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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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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자기중심성에서 한 발짝 떨어져 타인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의 세계는 비약적으로 넓어진다. 이러한 확장을 인간과 자연의 구도 안에서 신선하게 풀어낸 영화, 일디코 에네디 감독의 <침묵의 친구>를 소개한다.

 

 

 

세 개의 시간, 하나의 은행나무


 

배우 양조위의 첫 유럽 진출작으로 화제를 모은 이번 신작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 관객과 먼저 만났다. 특유의 깊고 고독한 눈빛의 양조위는 극 중 자신의 본명과 동명의 ‘토니’ 역을 맡아 관객의 기대를 충실히 충족시킨다. 고독하면서도 여전한 청춘의 눈빛으로 코로나 팬데믹 속 물리적·심리적 고독을 겪는 신경과학자로 분했다. 그러나 압도적인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토니는 세 가지 이야기 속에서 결코 독보적인 주인공을 자처하지 않는다. 영화는 세 인물의 삶을 비슷한 비중으로 조명하며, 그 전환점마다 은행나무와의 깊은 교감을 배치한다.

 

영화의 중심축은 1832년부터 독일의 한 대학 식물원에 뿌리 내린 은행나무 한 그루다. 1908년 대학 최초의 여학생이었던 그레테, 1972년 사랑을 통해 식물의 세계를 알아가는 청년 한스, 그리고 2020년 팬데믹 시대에 은행나무와의 교감하는 신경과학자 토니.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세 명의 삶이 서로 교차한다. 곁에 아무도 없이 각자의 고독한 혹은 고립을 겪는 인물들은 자연의 곁에서 외로움을 덜어낸다. 동시에 그들이 위로를 느끼는 자연환경이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성해 둔 식물원과 짝 없이 홀로 심긴 은행나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이런 영화 속 식물들 또한 본래의 근원에서 떼어진 외로운 존재라는 동질성을 가지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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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들과 침묵의 친구


 

세 주인공은 각자의 시간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그레테는 남성 중심적인 학교에서 노골적인 차별을 견디며, 한스는 농장 출신이라는 배경을 뒤로한 채 대학이라는 낯선 시스템에 적응하려 애쓴다. 토니는 타국인으로서 느끼는 외로움에 코로나로 인한 물리적 고립까지 더해지며 극적인 단절을 경험한다. 각자의 상황 속에서 은행나무는 그들의 고독을 묵묵히 받아내며, 기댈 곳 없는 이들에게 ‘침묵의 친구’가 되어준다.

 

동시에 고립 속 식물들의 위로는 인물들이 새로움을 발견하는 영감으로도 작용한다. 그레테는 입학 과정에서 교수들의 모욕적인 언사를 견디고, 하숙집에서는 아침 산책을 했다는 것으로 문란한 여자로 규정되는 등 일상적인 환경에서 끝없이 차별을 견딘다. 갈 곳이 없어진 그레테는 사진사의 조수로 일하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손으로 수정하고, 자신의 시각대로 찍을 수 있는 사진의 세계에 매료된다. 억압과 재단의 대상으로 살아온 시간 속에서 오히려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공간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레테는 카메라와 자신만 있는 공간에서 식물들과 자신을 촬영하며 자유를 느끼기 시작한다.

 

한스는 농장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진학한 대학교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외로움을 우연히 발견한 은행나무를 통해 조금씩 견뎌내던 중, 똑똑하고 매력적인 군둘라를 만나게 되고 가까워진다. 한스는 군둘라가 없는 동안 그녀가 진행 중인 실험을 관리하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실험은 제라늄과의 교감을 관찰하는 것. 자신의 소리에 제라늄이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포착한 한스는 외로움도 잊은 채 그 생동감에 흠뻑 매료된다.

   

토니는 식물 커뮤니케이션 과학자인 앨리스의 강연을 듣고 은행나무와 소통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한정된 자원과 공간 속에서 조금씩 가닥이 잡혀갈 즈음, 비가 세차게 온 뒤 장비들의 선이 모두 잘린 것을 발견한다. 애써 진행하던 실험을, 조금씩 교감해 가는 미래를 상상하던 토니는 크게 절망하지만 선을 자른 경비원은 다시 장비들을 고친다. 아마도 그 또한 물리적으로 외부와 차단된 채, 토니의 고대하는 모습도, 절망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제한된 공간과 거리 속에서 그들은 함께 밥을 먹고, 은행나무의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는 소리를 함께 기다리는 동료가 되어간다.

 

세 명의 이방인들은 누구보다 기민한 감각으로 인간 너머의 세계를 향해 시선을 뻗는다. 그레테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한스는 제라늄과의 교감을 통해, 토니는 은행나무 탐구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다. 식물원이라는 인위적인 공간에 갇혀 본래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된 식물들의 처지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소외된 인물들의 모습과 묘하게 닮았다. 토니의 연구를 방해한 경비원 역시 비슷하다. 그는 과학적 연구는 이해할 수 없지만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유대감은 이해할 수 있는, 어쩌면 과학자와 그리 멀리 있지 않은 평범한 인간들 중 한 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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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의 시대를 지나 감각 복원하기


 

영화는 감각을 예민하게 포착해 내는 연출을 보여준다. 적막한 캠퍼스를 산책하는 토니의 발소리, 정적을 깨는 그레테의 셔터 소리, 한스가 조용한 정원에 물을 주는 소리 등은 관객의 청각을 자극하며 기묘한 생동감을 선사한다. 특히 2020년 토니의 에피소드는 우리가 모두 겪었던 고립의 기억을 재현한다. 팬데믹 시기 많은 이들이 식물을 가꾸며 무료함을 달랬듯, 영화에서 다룬 식물과의 교감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영화 속 토니의 대사처럼 과학 실험은 비과학인들에게 종종 이상해 보인다. 하지만 같은 시대를 겪은 우리에게 토니가 은행나무에 가지는 호기심과 위로는 꽤 이해가 간다. 그렇기에 시대를 멀리 떨어있지만 은행나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 두 인물이 바라보는 식물 역시 연결 지어 공감이 된다. 고독함을 잠재우는 무언가와의 교감이 꼭 인간만은 아니란 것 말이다.

   

일디코 에네디 감독은 “<침묵의 친구>는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화로의 초대이다. 나는 결코 나무가 세상을 어떻게 지각하는지 말하겠다고 나설 수는 없다. 다만 나무 역시 고유한 지각 세계, 우리와 동등하게 유효한 ‘움벨트(Umwelt)’를 지닌 복합적인 존재라는 사실에 주목해 주길 바랄 뿐이다”라고 전했다.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처럼 영화는 이들이 맺는 은행나무와의 감각과 변화를 이해하라고 종용하지 않는다. 그저 유기적인 구조를 통해 세 인물과 자연들, 그 모두의 고독을 함께 느끼도록 시도한다.

 

물리적 고립의 시대를 지나고 우리는 이제 정신적 고립의 시대를 맞닥뜨리고 있다. AI에게 일자리가 없어지고, 동시에 일상에서 아주 편안하게 이용하면서 결국 실체 없음의 무언가와 일방적 소통을 하는 게 익숙해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침묵의 친구>는 그 대척점에 서서 우리가 다시 되돌아봐야 할 요소에 대해 말한다. 인간 간의 깊은 교류뿐 아니라 비인간이라고 일컫는 모든 생명의 그 푸른 힘이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인간 중심으로만 해석해 나가는 세계에서 벗어나 식물의 시점에서, 거대한 은행나무의 시점에서 함께 그 힘을 느껴보는 경험은 무뎌진 우리의 감각을 다시 깨워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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