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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무대 위 여성들의 이야기 ① | 여성은 왜 무대 위에서 죽어야 했을까 [공연]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푸치니의 ‘나비부인’,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by 김지수 에디터
2026.11.0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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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특히 오페라와 뮤지컬 같은 서사 예술 속 인물들은 당대 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신념이나 가치를 투영한다. 여성 캐릭터 역시 그 시대의 여성의 위치를 반영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페라에는 유독 비운의 여성들이 많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받거나 남성의 배신으로 삶이 무너진다. 어긋난 사랑과 사회적 억압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비극이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한다는 사실이다. 여성의 절망은 애절한 아리아가 되고, 때로는 광기마저 화려한 선율로 표현된다. 관객은 그들의 고통에 감동하고, 공연이 끝나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왜 여성 캐릭터들은 이토록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해야만 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그 비극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하는 것일까?

       

       

       

      전통 오페라 속 여성 비극의 전형적 모습: 희생과 순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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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2022) 공연 장면. 비올레타 역 프리티 옌데, 알프레도 역 조너선 테텔먼. 사진: Cory Weaver / San Francisco Opera


       

      19세기 낭만주의 오페라에는 광기와 착란, 비극적인 사랑이 자주 등장한다. '실성의 시대'라는 표현이 떠오를 만큼 인물의 극단적인 감정과 파멸은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데 활용되었다. 특히 여성 캐릭터는 종종 남성 중심 사회의 희생양이 되거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등장하는 비올레타가 있다.

       

      비올레타는 '길을 잃은 여인', '타락한 여인'이라는 작품 제목처럼 당시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비난받던 코르티잔(부유층을 상대하는 고급 매춘부)이다. 그러나 파리 사교계의 꽃으로 불릴 만큼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그녀는 당당하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런 비올레타가 청년 알프레도와 사랑에 빠지면서 진실한 사랑을 갈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와 사회적 위치 때문에 '자신이 정말 사랑을 해도 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러한 마음은 아리아 '아, 그이인가(Ah, fors'è lui)'에서 드러난다. 사랑으로 인한 기쁨과 황홀함, 설렘과 함께 그 감정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혼란스러움이 음악에 담겨 있다. 뒤이어 부르는 '언제나 자유롭게(Sempre libera)'에서는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겠다고 노래하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알프레도의 목소리에 다시 흔들린다.

       

      나는 이 장면에서 비올레타가 느끼는 사랑의 기쁨만큼이나 두려움이 인상적이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감정인 것 같은데, 그녀는 자신에게 그 사랑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결국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다. 그러나 알프레도의 아버지는 가족의 명예와 딸의 결혼을 이유로 두 사람의 이별을 요구한다. 비올레타는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그 이유를 모르는 알프레도에게 오해와 모욕까지 받는다. 이후 병세가 깊어진 그녀는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의 죽음은 결핵으로 인한 것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이유에는 사회적 신분과 도덕적 편견이 있었다. 비올레타의 비극은 개인적인 불행이면서 동시에 당시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했던 도덕적 기준과도 연결된다.

       

      무엇보다 비올레타는 처음부터 사랑에 순응하며 희생하기만 했던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자유로운 삶과 진실한 사랑 사이에서 고민했고, 자신의 의지로 사랑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결국 포기를 요구받은 사람은 비올레타였다. 그녀의 희생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만큼, 왜 그 희생을 그녀가 감당해야 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기다림 뒤에 숨겨진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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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 오스트레일리아 (2015) 공연 장면. 사진: Jeff Busby / Opera Australia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또한 여성 캐릭터가 남성에게 버림받고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는 점에서 순종적인 사랑과 일방적인 희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일본인 여성 쵸쵸상은 미국 해군 장교 핀커턴과 결혼한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결혼이 가지는 의미는 다르다. 쵸쵸상에게는 자신의 삶을 걸 만큼 진지한 약속이지만, 핀커턴은 일본에서의 결혼을 일시적인 관계처럼 여긴다.

       

      미국으로 떠난 남편이 울새가 다시 둥지를 틀 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자, 쵸쵸상은 그 말을 굳게 믿고 몇 년을 기다린다. 주변 사람들이 남편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해도 그녀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기다림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곡이 '어느 갠 날(Un bel dì, vedremo)'이다. 쵸쵸상은 먼 바다에서 배 한 척이 나타나고, 그 배에서 내린 남편이 자신을 찾아오는 모습을 상상하며 노래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재회의 순간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확신에 차서 그려낸다.

       

      그녀의 노래는 아름답지만, 결말을 알고 들으면 마냥 아름답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핀커턴은 실제로 일본에 돌아온다. 그러나 쵸쵸상이 기대했던 재회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는 이미 다른 미국인 여성과 결혼한 상태이며, 쵸쵸상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데려가려 한다. 결국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쵸쵸상은 아이와 작별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남자를 끝까지 기다린 여성의 비극으로 받아들였지만,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니 두 사람에게 주어진 자유가 얼마나 달랐는지가 눈에 들어왔다.

       

      핀커턴은 일본을 떠나 새로운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반면 쵸쵸상은 그와의 결혼을 위해 가족과 종교까지 떠났고,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에 자신의 미래를 걸었다. 같은 관계를 맺었지만 관계를 끝낼 수 있는 자유는 평등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도 반영되어 있다. 아시아 여성을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왜곡된 환상과, 서구 남성이 동양 여성을 대하는 지배적인 태도다.

       

      물론 쵸쵸상을 아무런 의지 없이 남편만 기다린 수동적인 인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녀 역시 자신의 사랑을 믿고 선택했다. 다만 그 선택이 이루어진 관계에는 처음부터 불평등한 조건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쵸쵸상의 죽음은 과연 숭고한 사랑의 완성일까? 아니면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다른 삶을 선택할 기회조차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던 여성의 비극일까?

       

      흥미롭게도 이러한 서사는 훗날 등장한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도 이어진다. 시대와 배경은 달라졌지만, 아시아 여성의 사랑과 희생이 다시 한번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 것이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광기로 표현된 여성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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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리다 그랜드 오페라 (2017), 루치아 역의 안나 크리스티. 사진: Chris Kakol / Florida Grand Opera


       

      마지막으로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여성이 사회적 억압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파멸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루치아는 사랑하는 연인 에드가르도가 있음에도 가문의 이익밖에 모르는 오빠 엔리코에게 정략결혼을 강요받는다. 엔리코는 두 사람의 관계를 갈라놓기 위해 에드가르도가 다른 여성을 사랑한다는 가짜 편지를 꾸며낸다. 결국 루치아는 연인의 배신을 믿게 되고, 절망 속에서 원치 않는 결혼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 나타난 에드가르도는 그녀가 다른 남성과 결혼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루치아를 비난한다.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연인에게서 오해와 모욕을 받은 루치아는 결국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급기야 남편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후 등장하는 '광란의 장면'은 루치아의 내면이 파멸하는 순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녀는 사랑하는 에드가르도와의 결혼식을 상상하며 노래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광기가 화려한 아리아로 표현된다는 사실이다. 루치아의 비극은 소프라노의 높은 음역과 장식적인 선율을 통해 극대화되며,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낭만주의 오페라에서 자주 사용되었던 '광기'라는 코드는 인물의 극단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장치였다. 그런데 여성 캐릭터의 광기가 극적인 아름다움으로 표현된다는 점은 생각해 볼 만하다.

       

      루치아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혼을 강요받았고, 연인에게서 오해까지 받았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도, 원하는 삶을 선택할 기회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무너진 순간에야 그녀의 감정은 가장 강렬한 음악으로 표현된다.

       

      나는 이 장면에서 루치아의 광기를 사랑에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로만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파멸에는 가문을 우선시한 오빠의 강요와 원치 않는 결혼, 사랑하는 사람의 오해가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광란의 장면은 그동안 억압받았던 루치아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으로도 읽힌다.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환상 속에서나마 꿈꾸는 그녀의 노래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이 오히려 그녀의 처지를 더욱 비극적으로 느끼게 한다.

       

       

       

      여성의 비극은 정말 당연한 것이었을까


       

      이처럼 전통 오페라 속 여성 캐릭터들은 사회적 신분과 도덕적 편견, 인종차별과 남성 중심의 가치관 등 다양한 형태의 억압 속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들의 희생이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비올레타는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선택했고, 쵸쵸상은 남편과의 약속을 믿었으며, 루치아는 원하지 않는 결혼에 저항했다. 모두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다만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그 선택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종종 '아름다운 사랑', '숭고한 희생', '비극적인 운명'이라는 말로 기억한다. 음악이 지닌 아름다움과 인물들의 절절한 감정이 관객의 몰입을 높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페라가 보여주는 비극의 아름다움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음악이 있었기에 비올레타의 갈등과 쵸쵸상의 기다림, 루치아의 절망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것과 그 비극을 당연한 결말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술 속 여성의 비극은 당대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역할을 기대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의 가치관을 알고 나면, 이전에는 아름답게만 느껴졌던 장면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성의 희생은 여전히 아름다운 비극으로 그려졌을까? 전통 오페라를 계승한 현대의 뮤지컬은 이러한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바꾸었을까?

       

      다음 글에서는 <나비부인>에서 <미스 사이공>으로 이어지는 비극과, <라 보엠>을 새롭게 해석한 <렌트>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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