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끝내려는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독일의 한 검은 숲. 그곳엔 낡은 집이 하나 있다. 천재 건축가로 불린 한국인 여성이 지은 집으로, 그녀가 과로사한 뒤 그의 영혼이 이 집에 깃들었다. 그녀는 집이 된 채 후회스러운 과거를 곱씹으며 수십 년 세월을 흘려보낸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먼지가 쌓이고 군데군데 깨진 집에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은 건, 근육이 굳어가는 병에 걸린 남편을 데리고 온 전직 60대 무용수 엠마다. 엠마는 죽기 위해 고국을 떠나 독일의 검은 숲까지 찾아온 사람들을 맞이하며, 그들에게 생애 마지막 머물 수 있는 집을 제공한다.
연극 <키리에>는 각자의 사연을 안고 생을 마감하기 위해 검은 숲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서로를 보듬고 구원하는 이야기다. 2023년 창작ing 공모에 선정되어 정식 무대화된 <키리에>는 초연 당시 제60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기상(유은숙), 유인촌신인연기상(백성철) 3관왕을 받았다.
![[키리에] 2023 공연사진 6 ©국립정동극장.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27172756_thrurnzq.jpg)
엠마와 남편은 전직 무용수로, 한 작품에서 에우리디케와 하데스로 만나 사랑을 나눴다. 그러나 좋았던 시절도 잠시, 남편은 근육이 점점 굳어져 가면서 춤은 물론이고 엠마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한 상황에 이른다. 그는 자신과 달리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춤출 수 있는 엠마를 질투하기 시작하고, 불구가 된 남편에 대한 연민과 증오, 죄의식이 뒤섞인 엠마는 계단에 몸을 구르면서까지 자신을 괴롭힌다.
엠마가 열연한 에우리디케는 자신을 구하러 저승까지 온 오르페우스가 지상에 다다기 직전, 하데스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봐서 영원히 지하 세계에 머물게 된 존재다. 여기서 엠마의 남편은 하데스이자 오르페우스이기도 하다. 그는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는 상황에서 무대 위 반짝였던 과거를 회상하며, 엠마를 향한 열등감에 몸부림친다. 그의 행동은 엠마를 서서히 지옥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엠마는 남편과 자신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검은 숲에 이르게 된다.
무대 위에서 당당한 몸짓으로 자신만의 에우리디케를 완성했던 엠마는 남편과 달리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한 인물이다. 그는 낡은 집을 쓸고 닦으며 죽으러 온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엠마가 새롭게 꾸민 집에는 반려견이 죽고 나서 삶의 의지를 잃은 소설가 관수, 평생 희생하며 살았지만 스스로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성직자 분재, 자신을 학대하는 교직원 목련이 찾아온다. 목숨을 끊으러 온 손님들을 맞이하는 엠마는 그들의 사연을 캐묻거나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언제나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집처럼 손님들을 위해 그곳에 존재할 뿐이다. 엠마가 이들에게 권하는 진한 보리차 한잔과 따뜻한 밥은 그 자체로 함께 하고 있다는 조용한 신호가 되어준다.
![[키리에] 2023 공연사진 3 ©국립정동극장.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27172901_hxkukyzh.jpg)
엠마는 검은 숲으로 향하는 손님들에게 환각 버섯으로 직접 만든 초콜릿을 준다. 그녀의 초콜릿을 먹은 이들은 모두 환상적인 경험을 통해 그동안 자신에게 가혹하게 굴었던 스스로와 화해한다. 관수는 반려견 원이의 영혼을 통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압박에 짓눌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가족의 사랑을 깨닫고, 소설가로서 성공하지 못해 떳떳한 가장이 되지 못했다는 자책에서 벗어나 자신을 용서한다.
옷 스타일부터 살아온 배경까지 극과 극인 분재와 목련은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스스로에게는 혹독할 정도로 몰아치는 면이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엠마가 준 버섯 초콜릿을 먹은 이들은 유체 이탈을 경험하게 되고, 영혼이 되어 과거의 자신을 타인처럼 바라보게 된다. 그들이 마주한 건 죽어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한심하고 끔찍한 내 모습이 아니라,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가여운 한 사람이었다. 습관적으로 벼랑 끝까지 나를 몰아넣는 태도에서 벗어난 이들은 비로소 너그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볼 수 있게 됐다.
목련과 분재가 검은 숲까지 이르게 된 건 왜곡된 자기 인식뿐 아니라, 나만 이렇게 특별히 불행하고 고통스럽다는 자기연민 때문이었다. 자기연민은 나를 피해자로 상정해 깊은 어둠 속에 홀로 고립되게 만든다. 그러나 비슷한 아픔을 지닌 이들은 거울을 보듯 상대방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깨닫는다. 모두 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기에,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내 안의 상처는 유일하되 특별하지는 않다는 것을. 그렇게 두 사람은 나만 불행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너른 자비의 세계로 들어선다.
![[키리에] 2023 공연사진 2 ©국립정동극장.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27172941_aoxqbqvr.jpg)
모두가 깜깜한 검은 숲에서 빛의 길로 나아간 때, 엠마는 처음의 계획대로 남편을 죽이고 잇달아 자신의 목숨도 끊으려 한다. 그때 엠마를 구한 건 다름 아닌 집이었다. 집은 사람이었을 때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을 몰라 주변인들에게 상처를 줬던 인물이다. 죽어서 집이 된 이후에야 그 시간을 오랫동안 곱씹으며, 자신이 받지도 주지도 못한 사랑을 줄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렇게 꽉 닫혀있던 집의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환기를 시켜준 이가 바로 엠마였다.
수십 년간 텅 비어있던 집은 이내 사람들의 발소리와 작은 웃음소리, 엠마가 끓이는 진한 보리차 향기 등으로 꽉 차게 된다. 사람들은 집에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가장 내밀하고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집은 그들의 깊은 한숨과 부정적인 혼잣말 안에 감춰진 아픈 상처를 묵묵히 흡수한다. 과거의 자신처럼 깊은 상처와 결핍을 지닌 사람들을 돌보며, 마침내 진정한 사랑의 방식을 깨달은 집은 소리내어 울 기력도 없는 이들을 위해 대신 펑펑 울어주기도 하고, 집 안의 온도를 높여 포옹과도 같은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자신을 무너뜨려 엠마를 살린 집의 행동은 지독한 에고이스트였던 과거와의 영원한 작별 선언이다.
누군가에겐 자기 자신을 용납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들은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실수와 단점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관찰한다. 하지만 멀찍이 거리를 두고 타인처럼 나를 바라볼 때, 비로소 얻게 되는 자유가 있다. 그 자유는 불완전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비이자, 타인에게도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어진다. 연극 제목 ‘키리에’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의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매 순간 신의 용서와 구원을 요청하며 간절히 외우는 기도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고 넓은 마음으로 타인을 받아들이는 모든 행위가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