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하루에 몇 가지의 표정을 지을까?
피곤하고 지루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짓는 표정,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짓는 표정, 혼자 사색을 즐길 때의 표정, 침대에 널브러져 가장 편안한 상태로 늘어질 때의 표정은 모두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무수히 많은 표정을 짓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리에서 스쳐 지나치는 타인들의 표정은, 그들이 가진 무수한 얼굴 중 과연 몇 번째 단면일까? 아마도 우리는 그들이 가진 수천 가지 얼굴 중, 오직 스쳐 지나가는 단 하나의 단면만을 목격하고 있을 것이다. 나조차 나의 모든 얼굴을 설명할 수 없는데, 하물며 타인의 그 모순되고 아득한 속내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이제한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환희의 얼굴〉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영화 〈환희의 얼굴〉은 일종의 단편 소설집과도 같은 형태를 띄고 있다.
관객은 ‘소설가의 집, 방문자들, 꿈과 희망의 나라로, 환희의 얼굴’이라고 이름 붙은 네 편의 단편을 주인공 환희와 함께 통과하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여정의 주체인 환희(정이주 분)는 이해하기 까다로운 인물이다. 순수하고 여린 마음의 문학소녀인 것 같았다가 갑자기 영악하고 속이 까만 사람으로 돌변하더니, 곧 이어서는 오래 알지 않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가장 가까웠던 상대를 가장 믿기 힘든 방식으로 배신하기도 한다. 관객은 환희의 여정을 따라가면서도 환희가 어떤 사람인지, 선인인지 악인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환희는 어떤 사람일까? 환희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영화는 '환희'라는 인물의 서사를 친절히 설명해 주는 대신, 그녀의 불완전하고 모순된 얼굴들을 스크린 위에 그저 펼쳐놓을 뿐이다.
그리고 이 친절함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하루에도 무수히 스쳐 지나가는 타인들의 존재 방식과 닮아있다. 타인을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듯, 환희의 다양한 얼굴 역시 장면 몇 개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다.
단서가 주어지지 않는 영화를 볼 때 관객이 느끼는 피로함은, 어쩌면 타인이라는 아득한 세계를 마주할 때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삶의 피로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롱테이크로 촬영된 대화 장면은 각 인물들의 관계와 심리를 첨예하게 포착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배우들의 연기였다. 수수께끼같은 환희라는 인물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들었던 정이주(환희 역), 실제 상황인 듯 담담하면서도 생활과 밀접한 연기를 보인 김시은(난영 역), 누구나 겪어 봤을 '내가 작아지는 순간'을 표현한 황미영(기정 역)까지.
길고 불명확한 대사에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장면도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과 목소리가 관객들을 이끌어 준다.
푹푹 찌던 여름날이 계속될 것만 같더니, 갑자기 바람마저 얼굴을 바꾸었다. 하룻밤 새 부쩍 차가워진 공기는 여태 몰랐던 얼굴들을 만나는 영화 〈환희의 얼굴〉과 썩 잘 어울린다.
영화 〈환희의 얼굴〉은 바람이 차가워진 9월 9일부터 전국 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