에게 어려운 일이다. 나는 과거를 떠올리는 게 낯부끄러운 사람이다. 좋은 기억은 현재를 초라하게 만들고 나쁜 기억은 그 자체로 민망하다. 모든 경험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사실이 현재보다 작은 과거의 나를 떠올리는 일을 어렵게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언제나 멀어지거나 떠나간 사람들이 있다. 때때로 과거는 나를 외롭게 한다.

그러나 지금은 12월인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시기가 온 것이다.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다. 내년으로 넘어가기 위해 올해는 꼭꼭 씹어 삼켜내야 한다. 과거를 돌아보니 어김없이 현재는 초라하고 내년은 불확실하다. 12월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나를 배반한다. 시간의 궤도에서 잠시 이탈해 새롭게 기댈 곳을 찾아야 한다. 이를테면 영화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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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라이프’에서도 사람들은 반드시 과거를 회고해야 한다. 심지어 소중한 기억을 단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하나를 고르면 나머지 모든 기억은 모조리 잊어야 한다. 영화의 배경인 이승과 저승 사이의 세계 ‘림보’의 규칙이다. 영화 속 저승관에는 천국과 지옥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림보’에 가고, 죽은 자들은 이곳에서 선택한 하나의 기억만 가지고 저승으로 떠난다.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다른 선택지를 포기하는 태도가 내재되어 있다. 다른 기억들을 모두 포기하고도 그 기억을 선택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무엇보다 정확하게 말해주는 지표가 아닐까?

물론 하나의 기억만이 영원토록 남는다는 설정은 사람을 진중하게 만든다. 내내 섹스 이야기를 풀던 할아버지도 아내와 여행한 기억을 선택했다. 누군가는 비행기를 타고 구름을 가르던 순간을, 또 누군가는 어렸을 때 오빠 앞에서 춤추던 순간을 선택했다. 친구들과 디즈니랜드에 놀러 갔던 순간을 선택한 10대 소녀와 출산의 순간을 선택한 중년 여성도 있다. 어떤 기억을 소중하고 행복하게 여기는지는 각자의 경험과 가치에 따라 모두 다르다.
 
그러나 영화는 ‘무슨’ 기억을 선택하는지를 넘어, ‘기억을 선택하는 행위’ 자체에 다양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기억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기억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존재할 수 있다. ‘림보’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바로 이들이다. 기억을 끝까지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이 림보에 남아 직원이 된다. 자신의 기억은 끝내 고르지 못했지만 타인의 선택을 도와주고 그걸 재현하는 영상까지 만든다는 점은 다소 흥미롭다.

이미 살아 있을 때 기억을 선택한 경우도 있다. 영화에는 죽은 자 중 한 명으로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가 등장한다. 스스로를 아홉살로 생각하는 그녀를 관찰하며 직원 가와시마는 이미 선택한 경우라고 결론짓는다. ‘야마모토’라는 인물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하나를 골라서 그것만 기억할 수 있게 된다면, 나머지 기억은 전부 다 잊을 수 있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정말 천국이겠군요.” 그는 다른 모든 기억을 잊기 위해 하나의 기억을 수단적으로 선택한다.
 
마지막으로는 기억을 자발적으로 고르지 않을 수도 있다. 십 대 청소년 ‘이세야’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게 인생을 책임지는 자신의 방식이라고 말하며 끝까지 선택을 거부한다. 그는 저승에 가지 못하고 림보에 남겠지만, 이조차도 나는 모든 가능성을 포용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연출자의 세심한 면모라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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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라이프’는 판타지 영화지만 판타지적 세계관을 치밀하게 건축하는 데 공을 들이지는 않는다. 그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담아내기 위해 딱 충분한 만큼만 기능적으로 구축된 세계일 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드라마를 말하기 위해 판타지를 이용한다. 기억과 관계에 대한 사유를 들려주기 위해 판타지 형식은 영화적 소명을 다한다. 주제와 형식의 절묘한 조화는 관객들이 영화에 온전히 몰입하고 영화의 질적 의문을 제거하여 마음 놓고 영화적 세계에 자기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돕는다. ‘원더풀 라이프’는 종종 비어 있지만 그건 관객들이 개입할 틈을 선사한 것이다. 섬세히 설계되고 견고히 건축된 공터에서 관객들은 땅이 꺼질 걱정도 장애물에 부딪힐 걱정도 없이 자유로이 뛰놀 수 있다. 그렇게 하나의 작품으로서 온전한 영화는 세월에 의해 침식되지 않고 영원히 보존된다.

이 영화는 관객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서프라이즈와 서스펜스적 장면이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걸 뛰어넘는 고유한 매력이 있다.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잔잔하고 고요한 들판에서 이따금씩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의 여린 몸짓 하나에도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 된다. 그는 절제된 풍경 안에서 관계와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며 따스함을 증폭시키는 영화적 재능이 있다.
 
영화 속 직원들은 퇴소식 때 음악을 연주해주기 위해 직접 악기를 다루고 옹기종기 모여 연습한다. 그 서투른 하모니가 귀엽다. 그 잔잔한 장면이 ‘귀엽다’고 자각하는 마음. 어쩌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영화를 만드는 마음은 그런 것이다. 퇴소식 날에는 12월처럼 하얀 눈이 내린다. 마지막을 포근하게 배웅한다. 마침 우리도 연말이다. 그의 신작 ‘괴물’을 재밌게 봤다면, 아님 보기 전에 예습 삼아, 혹은 상영 중인지도 몰랐다 할지라도. 12월은 ‘원더풀 라이프’가 잘 어울리는 달이다.
 
 
[문충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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