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비슷한 이미지들을 떠올린다. 잔혹한 범죄, 피 튀기는 죽음, 비밀스러운 수법, 주인공의 통쾌한 추리와 권선징악. 틀린 말은 아니다. 추리소설이라는 말은 어찌 되었든 추리할 요소가 있다는 뜻이고, 그건 주로 흥미진진한 사건·사고를 대상으로 하니까.
하지만 추리소설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작가를 고르라면, 나는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할 것 같다.
세상에는 수많은 작가가 있고 ‘훌륭한 작가’라는 건 독자 개인마다의 취향에 따라 갈리는 법이지만, 가끔은 객관적인 지표가 무언가를 보여줄 때도 있다.
1985년 소설 <방과 후>로 등단한 뒤 에도가와 란포상, 나오키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고,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106권의 책을 써 1억 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한 전설적인 일본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내가 처음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를 접했던 건 작년 이맘때쯤 읽었던 <가공범>을 통해서였다. 작가의 유명세는 오래 들어왔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선뜻 손이 가진 않던 차에 ‘데뷔 40주년’이라는 놀라운 위명을 듣고 첫 도전을 해봤던 기억이 난다.
그의 글은 깔끔했다. 문장도, 이야기를 전개하는 스타일도, 인물을 등장시키고, 배치하고, 독자 앞에서 움직여 보이는 방식까지 군더더기 없었다. 확실히 글을 아주 오래, 많이 써온 사람이라는 티가 났다. 용의자별로 의심 가는 포인트를 일일이 정리하며 읽을 정도로 앉은 자리에서 무척 집중하며 단숨에 읽어내렸는데, 솔직한 말로 마지막 장을 덮고 마음에 남은 것은 미묘한 실망감이었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힘이나 흡인력은 좋았지만, 독자에게 전개를 납득시킬 근거나 심리 묘사는 개인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작가는 어떠한 특별한 매력 때문에 40년 동안이나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거장 작가가 되었을까? 첫 만남은 기대와는 달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이 작가를 알고 싶다’라는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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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천천히 나름대로 여러 책을 읽었다. 가장 대표작으로 꼽히는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포함해 <녹나무의 파수꾼>과 <녹나무의 여신>으로 이루어진 일명 ‘녹나무 시리즈’, <라플라스의 마녀> 등.
여러 작품을 읽어내리면서 나는 나름대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추리소설 작가지만, 그의 작품 전면에 놓여 있는 것은 ‘사람’이었다. ‘추리’를 위한 판으로서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추리를 선택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나 녹나무 시리즈처럼 일명 ‘힐링물’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유도 아마 그곳에 있을 테다. 그 안에는 추리 요소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도 분명 포함되어 있지만, 그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한 존재로서의 고민을 지니고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인생을 털어놓고, 괴로워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온정을 느끼고, 가끔은 엇나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올바르게 서보고자 노력하는 모습들이 결국 작품과 그 작품을 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렇게 책장을 덮으면, 결국 독자의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소설 속 트릭이 얼마나 완벽했는지가 아닌, 인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것을 읽을 때의 나의 감정이 어땠는지가 된다. 우리 역시 일상을 살면서 다양한 일들을 마주하지만 결국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그때를 돌아보면, 어느덧 기억은 흐려지고 그 당시의 감정만 어렴풋이 남아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가로서 선물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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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3일, 오랜 투병을 하던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투병 중에 마지막으로 집필한 작품의 제목은 <영원한 기억>. 일본 현지에서는 8월 5일에 발행되었고, 국내 일정은 아직 미정이지만 작가의 마지막 유작이기 때문에 늦지 않게 발간될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투병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해당 작품의 제목이 의도적으로 붙여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아,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원히 읽힐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