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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줄거리를 비롯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필자는 <강철의 연금술사> 만화책을 전권 소유하고 애니메이션을 10번도 넘게 정주행한 강철의 연금술사의 ‘찐덕후’다. 인생이 삭막해졌을 때 주기적으로 생각나는 만화인데, ‘진리’라는 주제를 계속해서 곱씹고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인생만화’, ‘인생애니’의 타이틀을 거머쥔 <강철의 연금술사>가 만화 연재 20주년을 기념하여 홍대 전시장 덕스(DUEX)에서 <강철의 연금술사전> 전시회를 열었다.
필자는 전시회를 가기 전, <강철의 연금술사> (이하 강연)를 함께 ‘덕질’하는 메이트와 전시장 덕스 근처 푸딩 집에서 푸딩을 먹으며 만화 이야기 했다. 명장면 뽑기, 최애 캐릭터와 그 이유, ‘진리’의 뜻과 각자가 생각한 ‘진리’ 등, 전시회를 보기 전 달구기 작업을 했다. - 이러한 이야기는 백 번도 넘게 말했지만, 매번 서로 처음이라는 듯 말하고, 듣고 있다-
전시회장에 들어서기 전, 만화의 캐릭터를 이용한 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다.
‘만지지 마시오’라는 안내는 불꽃을 뿜는 머스탱 대령의 손 아이콘으로, 음식 반입 금지는 ‘식욕’을 담당하는 호문쿨루스 ‘글러트니’를 통해 표현했다. 출입 금지는 ‘진리의 문’으로, 카메라 플래시 사용 금지는 빛 속에서 활동하는 호문쿨루스 아이콘으로 안내하는 방식이 독특하고 참신했다.
이 센스 있는 표지판들은 강철의 연금술사 팬들이 전시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으로, 입장 전부터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었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등가교환‘이라는 세계관을 관통하는 진리가 존재한다. 즉,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하나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엘릭 형제는 죽은 어머니를 되살리기 위해 금지된 연성인 ‘인체 연성’을 시도하지만, 그 대가로 에드워드는 다리를, 알폰스는 몸 전체를 잃는다. 에드워드는 동생의 혼이라도 구하기 위해 갑옷에 혼을 이식하는 연성을 다시 시도하고, 이 과정에서 팔 하나를 더 잃는다.
이후 두 형제는 잃어버린 몸을 되찾기 위한 여정에 나서고, 여정 중 ‘호문쿨루스’라는 존재들의 위험한 계획과 맞닥뜨린다. 형제는 올곧은 신념을 가진 동료들과 힘을 합쳐 호문쿨루스의 음모를 저지하며 세상을 구하고, 본래의 몸과 새로운 삶을 되찾기 위해 싸운다.
겉보기에는 소년 만화의 전형적인 구조처럼 보이지만, 강철의 연금술사는 ‘인생의 정답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같은 심오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작품이다. 동시에 어느 만화보다 가장 소년 만화 답게 용기와 사랑, 도전과 희망을 강조하며 주창한다.
내게 이 작품이 가장 크게 와닿은 점은, 결국 진리를 넘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알폰스가 킴블리와 대치할 때, 킴블리는 선택지가 두 개뿐이라고 주장하며 알폰스를 흔들려 한다. 하지만 알폰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왜 선택지가 두 개뿐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반문하며, 몸을 되찾고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의 다짐은 진리를 거부하는 선택이었고, 결국 그는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데 성공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윈리가 에드워드의 “마음을 반반씩 나눠 갖자”는 프로포즈에 “나는 내 마음을 전부 줄게”라고 답하며, 등가교환의 법칙을 넘는 사랑을 보여준다. 이 대사는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완벽하게 체현한다.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 교훈에는 의의가 없다.
인간은 어떤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므로.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 때…
사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철 같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 강철의 연금술사 中
호문쿨루스는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중요한 반동적 존재로,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 인간의 약점을 배제하려 했지만, 결국 그들의 몰락은 이 과정에서 인간의 진정한 강점을 무시한 데서 비롯되었다.
호문쿨루스는 신에 가까워지고자 인간의 약점이라 여긴 7대 죄악을 자신에게서 떼어내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었지만, 그 결과 인간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호문쿨루스를 무찌른 것은 바로 그 "죄악"을 경험하고 극복한 인간들이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교만을 반성하며 프라이드를 무찌르고, 스카는 분노를 넘어선 이성과 희생을 통해 브래드레이를 물리쳤다.
인간의 나약함은 사랑, 희생, 성장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작품은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나약함을 극복하며 성장해가는 인간성을 통해 호문쿨루스는 패배한다. 그들이 완벽하다고 자부했던 신념은, 사랑과 성장이라는 인간성 앞에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탐구하며, 나약함을 딛고 성장하는 여정을 통해 진정한 강함을 보여준다. 호문쿨루스의 비극적 서사는 인간의 사랑과 연대의 힘을 더 깊이 느끼게 한다.
전시회에서는 이러한 심오한 세계관을 가진 <강철의 연금술사> 만화를 바탕으로 각종 일러스트와 장면들을 볼 수 있으며, 강철의 연금술사의 원작을 재현한 ‘강철의 연금술사 brotherhood’ 의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다만, 만화에 맞는 장면들을 애니메이션 성우들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또한, 강철의 연금술사 전시회에서 작가가 캐릭터에게 갖는 애정과 장면을 그릴 때 마다의 소소한 감상과 고민들을 엿볼 수 있었다. 만화책 장면 원본과 그옆에 한국어 해석본, 그리고 아래에 작가 코멘트를 나란히 붙여두어 원작 버전과 번역본, 코멘트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끔 구성해두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필자 역시 수없이 돌려본 명장면, 엔비와 머스탱의 대결 장면을 두고 작가가 남긴 코멘트다.
“머스탱이 드디어 휴즈의 원수에 도달했습니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저 개인도 어떻게 엔비를 쓰러뜨릴까 하고
머스탱에 감정이입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막상 그리기 시작하면 엔비의 마음도 들어오더라고요.
복수를 하게 할 것인가, 못하게 할 것인가.
객관적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엔비의 최후를 어떤 형태로 그릴지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이 코멘트를 읽으며, <강철의 연금술사>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아라카와 히로무 작가가 이야기한 고민은 단순히 창작자로서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복잡한 감정을 객관적으로 풀어내야 하는 딜레마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머스탱의 복수를 그리면서 그 감정에 몰입했다가도, 엔비 캐릭터의 내면까지 생각하며 복수의 의미와 결과에 대해 고민한 작가의 태도는 그 자체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작가가 "복수를 하게 할 것인가, 못하게 할 것인가"를 두고 갈등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단순히 극적인 장면을 넘어 인간 본성과 감정의 복잡성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그려내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독자인 나 역시 그 장면에서 머스탱의 분노와 엔비의 처절한 감정 모두에 이입했던 만큼, 작가의 이 코멘트는 그 감정의 균형을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며 작업했는지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곳곳에 연성진이 펼쳐진 포토존과 영상물이 상영되는 공간들이 마련되어있어 지루하지 않게 관람할 수 있었고, 마지막에 팬들의 한마디를 남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빼곡하게 채워진 팬들의 포스트잇을 보면서 20년이 지나도 강철의 연금술사가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저마다 생각하는 명대사나 명장면, 혹은 캐릭터 일러스트, 만화와 관련된 추억이나 감상을 적어둔 포스트잇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사랑받고 모든 이들이 명작이라고 칭하는 만화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너희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존재
또는 ‘우주’, 또는 ‘신’, 또는 ‘진리’.
또는 ‘전체’, 또는 ‘하나’.
그리고… 나는 ‘너’다.
- 강철의 연금술사 中
“아픔을 동반하지 않는 교훈에 의미는 없다”는 심오한 메시지로 시작한 <강철의 연금술사>는 2001년 <두 명의 연금술사>라는 제목으로 첫 연재를 시작했다. 2010년 완결된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인생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진리라고 믿었던 진리를 깨부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진리’에 다가갈 수 있었던 모순과 ‘사랑’을 근간으로 어떤 존재보다도 가장 나약한 인간이 가장 강함을 보여주는 <강철의 연금술사>를 보며, 인간은 무엇인가, 인생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많이 고민할 수 있었다.
<강철의 연금술사> 만화의 이모저모를 잘 담아낸 전시회인만큼, 이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