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에서 <세일즈맨의 죽음>을 관람했다. 전공 수업 텍스트로만 읽었던 희곡을 두 눈에 담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무대 중앙에 위치한 ‘집’이었다. 불안정하게 조립된 집에서 따뜻한 사람 냄새는 맡을 수 없었다. 외려 폐허의 케케묵은 냄새를 풍기는 부엌, 식탁, 옥상 그리고 윌리와 린다의 침실에서 적막의 먼지가 일었다.<세일즈맨의 죽음>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래와 같은 독특한 세트를 고수한다. 2D 평면도처럼 모든 곳이 시야에 들어오지만, 비프와 해피의 방 등 일부 공간들은 무대 뒤편에 존재한다. 4인 가족의 둥근 식탁을 둘러싼 세 개의 의자는 세트의 불균형함과 기이함을 극대화한다. 인형의 집과도 같은 납작한 무대의 한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다른 어둑한 귀퉁이에서는 또 다른 일이 가시적으로 발생한다.
Unity of space: 구조적 통일성
현대 비극을 대표하는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리스 비극의 특징인 ‘장소의 통일감’이라는 전통적 규칙을 따른다. 윌리의 노쇠한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틀 안에서 인물들이 웃고, 울고 분노하고 절망한다. 극이 진행되며 윌리의 집은 사무실, 레스토랑, 그리고 호텔 방으로 변모한다. 다양한 사건과 인물이 이곳을 거치지만, 결코 집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무대는 종국엔 가족과 터전을 향해 걷는 윌리를 닮았다. 위 사진 속 런던 극장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파편화된 집의 도형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책상, 의자 그리고 문을 포함해 집의 모든 구성 요소가 불규칙하게 떠다니며, 가정의 분해를 시각화한다. 로먼 가가 남긴 파편들은 무대 그 자체가 되어 일관적으로 인물들의 내면을 흔든다. 한 가정의 연대기이자 비극의 무대인 이곳은 무대의 중심축인 동시에, 온 가족이 붙들어야만 지탱되는 작은 조각들에 불과하다.
삶의 터전인가, 흔들리는 돛단배인가.
윌리는 평생을 일해 집을 얻어냈다. 가족의 희로애락이 묻은 그의 집은 이러나저러나 4명의 삶이 담긴 터전이다. 그러나 쓸쓸한 이 공간의 의자 다리, 벽, 그리고 계단 난간은 얇은 목재들로 이루어져 4인 가족을 지키기엔 초라하고 취약하다. 지붕의 허술한 표면을 보고 있으면 어렸을 적 크레파스로 그리던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집이 떠오른다. 비프의 말을 빌리자면, 급히 짜맞춰진 모양을 갖춘 이 ‘집’에선 절대 진실이 오가지 않는다. 동시에 이곳은 벤 등 전지적 존재들이 마구 침투할 수 있을 만큼 투명하고 나약한 공간이기도 하다. 얇은 철제와 목재 틀로 제작된 삼각형 지붕만이 작은 배의 돛처럼, 방황하는 집을 지탱한다. 안타깝게도, 윌리가 평생을 바쳐 건설한 이 집은 튼튼한 삶의 터가 아니라, 정박하지 못한 배와도 같다. 폭풍을 맞고 흔들리는 작은 돛단배.
숨 막히도록 화려한 이곳은 뉴욕, 브루클린
형제와 윌리의 관계가 더 복잡해지는 과정에서 무대는 뉴욕의 식당과 바로 바뀐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내려오며 최초로 형형색색의 순간이 등장한다. 뉴욕 밤거리를 고증한 다양한 간판이 관객들을 현혹하고, 무대는 윌리의 정신적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 잠시 새로운 세계로 탈바꿈한다. 여성들과 웨이터가 등장해 색다른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와중에 꾸준히 눈에 들어오는 무대적 요소가 있다. 바로 벽이다. 무대 전체를 둘러싼 벽들은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즉, 윌리의 집은 언제나 차갑고 축축한 도시의 벽돌과 닿아있다. 두껍고 높은 벽은 로먼 가족을 옥죄며, 관객에게 답답함을 전이한다. 거대한 벽과 작고 낮은 집의 대비는 대도시의 불빛에 가려진 로먼 가족의 소시민성 그리고 뉴욕 시민들의 현주소를 강조한다.
무너져 내림과 해방
극 후반, 윌리의 죽음을 상징하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집을 무너뜨리며 등장하고, 마치 귀신의 집처럼 혼합된 조명과 음향이 관객을 패닉시킨다. 흔치 않은 특수장치가 등장하는 동시에 윌리의 삶이 끝나고 로먼 가족과 집은 붕괴음을 내며 몰락한다. 이내 무대 천장 중앙에서 텅 빈 가방이 텅, 하고 열린다. 극이 끝나고 커튼콜에 환호하면서도 활짝 열린 빈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윌리의 정체성이자 분신이었던 갈색 가방, 세일즈맨의 외형을 완성했던 그 가방 속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윌리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평생을 바쳐 얻은 집도, 네온사인도, 높은 벽도 온데간데없다. 혼란스럽고 꽉 찬 윌리의 세계를 경험하고 텅 빈 가방을 보자니 묘한 해방감이 든다. 간판처럼 걸린 가방 아래, 조촐한 장례식의 마침표인 장미 한 송이가 핀 조명을 받은 채 놓여있다. 던져진 장미와 그 아래 묻힌 윌리에 대해 조용히 생각했다. 묘비 없는 장례식의 주인공, 윌리 ‘Loman’. 가장 ‘low’ 한 그의 ‘낮은’ 죽음 또는 해방을 ‘자유’라는 단어로 어루만지며 연극이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