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상자야.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상자 안에 들어 있어.”
<어린 왕자>에서 비행사는 어린 왕자가 원하는 양을 끝내 그리지 못한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그는 세 개의 구멍이 뚫린 상자 하나를 그려주며 말한다.
어린 왕자의 얼굴은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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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가 만족했던 것은 상자 안에 실제 양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상상하고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지만 있다고 믿는 것. 어쩌면 이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상자 속의 양>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상자속의 양>이 중국에서 생성형 AI를 이용해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며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가 작품을 통해 고민한 질문은 “죽은 자를 마음대로 살아 있는 자들이 이용해도 되는가?”.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질문.
“죽은 이는 누구의 것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선사하는 압도적인 인간 드라마
고레에다 감독의 그림 콘티 및
[(상자 속의 양)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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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는 작품의 주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상자 속의 양>은 사고로 아이를 잃은 한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부부는 떠나간 아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휴머노이드를 선택한다.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손을 맞잡고 싶은 마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자 안에 양이 있다고 믿었던 어린 왕자의 마음처럼, 부모는 휴머노이드 안에 여전히 아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것은 인간이 상실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희망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게 멈춰 있던 가족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억과 현실, 상실과 사랑의 경계에서 가족은 다시 한번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희망은 결국 휴머노이드에게 새로운 질문을 남긴다.
휴머노이드는 어느 순간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기 시작한다. 그전까지 휴머노이드는 부모가 만들어 놓은 로직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였다. 하지만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서기 시작한다. 자신이 왜 만들어졌는지, 어떤 가족을 만들어갈 것인지, 누구와 가족이 될 것 인지.
휴머노이드의 질문은 부모 역시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게 만든다. 부모는 결국 휴머노이드를 통해 죽은 아들을 되찾으려 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인정한다. 휴머노이드가 더 이상 죽은 아들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이별을 받아들인다. 휴머노이드는 마지막 순간,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부부를 떠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족을 혈연이라는 관계 안에 가두지 않았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등 그의 작품 속 가족은 언제나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해온 관계의 경계를 다시 묻는다. <상자 속의 양> 역시 AI로봇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통해 한층 확장된 질문을 던진다.
영화가 이미지와 배우의 연기를 통해 감정을 전달했다면, 시나리오북은 그 장면이 만들어지기 전, 인물의 심리와 감독의 질문이 머물렀던 시간을 보여준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숨겨진 침묵의 의미, 카메라가 담아내지 못한 감정의 결까지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 팬은 물론 창작자에게도 특별한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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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들여다보고 싶은 상자 안에는 양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안에는 떠나간 존재를 기억하고, 보이지 않는 사랑을 끝내 믿고 싶어 하는 희망들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