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낯선 조우

낯섦과의 낯선 조우
글 입력 2023.04.2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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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로 가득하다.


온갖 적응해야 할 것들 사이에서 분투하다 문득 제풀에 지쳤다. 생각은 많은데 말은 없네, 혹은 생각이 많아서 말이 없네. 둘 중 무엇이 더 어울리는 말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둘 다 내가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에 ‘알고 있어.’, ‘그래야지’ 답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상처 주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상처 받는 나에게 얼마나 지치는지를 설명하는 일이 쉬웠던 적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는 말, 솔직해지는 게 왜이렇게 어렵냐는 말, 태연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 같은 건 지겹다. 아무래도 나는 버티는 것 말고 다른 길을 찾고 싶은 것 같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많이 말하려고 한다. 그걸 사진으로 찍고 글로 적는다. 기록을 남긴다. 이 익숙한 세상이 낯설고 무섭게 느껴지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설명하려는 것처럼. 봐, 네가 좋아하는 거야. 너는 여전히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고, 안전해. 그렇게.


낯선 것은 나쁜게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전에 없던 대화를 나누는 일은 매우 즐겁다. 그렇지만 종종 익숙한 누군가와 과거에 나누었던 대화가 그리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J는 내 오랜 친구다. J와 나누었던 대화들은 텍스트가 아닌 뭉개진 색깔로 기억된다. 옅은 회색, 톤다운된 녹색, 맑은 분홍색, 잿빛 하늘색, 보드라운 베이지색. J는 영영 모르겠지만 나는 J와 나누었던 잿빛 하늘색 대화를 참 좋아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내 익숙한 이불보는 연두색이고, 털이 보송보송 나있다. 지금은 매끈매끈하며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나는 회색 이불을 덮고 잔다. 나는 내가 뒤척임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에 와서야 알았다. 고요한 밤의 공기를 찢고 바삭거리는 이불을 조용히 시키려고 애쓰다가 포기한지 오래다. 낯선 소리에 예민해지던 귀도 이제는 적응했는지 관심을 끊어가고 있다.


제일 익숙한 간식. 고래밥이 다시 최애 과자가 되었다. 방에 꼭 세 봉지 씩 쌓아둔다. 대왕 고래밥은 나의 소울 스낵. 어릴 적에 고래밥을 잘못 먹어 목에 걸렸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좋아한다. 좋지 않은 과거의 기억이 꼭 좋지 않은 현재나 미래가 되는 것은 아닌가보다.


세상 모든 낯선 것들도 결국 익숙한 어떤 것이 될 것이다. 언제나 지금처럼 따갑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지금처럼 차갑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결국 이 지독한 낯섦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을 처음 보며 눈물을 삼키던 순간, 루서 밴드로스의 ‘If Only for One Night’를 처음 듣고 숨을 참던 순간,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좋았던 잿빛 하늘색 대화의 순간, 버석거리며 차갑게 살갗을 간지럽히는 이불을 느끼던 순간. 결국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천천히 낯선 것들에 마음을 여는 법을 배워가는 것 같다. 훗날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내가 가장 그리워할 순간이 될 수 있을테니까. 나는 늘 앞만 보며 달리지는 못하는 사람이라 결국 지금 이 순간을 예뻐하게 될 확률이 높으니까.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인사한다. 세상 모든 낯섦과.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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