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와 마이너 장르를 집중 조명하는 제29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가 개막했다. 박신양 작가의 「당나귀 13」을 AI 기술로 재해석해 메인 포스터를 제작했고, 서브 포스터에는 슬로건 Stay Strange (이상해도 괜찮아)를 넘어 Expand (확장하다) 하자는 탐험의 메시지를 담았다. 매년 새로운 영화의 기점을 관측하는 지표로서 다양성을 보여주는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는 2025년 7월 3일부터 13일까지 11일간 부천 일대에서 진행됐다.

올해 개막작인 피오트르 비니에비츠 감독의 <그를 찾아서>는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시나리오를 학습한 인공지능을 활용해 제작한 작품이다. AI와 영화의 결합을 보여주며 철학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과 기술의 균형을 담아냈다. 2025년에는 총 41개국 217편(장편 103편, 단편 77편, AI 11편, XR 26편)의 영화가 다양한 부문을 중심으로 선정됐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비욘드 리얼리티 섹션 / B 마이 게스트 / 메리 고 라운드 / 보디호러: 나의 몸은 당신의 판타지다 / 김태용, 시선의 온도 /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실로 재미있는 천재 등 기존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대표해 온 섹션과 새로운 기획전을 통해 확장된 범위의 ‘판타스틱’한 영화들이 관객과 조우했다. 이 중에서도 마니아와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산뜻한 코미디, 판타지, 드라마로 구성된 <메리 고 라운드> 부문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끈 작품이 여럿 눈에 띄었다. 그 작품들을 소개해본다.

<라스트 댄스:안식의 의식>
감독: 안셀름 모우인 찬
팬데믹 시기 이후 재정적 어려움에 빠진 웨딩플래너 도미닉은 여자 친구의 삼촌 만사부를 이어 장례지도사로 일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벤트적인 특성에 집중해 장례 문화에 변화를 주려고 노력하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삼촌과 계속 충돌한다. 하지만 여러 장례를 함께 하며 유대를 쌓고 성장한 도미닉은 만사부의 가족과 두터운 사이가 된다. 장례지도사 아버지, 그 전통을 따르고 싶지 않은 아들, 생과 사의 전선에 있는 구급대원 딸, 그리고 점차 가족이 되는 도미닉 사이에서 미묘하면서도 따뜻한 기류가 흐른다.
영화는 전통 가족의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세대 간 연대와 윗세대와의 갈등을 여러 에피소드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전통을 계승하는 일을 어떤 한 세대의 양보나 희생으로 그리지 않고 그들만의 방법을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끌어낸다. 또한 영화가 말하는 삶과 죽음 속 애환을 장례 과정에서 느낄 유족들의 마음 역시 섬세하게 그린다. 홍콩 역대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작품인 만큼 여러 세대와 사회 전반 이슈를 매끄럽지만, 마냥 가볍지는 않게 다루었다. 한국과 홍콩의 문화가 완전히 같지는 않으나 같은 아시아권에서 겪는 세대 갈등, 소수자 인권에 대해 나눌 이야기에서만큼은 비슷한 궤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동안 객석에서 눈물을 연신 닦는 이들이 많았다. <라스트 댄스 : 안식의 의식>은 도미닉이 망자와 유족 모두에게 안녕을 기원하는 장례지도사로 성장하듯이 주변 인물의 성장과 안녕을 조망한다. 많은 이야기를 끌고 가다 보면 주제 의식이 희미하거나 모호해질 수 있는 부분 또한 잘 풀어내 공감과 감동으로 연결해냈다. 또한 관객에게 생소한 홍콩의 전통 장례 의식을 긴 호흡으로 보여줘 새로운 시각을 끌어내는 웰메이드 작품이었다.

<레즈우주공주>
감독: 엠마 허프 홉스, 릴라 바르기스
’클리토폴리스‘의 공주 '사이라'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가진 소녀다. 왕인 어머니들은 한 번에 소환한 자신만의 무기 라브라스가 여전히 없고, 관계를 맺는 것에도 서툴러 파티에서 외톨이 존에 배치될까 두려워한다. 전 연인 키키에게 문자를 보내며 붙잡던 어느 날, 그녀가 이성애자 백인 남성에게 납치된 것을 알게 된다. 키키를 구하려 우주를 건너는 횡단을 시작한 사이라는 점점 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성장해 간다. 너무 순진하면서도 분열하고 실수하는 사이라를 관객은 답답해하면서도 공감해 미소 짓게 된다. 처음에는 땀을 삐질 거리던 레즈우주공주는 결국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누구의 딸과 여자 친구가 아닌 자신으로 당당해진다.
인디 애니메이션에 첨가된 뮤지컬, 코미디 요소는 이 작품이 가진 울퉁불퉁한 매력을 배로 만든다. 여전히 세상의 주류인 이성애자 백인 남성을 멸종 상태로 만들고 심지어 성의 없는 네모 모양으로 묘사한다. 이런 크고 작은 트위스트와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베드씬을 어떻게 생각해?”라는 대사처럼 적지 않게 마주하는 헛소리들을 조합해 만들어 낸 모습은 아주 정신없다. 그리고 그 모습이 이 영화만의 독보적인 특징이자 강한 공감대가 된다. 결국 사이라의 성장은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모습과 연대다. 실수하면서도 함께 안타까워해 주고 마지막에는 실실 웃게 되는 그런 응원의 모습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너무 답답한데 나같아서 웃겼다는 관객들의 육성 후기가 여기 저기서 튀어나왔다. 이상해도 괜찮아 라는 메인 슬로건에 꼭 맞는 영화를 만나 아주 반가웠다.

<너와 나의 우주>
감독: 파블로 오스트리코브
너와 나의 우주는 우주를 배경으로 고독과 연결을 말한다. 우크라이나의 우주 트럭 운전사 안드리는 지구에서 나온 핵폐기물을 위성으로 실어 나르는 일을 한다. 평소처럼 운행하던 중 지구가 폭발하고, 그는 인류 최후의 생존자가 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던 순간, 우주 정거장에 있는 프랑스인 카트린에게 메시지가 온다. 며칠 주기로 메시지를 기다리고 보내며 심리적인 밀접함을 느낀 멜니크는 그녀에게 찾아가기로 한다. 로봇 막심은 그를 막지만,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녀를 만나야겠다며 정거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도중 우주 쓰레기에게 기체가 손상되고 엔진도 꺼지면서 어려움이 닥친다. 궤도가 가까워지며 점차 빨라지는 답변은 고립된 안드리를 움직이고 숨겨졌던 반전이 밝혀지며 영화는 끝으로 다다른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 탄식과 감탄은 인간의 고독이 우주라는 배경에서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느끼게 했다. 나 또한 결말 부분에서 나오는 안드리의 모습이 최근 본 영화들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수려한 장면이었다. 지구에 대한 애착이 없는 안드리와 지구에서 최후를 맞았을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카트린 사이에는 분명한 삶의 차이가 있지만, 이들이 대화로만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지 알게 된다. 또 관객은 얼마나 그 고독에 몰입하게 되는지, 후반부에 다다라 그 감정을 확실히 증폭하게 만드는 장치들은 SF 멜로가 여전히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준다. 우주라는 소재와 배경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어쩌면 뻔할지도 모르지만, 그 속에서 펼쳐내는 이야기는 아직 무궁무진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동시에 조각과 레코드판이라는 지구의 아날로그를 담아낸 요소를 배치해 미래 배경에 오히려 향수와 감수성을 느끼게 하는 모습들은 미적으로나 이야기의 흐름에서나 효과적으로 느껴졌다. 이번 영화제의 최고작이었다는 관객들의 반응에 동의한다. 이상함에도 여러 스펙트럼이 있다면 <너와 나의 우주>가 말하는 고독이 더해진 이상함은 또 새로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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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한 영화 외에도 정말 다양한 화제작들이 있었다. 부천의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심야 상영은 올해에도 역시 큰 반응을 끌어냈다. 시청에서 수십 명의 사람이 함께 보는 바디 호러 내지는 공포 영화의 매력은 아무래도 헛웃음도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마이너 간의 연대이지 않을까. 앞서 소개한 레즈우주공주와 함께 퀴어 소재를 녹여낸 이반리 장만옥도 호평이 많은 작품이었다. 중·노년 배우들의 든든한 에너지와 유쾌, 상쾌, 통쾌하면서도 따뜻한 공동체의 모습이 부천을 찾은 이들에게 또 새로운 ’판타스틱‘함을 전해주었다. 그 반응에 힘입어서인지 이반리 장만옥은 관객상을, 배우 양말복은 특별 언급 상을 받았다. 새로운 좋은 영화와 감독을 발굴하고자 하는 영화광들에게 줄 수 있는 재미는 더욱 풍부해지고 깊어지는 섹션, 상영작들이다. 부천이 말하는 ‘판타스틱’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는 만큼 내년에는 또 새로운 영화들이 반갑게 관객들을 맞이할 것이다.
늘 그랬지만 부천 영화제 및 지역 영화제 예산 삭감을 실감한 최근 몇 해였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어려움을 겪는 동안 현장 진행자들의 열정과 한정된 예산을 극복하려는 집행부의 기획, 영화제를 꾸준히 찾아준 관객의 힘은 더 드러났다. 다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새로움을 발굴해 온 만큼 돌아올 2026년에는 정책 및 예산 문제에서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외에도 다양한 지역 영화제의 특성과 방향이 유지될 수 있는 더 많은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 열렬한 관객으로서 내년에는 또 어떤 이상한 영화들이 부천에서 찾아올지 기대하고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