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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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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의 올해 첫 번째 레퍼토리인 창작가무극(뮤지컬) ‘천 개의 파랑’이 지난 달 말 막을 올렸다. 해당 공연은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 원작에 기반을 두고 비교적 긴 호흡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에게 깊은 몰입과 감동을 선사했다.

2035년 가까운 미래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로봇과 퍼펫이 등장하여 극 중 시간 배경을 생생하게 전달하였으며, ‘천 개의 파랑’에서만 볼 수 있었던 독특한 LED 패널 활용 방식은 무대 연출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관객들의 눈길을 이끌었다.

무엇보다 혐오와 그로 인한 소외가 만연한 요즘 시대에 그보다 더 먼 미래의 이야기를 하며 ‘소외된 존재들이 희망을 찾는’메시지를 전달하였다는 점이 해당 공연만이 가지는 따스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차가운 몸체를 가진 로봇과 삶의 끝자락까지 밀려난 인간들이 ‘지금의 행복’에 집중함으로써 작은 기적을 일으키는 여정은 생각보다 더 깊은 위로와 울림을 주었다.
 
 
 
발전하는 미래, 소외되는 존재들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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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이토록 발전하기 이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어려웠던 일들이 이제는 우리 일상에 깊이 침투해 있다. 나 또한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핸드폰 속 개인 ai 비서에게 알람 종료, 오늘의 날씨 브리핑 등 다양한 업무를 시키는 것은 물론, 모르는 것이나 고민되는 것이 있으면 마치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놓듯 챗지피티에게 조언을 구한다.

극 중 배경은 2035년인만큼, 더욱 발전된 Ai를 탑재한 로봇들이 세상을 편리하게 만들고 있었다. 길거리의 쓰레기들을 치우거나 편의점을 찾은 진상을 상대하는 등, 불쾌하고 궂은 일들을 로봇들의 몫이 되었고, 그들은 군말 없이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했다. 더 빠른 경마를 위한 ‘기수 휴머노이드’또한 그런 맥락에서 개발되었다.

그러나 눈부신 기술적 발전의 그늘진 이면, 그 아래 선 소외된 이들에게는 세상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연재가 로봇 베티에게 밀려 편의점 알바 일자리를 잃었을 때도, 은혜가 길 거리에 나서는 매 순간 위기에 직면할 때도, 유망주 선수 투데이의 관절이 서서히 망가져갈 때도 그것은 다수의 편의를 위한 사소한 희생, 당연한 순리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연구원의 실수로 개발 중이던 학습용 휴머노이드 칩을 잘못 부여 받고 천 개의 단어를 알게 된 별난 기수 로봇 ‘C-27’이 연재에 의해 ‘콜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면서 이들은 외면하였던 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나누고 연대함으로써 이 아이러니한 세상에 목소리를 내게 된다.
 
 
 
지금의 행복만이 해결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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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보경을 살린 것은 3%의 생존률을 고했던 로봇이 아닌 그 확률에서 300%의 희망을 발견했던 인간 소방관의 믿음이었다. 이는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잘 보여준다. 오롯이 효율적으로 계산된 방식으로 움직여서는 절대 이뤄낼 수 없는 기적을 때로는 말도 안되는 비효율과 희박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일구어 내기도 한다.

하루가 다르게 나날이 발전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되었던 등장인물들은 ‘투데이의 행복’을 위해 의기 투합하게 된다. 빠르게 속력을 내지 못하더라도 오롯이 바람을 즐기며 행복할 수 있는 속도로 투데이가 달릴 수 있는 경기를 성사시키기 위해 이들은 다소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는 일들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지금 당장의 행복’이 삶을 이어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고통을 짊어진 채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에게 내일을 기대하고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은 효율을 추구하는 비약적 기술 발전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소한 것들이다.

투데이가 온전히 질주를 즐길 수 있도록, 무거워진 자신의 몸체를 땅으로 내던져 또다시 부서지기를 선택한 콜리의 마음은 아마 은혜를 위한 다정한 휠체어를 개발한 연재의 마음과 비슷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주변인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한 그 마음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며 결국 삶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다.
 
 
 
퍼펫, 로봇과 LED패널로 채운 다채로운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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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작 소설을 감명 깊게 읽은 독자로서 뮤지컬화 소식을 접했을 때 과연 이 독특한 배경이 어떤 방식으로 무대 위에서 구현될지 궁금했었다. 그런 맥락에서 뮤지컬 ‘천 개의 파랑’은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요소를 통해 화려한 소품이나 구성 없이도 몰입감 있는 장면을 연출해낸 점이 참 인상깊었다.

마치 감정을 가지고 연기하듯 섬세한 움직임을 구동하는 각종 로봇들, 그리고 정말 따듯한 숨결을 내뱉을 것만 같은 생동감을 가진 투데이와 콜리의 퍼펫은 아직 우리가 도달하지 못한 10년 뒤 미지의 미래 모습을 구체적으로 눈 앞에 그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무엇보다 독특한 LED 패널의 활용 또한 공연의 매력을 더해주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LED 연출은 하나의 큰 패널 안에서 여러 디자인과 색이 표현되는 것이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길쭉한 형상의 패널들이 여럿으로 나뉘어 각기 주체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이들은 때로 경마장의 계기판이 되기도 하고, 사고 현장의 철근 더미들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무대 위 제약은 없어지고 무궁무진한 배경 연출이 가능해지며 비교적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의 충분한 몰입을 이끌어내는 일등 공신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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