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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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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밤 9시 이후에 떠오르는 삶에 대한 생각을 믿지 마"

 

요즘 들어 부쩍 좋아진 인터넷 밈 중 하나다. 이상하게 내 생활의 맥을 짚는 말처럼 들릴 때가 있다.

 

mbti를 믿고 싶지 않은 편에 속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빌리자면 나는 N의 비율이 꽤나 높은 사람이다. 그래서 때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의든 타의든 간에 “깊생”(*깊은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특히 밤 9시 이후, 그러니까 해가 지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오늘 있었던 일들, 그간 있었던 일들, 앞으로의 일들까지 줄줄이 꺼내어 반추하며 자연스레 깊생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 시간대의 생각은 과도하게 솔직하거나 지나치게 비관적이어서 그리 믿을만한 친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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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삶의 전환점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열아홉 살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한국에서의 열아홉은 숫자 이상의 상징을 품는다. 흔히 말하는 “고삼”이 된다는 것은 그 한 해가 한 사람의 일상 전체를 잠식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구겨진 와이셔츠에 쥐색 동복 마이를 동여매고 학교에 갔다. 학교가 끝나면 저녁을 먹을 새도 없이 학원을 갔다가 열 시가 조금 넘어서야 아침에 탔던 버스와 똑같은 번호의 버스를 골라 타고 집에 돌아왔다. 특별한 거 하나 없는 평범한 하루였는데 공복이었던 탓인지 유독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수면을 취하기 위해 눈을 감는 순간, 불현듯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난폭한 침입자처럼 들이닥쳤다.

 

그때 떠올렸던 생각 중 하나는 “책임”이라는 단어에 대한 고찰이었다. 당시의 나는 책임이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단어라고 여겼다. 내 인생이 결국 내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나의 몫으로 넘어오게 된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내가 실패한 삶을 살게 된다면 그건 오롯이 내 책임이기에 누구도 탓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들에 휩싸여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그리고 깊생의 그날을 기점으로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민했던 시간에 비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빠르게 결론이 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자.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전공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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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가장 좋아하던 것은 ‘영화’였다. “언제 가장 살아 있다고 느끼느냐”는 질문이 주어진다면 주저 없이 “정말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후,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명작·고전·예술·독립영화를 죄다 섭렵한 시네필이라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이들을 만나면 말수를 줄이고 싶은 편에 가깝다. 다만 내 에너지가 가장 많이 쏟아지는 것이 영화였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 거의 자연스러운 의무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으니까.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현실적인 타협 끝에 영화와 가장 가까운 업계로 진입할 수 있는 전공을 찾아 지금의 전공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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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를 끝내고 맞이한 2023년, 대학 입학 첫 해는 참혹에 가까웠다. 고등학생 때부터 가졌던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도, 전공에 대한 흥미도 전혀 느끼지 못했던 탓에 당연스레 학교생활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미디어 속 캠퍼스 잔디밭에서 단란하게 치킨을 뜯고, 밤새 술잔을 부딪히며 부어라 마셔라하는 진풍경은 멀게만 느껴졌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얼마나 깊은지 처음으로 체감한 해였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친구의 용산 자취방을 일주일에 한 번씩 도피처처럼 찾았다. 둘 다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만나면 고등학생 시절과 반대되는 현재 생활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기 바빴다.

 

결국 나는 일 년 내내 일주일에 세 번 거처를 옮겨 다녔는데, 월·화는 학교 근처에 얻은 쉐어하우스에서, 수요일은 그 친구의 자취방, 목·금·토·일은 고향에 내려가 지냈다. 수업이 끝난 목요일 오후 고향에 내려가는 1호선 지하철 안에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일주일에 거처를 3번씩 옮겨 다니는 것만 봐도 이곳에서의 생활에 얼마나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제서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때 경험한 타지에서의 혼자가 되는 경험과 고독이 역설적이게도 나의 독립성을 자라게 만든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찌저찌 맞지도 않는 전공을 등에 업은 채 1학년을 끝마치고 무난했던 2학년을 넘어 이제는 대학교 3학년 끝자락에 있다. 살아온 22년의 날 중 거의 대부분을 학생 신분으로 살아왔기에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번 연도는 그 느낌이 조금 다르다. 본격적인 취업 전선에 들어서기 직전의 마지막 해이고, 내년이면 벌써 졸업반이라는 사실은 도피나 잠적의 유혹을 부추긴다. 또 이제야 조금씩 이곳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들고 정을 붙이게 되었는데, 익숙해질 법하면 헤어지게 되는 삶의 수순이 매몰차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여전히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아직 미비된 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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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의 아무런 계기도 없이 미래에 대한 깊은 생각 때문에 잠을 설친 그날처럼 이제는 22살의 내가 깊생으로 또 잠을 설친다. 여전히 확정된 미래가 하나도 없어 골몰하는 나지만, 19살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한 발자국 더 나아진 점이 있다면 “책임”이라는 단어에 대한 감상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점이다. 내 인생이 내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나를 두렵게 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두려움 이면에 옅은 설렘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내 손 안에 있어 무서운 인생이지만, 내 손 안에 있어 설레는 삶.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모든 것들.

 

그리고 밤 9시 이후의 깊생은 때때로 나를 괴롭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나침반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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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월플라워>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17살이 되면 16살 때의 일은 잊어버리고 우리 사진은 오래된 사진이 된대도 지금 이 순간은 추억이 아니야. 지금 일어나는 일이지. 난 여기 존재하고 그 애를 보고 있어. 그 애는 정말 아름다워. 슬픈 삶이 아니란 걸 깨닫는 그 순간 우리는 살아있는 거야. 우리는 무한하다는 걸."

 

지금 이 순간 무한히 아름다운 벽과 꽃들 사이에서, 그리고 대학생활이라는 이름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미래에 대한 단추를 꿰며 오늘의 깊생을 마무리한다.

 

또, 골몰하는 모든 청춘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우리네 청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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