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아주 조금 분주해졌을 뿐인데, 마음 놓고 미술관에 가기 어려워졌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곤 하지만, 사유할 시간이 없어졌다는 게 더 적확하다. 그림 앞에 서면 생각이 많아진다. 긍정적인 의미다. 다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작가의 배경과 시대, 미술사적 맥락, 큐레이션의 의도를 헤아리는 것은 감상에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림과 나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게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피로하다. 도슨트의 친절한 해설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한정된 시간과 밀집된 인파 속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그럴 때면 자연스레 나만의 도슨트를 만나고픈 욕심이 생긴다.
‘그림 읽는 밤’은 바로 그런 갈증이 깊어졌을 무렵 읽게 된 책이다. 읽는 내내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편안함’이었다. 퇴근 후 침대에 기대어, 조도 낮은 조명 아래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시 미술관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물며 ‘백밤’이라는 필명을 쓰는 나에게, 그림을 세는 단위가 ‘밤’이라는 사실은 유독 반가운 지점이었다. 밤이란 단순히 하루의 끝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고요해진 감각으로 사유가 깊어지는 시간인 것이다.
책은 총 48점의 작품을 ‘Night’라는 단위로 묶어 소개한다. 한밤에 한 점씩, 마치 일력을 넘기듯 그림과 문장을 마주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처럼 익숙한 이름부터 초면인 이름들이 고르게 섞여 있고, 시대와 국적 또한 넓게 아우른다. 물론 한 작품을 깊이 파고드는 분석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과도한 정보로 독자를 피로하게 하지 않고, 부담 없이 휴식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 완급조절이 오히려 책에 오래 머물고 싶게 만든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림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다. 전문성을 갖추고 있되, 결코 차갑지 않다. 다정하다. 처음 볼 법한 그림이지만, 표면에서부터 천천히 시선을 이끈다. 구성, 구도, 인물, 색채처럼 누구나 쉽게 포착할 수 있는 지점에서 출발해, 조예가 깊지 않은 독자라면 지나칠 이야기와 감정까지 자연스럽게 안내한다. 원화를 직접 마주하지 못하는 한계를 인지한 듯, 표현 기법과 질감에 대한 이야기는 과감히 덜어내고 책을 통해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작가 소개 역시 연대기를 나열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만큼은 스스로를 보는 사람보다 ‘읽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동안 축적해 온 아카이빙을 아낌없이 풀며 글과 그림 사이에 적절히 배치한다. 왜 이 책의 부제가 ‘내 영혼의 미술관’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어부의 아내는 오늘도 걷는다. 어제도 걸었고 내일도 걸을 것이다.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의 운율은 있다”라는 말처럼, 그녀의 걸음걸이는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이다.
p.48, 49 ‘Night 9.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조건’
지금의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그림과 글을 꼽으라면 레옹 스필리에르트의 <어부의 아내>와 그 곁에 놓인 문장이다. 스필리에르트는 유화 대신 수채화, 파스텔, 목탄을 즐겨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내면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붙잡기 위함이다.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작가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주기적으로 미술관을 찾게 됐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림 읽는 밤’의 또 다른 특징은 여백이다. 마음에 남는 문장을 따라 적어도 좋고, 그림을 보며 떠오른 생각을 기록하기도 좋다. 눈으로 스쳐 지나간 감상이 기록될 때, 그것은 비로소 ‘내 것’이 된다.
나만의 도슨트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은 조용히 이뤄졌다.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으면서도, 가볍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다. 에세이 장르에 익숙하지만, 약간의 변주가 필요하다면 이 책이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노곤했던 하루 끝에서 다시 한 장, 한 밤을 펼쳐본다. 어제보다 더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을 바라보게 된다. 밤은 하루를 닫는 시간이면서, 감각을 여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지친 몸은 아직 미술관과 멀지만, 그림과는 한 발짝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