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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딸깍에 저항하기란 [사람]

이 시대에 우리의 저항력은 어떻게 키워지는가

by 정영인 에디터
2026.09.18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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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 그거 그냥 지피티 딸깍했어.”


      모 공모전에서 수상한 친구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자 부끄럽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딸깍’하다. 요즘 대학가에서 “AI에게 대부분의 일을 맡겨 손쉽게 끝내다”를 표현할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무심하게 키보드 한 번 누르면 원하는 결과물이 눈앞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복잡한 공식부터 비유와 은유로 가득한 문학 작품까지, AI가 건드리지 못하는 영역이 점점 줄고 있다. 이스트 가득 넣은 빵 반죽처럼, 능력의 범위는 끝을 모르는 듯 부푼다. 그리고 소리소문없이 우리 일상에 스며든다. 최근 자주 보던 ‘먹방’ 콘텐츠가 AI 제작 영상임을 알게 됐다. 여느 때와 같이 멍하니 시청하다가 어딘가 묘한 기분에 댓글을 확인하고 AI임을 알아차렸다. 김이 나는 음식 한 접시와 실감 나는 소리로 그것을 삼키는 한 사람. 이내 맛있다며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까지, 정말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스파게티를 먹는 윌 스미스의 엉성한 움직임을 보고 비웃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의심을 지우는 것. 선택과 답을 두려워하는 ‘회피형’ 인간들에게 특히나 매혹적이다. 나 역시 글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면 저항 없이 AI에게 달려가 물어볼 때가 많다. “너라면 이 글 어떻게 고칠래?”라고 물으면 묘하게 더 매끄럽고 적합한 문장들이 차례로 화면에 떠오른다. AI가 내놓는 답이 언제나 100%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주목적은 보기 싫은 글을 다시 읽고 고치는 행위를 AI에게 맡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의 부족함을 재점검하고 질문하는 과정이 두려워 그것을 떠넘기는 것이다. 핑계는 효율이며 시간 절약이며 다양하다. 스스로 의심하거나 질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간헐적으로 마음을 쿡쿡 찔러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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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만든 지능이란 빠르고 치밀하다. 어떤 지시문이든 덥석 물어 기대보다 인간적이고, 실감 나고, 미세한 것들을 생성한다. 마감 20분 전 과제 초안만 맡기면 듬직하게 완성본을 내놓고, 2000자짜리 자소서도 작성이 아닌 ‘생성’의 결과물이 된 지 오래다. 이런 편리함은 우리의 본능적 경계심과 분별력을 닦아내 반질반질하게 만들곤 한다. 일상적 귀찮음을 느낄 필요도, 그것을 스스로 극복할 필요도 사라지고 있다. 얼마 전 학과의 졸업 논문이 어학 시험 점수로 대체됐다. 몇몇 학생들은 “AI 글 몇백 개씩 읽던 인문학 교수들이 드디어 질려버린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어쩌면 “단순히 A가 아니라 B”, “A보다 B를 의미한다” 등의 상투적 표현이 난무하는, 손때 하나 없이 깨끗한 글들을 넘겨보며 교수들은 대단히 난감했을지도 모른다.


      최근 ‘AI 면접’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인공지능에게 면접관의 권한을 부여한 기업들과 그 선택에 적잖이 당황해 우왕좌왕하는 지원자들의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AI는 정해진 채점 기준에 따라 태도와 어휘를 판단하지만, 다수의 지원자는 그 기준이 가장 불명확하다고 느낀다. 면접관과의 언어/비언어적 상호작용이 없으니, 면접을 복기해도 합·불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AI는 지원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우뚱하거나, 미소를 짓지 않는다. 불규칙하게 마음이 동하거나 공감대를 찾지도, 그것을 평가에 반영하지도 못한다. 이에 대응해 ‘빨리빨리’의 국가답게 AI 면접을 위한 학원이 생겨났다. AI가 어떤 지원자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지 파악해 코칭하는 것이다. 소수만 아는 정보와 자료를 얻기 위해 취준생들이 거액을 내고, 학원은 거액을 번다. 기사를 읽으며 컴퓨터 앞에서 쩔쩔매고 있을 내 모습을 떠올려보다가 말았다.

       

      불확실한 시대에 발맞추고자 헐레벌떡 뛰는 이들의 가랑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달리는 차 안에서 아는 감독님이 무심코 던졌던 말이 머릿속을 맴도는 요즘이다. “이제 인간은 절대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나: “헉. 뭔가 되게 디스토피아적이네요.”) “그치. 근데 그게 사실이야. 받아들여야지.” 왜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그렇게나 씁쓸하고 염려스러웠을까. 왜 공모작을 ‘딸깍’했다는 친구의 겸손함이 잠깐이나마 불편했을까. 어쩌면 인간이란 본능적으로 의심하고 저항하는 삶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의 저항력은 어떻게 키워지는가. 답은 아직 저 멀리 있다. ‘딸깍’이라는 말이, “단순히 A가 아니라 B”라는 문장이 자꾸만 거슬리는 이들이라면 함께 고민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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