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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슬픔과 고통이, 그리고 원망과 공감이 한데 어우러지다 보면 결국 우리 모두가 여전히 삶을 함께 이어나가야 할 동포들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올바른 애도의 과정이다."] - 박찬길, ‘올바른 애도를 위하여’, 한겨레, 2014.6.2

 

‘슬픔의 공동체’. 전공수업 ‘낭만주의와 근대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다. 낭만주의 시기는 혁명과 변화의 시대였으며, 프랑스 혁명의 이상이 좌절된 뒤 절망감이 팽배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대의 시대적 불안정함과 개인의 복합적인 정서에 대한 고찰과 함께, 문학적 애도 방식도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엘레지’(elegy)는 한국어로 애가(哀歌) 또는 비가(悲歌)에 해당하는 장르로, 고대 그리스의 목가 시로부터 기원한다. 목동들이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며 불렀던 노래에 애도와 위로의 정서가 담기며, 구조는 장례식 식순과 유사하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한탄하고, 분노하고, 망자를 칭송하다가 이내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마지막 단계인 '끝맺는 위로'(closing consolation)에 다다라서는 남은 이들을 위로한다. 떠난 이와의 기억을 돌아보고, 죽음의 보편성을 이해하며 차분해지고, ‘떠나보내고 남은’ 이들이 안온하기를 바라며 슬픔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 단계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엘레지'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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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부터 18일까지 광주로의 1박 2일 취재는 나에게 매우 큰 부담이었다. 5월 18일의 광주를 취재 사진 몇 장으로 요약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경직된 채로 광주행 버스에 올랐다. 첫 번째 일정은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이뤄졌다. 수많은 열사의 이름이 적힌 묘비를 지나 걷다 보니 푸른 언덕을 배경으로 몇백 개에 달하는 묘비가 보였다. 이름이 있기도, 없기도 했다. 누구는 마흔 살이었고, 누구는 열한 살이었다. 같은 열에 학생, 주부, 선생님 등 다양한 삶이 존재했지만, 떠난 날짜만은 같았다. 5월 19일, 21일, 25일. 이 열들이 언덕을 색칠하듯 빽빽이 채웠다. 진동하는 슬픔에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땅이 끝을 알 수 없는 한으로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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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이 묘역 전체에 울려퍼졌다. 이마에 쿨 시트를 붙인 초등학생, 깃발을 든 대학생, 유가족의 손을 잡는 정치인, 그리고 묘비를 헝겊으로 닦고 또 닦는 유가족이 각자의 묵념과 노래로 무덤을 어루만졌다. 해설사들이 열사들의 이야기를 전할 때마다 눈물과 탄식이 번졌다. 슬픔의 공동체가 만드는 광경이 무딘 마음을 마구 때리고 부쉈다. 이때 느꼈다. 나의 마음은 광주를 떠난 후에도 한동안 바위를 매단 것처럼 무거워지고야 말겠구나. 나는 이곳에서 끓어 넘치는 삶과 투쟁, 그리고 죽음 앞에서 하나 되는 마음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겠구나. 수업 때 입 모양으로만 되뇌었던 슬픔의 공동체를 두 눈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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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광주는 애도가 빚은 연대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금남로의 한 햄버거집은 5월 18일부터 이간 원플러스원 행사를, 광주 대표 제과점 ‘궁전 제과’는 광주 시민들을 위한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죽음을 기리며, 산 자들이 서로를 돕는다. 슬픔에 잠겨 정체되지 않고, 풍물놀이와 알록달록한 풍선, 깃발들이 거리를 움직였다. 또 다른 소외와 고통의 존재를 알리고자 전국의 많은 이가 광주에 모여 "더 나은 세상"을 외쳤다. 서울에 갇혀있었던 나로서는 알 리가 없었던 그들의 5월.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을 잃은 이들이, 상실의 기억을 딛고 미래를 그려낸다. 당신의 아픔을 다 안다는 마음으로, 겪은 이들이 겪는 이들의 상처를 보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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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은 금남로 일대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쓰였다. 분필로 적힌 ‘광주 정신’과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주저앉아 꽃, 나비, 하트, 곰돌이로 주변을 꾸몄다. ‘광주 정신’. 저항한 이들의 투쟁 정신과 이를 함께 기리는 공동체적 정신이 문자로, 그림으로, 노래로 조화되었다.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라는 문구는 국가 폭력과 부조리에도 무너지지 않은 광주의 ‘끝나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아직 세계 곳곳에서 폭압을 겪는 ‘또 다른 광주들’의 상황을 의미하기도 했다. 색색의 글씨로 채워진 금남로에서 본 광주는 그 어느 때보다, 현재진행형으로, 살아있었다.

 

Closing consolation

함께 슬퍼했을 때 무엇이 남는가. 슬픔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란 어디서 나오는가. 우리는 왜 매년 당연하게 노란 리본을 달고, 빨간 꽃을 달고, SNS 추모글을 올리기로 약속하는가. 광주에는 한마음으로 통곡하는 광경, 이제 삶에 발맞춰가자며 서로를 웃게 만드는 광경 모두 존재했다. 하루 보고 와서 정리하니 이 정도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때보다 가능성에 부풀어 희망찬 마음으로 돌아왔다. 다녀온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글에 다 담지 못하는 감정이 아직 일고 있다. 글을 끝까지 읽은 모두가, 슬픔의 공동체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하는 당신이, 다음 5월 18일엔 광주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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