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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아네모이아‘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아네모이아(anemoia)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시절의 분위기와 문화요소 등에 그리움을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레트로가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향수라면 아네모이아는 사회적 경험, 역사적 경험에 기반한 향수를 말한다. 당신이 <응답하라 1988>이나 <미스터선샤인>을 보고 과거 시대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느끼는 것 또한 아네모이아로 설명 가능하다.

 

이제 대중은 아네모이아로 대변되는 그 시절이 품고 있었던 변하지 않는 본질, 즉 진짜(Original)를 소유하고 싶어 한다. 가짜와 복제가 판치는 AI 시대에, 오랜 세월 동안 영겁 축적된 원조를 소유하길 원한다. 사람들은 디지털화가 심화될수록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본질적 가치가 더 빛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2026년 핵심 키워드인 ‘근본이즘(Fundamentalism)’으로 진화하고 있다.

 

근본이즘은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6>에서 제시한 2026년 핵심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인공지능 시대에 진짜(Original)와 원조를 찾는 경향을 말한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고대유물을 구경하기 위해서 박물관에 가고, <데미안>, <1984>등의 고전을 읽으며, 단 몇 초 사이에 조성진의 피아노 공연표가 매진되는 것이 바로 이 근본이즘의 사회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1. 클리오(CLIO)x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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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국가유산청

 

 

최근 뷰티 브랜드 클리오(CLIO)와 국가유산청의 패키지 디자인 콜라보레이션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른바 ‘감다살 콜라보’라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화려한 패키징으로 시선을 끄는 수많은 뷰티 제품 속에서 이 협업이 유독 각광받는 이유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가진 원형(Originality)의 힘을 빌려왔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트렌드를 좇는 소비를 넘어 국가 유산이라는 강력한 헤리티지를 통해 브랜드에 차별화와 격을 부여한다.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구매하며 단순히 패키지가 예쁜 화장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수백 년간 축적된 조상들의 역사라는 가치를 함께 소유함으로써 근본이즘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킨다.

 

결국 이 협업은 화장품이라는 소모품에 근본적 아우라를 입힘으로써 브랜드의 격을 높힌 브랜딩 사례이다.

 

 

 

2. 파타고니아 Patago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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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파타고니아 코리아(Patagonia Korea)

 

 

오늘날 패션 산업은 더 빠르게,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드는 패스트 패션의 논리로 돌아간다. 당장 글로벌 스파 브랜드들의 사례만 보더라도 반짝 유행 후 지나가는 옷, 장신구, 신발 등을 몇 만개씩 찍어내지만, 그렇게 찍어냈으나 판매되지 않은 상품들이 어디로 되돌아가는지를 아는 사람은 몇 없다. 하지만 파타고니아는 이러한 흐름에 저항한다.

 

2011년 블랙 프라이데이 당시 뉴욕 타임스에 실린 그들의 광고,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는 근본이즘적 태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물건을 파는 이익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브랜드의 태생적 철학을 우선순위에 둔 것이다.

 

효율성만을 따진다면 기업이 스스로 매출을 깎아먹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역설적으로 소비자들은 이러한 근본있는 고집에 열광한다.

 

 

 

3. 라이카 Leica Cam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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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라이카 카메라 코리아(Leica Camera Korea)

 

 

최신 미러리스 카메라들이 오토 포커스(AF)와 흔들림 보정 기능을 프로모션 전략으로 내세울 때 라이카의 M 시리즈는 여전히 사용자가 직접 초점을 맞추고 노출을 조절해야 하는 수동 방식을 고집한다.

 

객관적인 효율성 지표로 본다면 라이카는 불편한 기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피사체와 깊게 교감하는 통로라고 이용자들은 말한다. 셔터를 누르기 전 뷰파인더 너머의 대상을 관찰하고 손가락을 사용해 직접 초점을 맞추는 행위는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수동 카메라만이 줄 수 있는 ‘손맛’과 찍는 행위 그 자체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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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현대카드 아카이브(Hyundai Card Archive)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 디자인, 뮤직, 쿠킹, 트래블 등의 절판된 희귀 서적과 LP를 직접 손으로 넘기며 읽게 만드는 공간이 있다. 바로 북촌에 위치한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이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소량 인쇄되었거나 절판된 책 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책들을 직접 보고, 읽고, 영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데이터베이스화된 PDF 파일이나 고해상도 이미지는 정보의 내용은 전달할 수 있을지언정 종이의 질감과 잉크의 냄새, 그리고 수십 년 전 디자이너가 고민했던 흔적이 담긴 물리적 실체, 더불어 그것이 지닌 아우라까지 복제할 수는 없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단순한 진열을 넘어 인류의 창의적 유산을 직접 만지고, 느끼며, 영감을 얻는 제의적 경험을 설계한다.

 

 

 

오늘날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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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저서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는 '아우라(Aura)'라는 개념이 나온다. 기술이 발달하여 예술작품의 복제가 가능해지자 원본이 가지고 있던 유일무이한 현존성, 즉 아우라(Aura)가 사라지는 현상을 두고 벤야민은 ‘아우라 상실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1936년 출간된 서적으로 나온지 100년을 향해가는 오래된 서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근본이즘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출두한 오늘날의 상황을 미루어 보았 때 물리적인 시대의 앞자리 수는 바뀌었을지언정 시대의 온상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늘날 ai와 알고리즘이 설계하는 양산형 콘텐츠들이 본래 콘텐츠들이 가지고 있던 원본성과 본질을 변질시키며 전시가치에만 몰두할 때, 사람들은 잃어버린 근본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때문에 대중은 다양한 방식으로 제 나름대로의 제의가치를 증명받기 원한다.

 

물론 기술적 발전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이점은 명확히 존재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술이 가져다주는 이점의 상생과 더불어 그것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될 수 없는 인간만의 가치를 여전히 보존하고 지키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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