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울트라-백화점-시즌2-확장판-포스터.jpg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 2 포스트 서브컬쳐 전시는 'Who made this?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자아가 없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예술 작품을 빠르게 찍어내며 창작의 기준이 모호해지는 현시점에서, 결과보단 '과정'에 의의를 두는 메시지가 반가웠다. 전시는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진화하는 방식을 관찰하며, 관객이 주체적으로 브랜드와 연결되어 자신의 취향을 찾게 만든다.


전시 섹션은 다섯 가지로 나뉜다. 서브컬쳐 스트릿, 비사이드 레코즈, 텍스트 에비뉴, 리뷰어스 씨어터, 더 리얼 뷰티크 순으로 진행되며 '울트라 스토어', '포스트 서브컬쳐'에서는 다양한 굿즈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 2'는 관객 참여형 성격이 강하다. 벽에 걸려있는 작품이나 펜스 너머 조형물을 바라보는 전시가 아니다. 쇼핑백 모양의 팜플릿 속에 마음에 드는 오브제를 모아 담으며, 취향을 정립해 나가는 '체험형' 전시이다.

 

나는 '00'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같은 선호도는 손에 잡히거나 눈에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선호에 따라 움직인다. 가령, 나는 검은 옷을 잘 입지 않고, 과자를 집을 때 짭조름한 맛에 손을 뻗는다. 이렇듯 의식하지 못한 선택에 '선호'가 묻어있다.

 

전시를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것,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싶은 것에 시선을 두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선이 나의 취향임을 깨달았다.


 

 

1. Subculture street


 

첫 번째 섹션은 '서브컬쳐 스트릿'으로, 여러 작가의 짧은 글을 옮겨둔 공간이다. (060mag, 데이지, 메트로 매거진, 온큐레이션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가 참여했다)

 


아트인사이트 페이퍼 2.jpg

 

 

호기심이 동할만한 문구가 적힌 인사이트 페이퍼가 나란히 걸려있다. (깔끔하게 이별하는 법. 한남동 만 원 이하 혼밥식당 리스트. 가스라이팅 잘하는 법. 능숙하게 거짓말하는 법) 나는 쇼핑하듯 페이퍼를 집었다. 인스타 웹진이나 칼럼니스트의 메일링 구독 서비스에서 볼 법한 글들이 다수였다. '전문을 보려면 QR코드를 스캔하세요.'라는 문구가 오른쪽 하단에 적혀있다. 흥미를 돋우는 글의 큐알을 스캔했더니,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인스타그램 웹진으로 이동했다.

 

직관적인 오브제에 주목하는 관객이 많기 때문에 전시에서 '텍스트'를 주로 사용하는 것이 모험적인 기획일지도 모르겠단 우려가 앞섰으나, 페이퍼를 읽고 난 후 생각이 바뀌었다. 모바일 스크롤에 익숙한 이들에게 적합한 분량과 디자인이기에, 독서와 담을 쌓은 관람객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정한 작가만 참여한 것이 아닌지라, 다양한 작가들의 관점을 접하며 너른 사유를 할 수 있었다.


같이 간 친구는 '전시가 얕은 것 같다'면서 아쉬워했다. 한 가지 주제를 심도 있게 탐구하거나 유명 작가의 작품전이 아니기에 다소 난잡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전시였다. 다만, 관객 참여형 성격이 강했기에 관람 후의 여운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각종 오브제를 통해 사유를 확장해 나가며, 머릿속에서 또 다른 무형의 오브제들이 생겨났다.


전시장 안에 '나'라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수백 개의 오브제가 펼쳐지는 듯했다.

 

 

 

2. B-side Records


 

비사이드 레코즈 전시도 매우 흥미로웠다. 연대, 열정, 투쟁 등 각각의 키워드로 나누어진 음악을 듣는 코너이다. (국카스텐, 너드커넥션, 데이브레이크, 박소은, 페퍼톤스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20260401212457_neevqnfh.jpg



레코드 모양의 스티커를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가수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과 산울림의 '무지개'를 자주 듣는데, 이 곡들이 '연대'라는 단어로 묶이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래된 LP판이 많아서 하나하나 꺼내 구경하고, 벽면에 마련된 헤드셋을 통해 노래를 들었다.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듣는 순간 한 줌 모래처럼 어디론가 흘러내리기 마련이다.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노래를 집중해서 듣고, LP 디자인을 구경하고. 곡이 만들어진 과정을 글로 접하며 한 줌 모래들이 잘 다져져 모래성 하나를 세운 기분이었다.

 

멜로디와 박자가 손에 잡히는 듯했고, 전시는 물성이 없는 것마저 소유하게 했다.


나는 쇼핑백에 멜로디를 담았다.

  둥,

    당,

  둥,

     당

              쿵,

 쾅 

    쾅   쾅.

 

 

 

3. Text Avenue


 

텍스트 에비뉴는 나비클럽, 닷텍스트, 전기가오리, 안전가옥 등이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섹션이다. 마치 테마파크에 온 듯 알록달록한 광경이 이목을 사로잡는다. 다섯 가지 섹션 중에 가장 영화 세트장처럼 느껴졌다. 대형서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립 출판물이 가득했다.

 


출판코너2.jpg

 

 

활자는 납작하다는 편견을 완전히 깨부수는 섹션이었다. '상어가 사람을 공격한다는 참일까? 거짓일까?' 라는 질문이 적힌 선반을 열었더니, 답이 나왔다. 눈으로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만지고 감각하는 데에서 오는 쾌감이 컸다.


어릴 때 팝업북을 보던 것과 유사한 설렘이 다시금 가슴을 간지럽히며, 동심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여기저기 글귀가 적힌 책갈피가 놓여있는 것도 좋았다. 마음에 드는 책갈피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물욕이 충족되는 기분이 든다. 그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책갈피가 있었는데, '이해'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라 일기에도 옮겨적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글귀였다고 생각한다.

 

 

이해:

철학자가 무엇을 말했는지에만 주목하지 마세요. 철학 텍스트는 특정한 사회적 위치의 사람들이 제기한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답을 알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일입니다. 그 물음에 철학이 어떻게 접근해 왔는지를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기성품에만 열광하지 말자. 기성품 중에서 그나마 나은 것을 고르지 말자. 나는 무엇을 좋아하며 싫어하는 사람인지, 또 무엇이 되고 싶은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가길 바라는지. 내가 얻고 싶은 해답은 무엇인지 찾아나가는 여정 끝엔 '나'라는 아이덴티티(identity)가 반짝일 것이다.


 


4. Reviewer's Theater


 

영화관 찐찐.jpg

 

20260401191726_nmaxabdp.jpg

 

 

리뷰어스 씨어터는 벽면에 걸린 여러 스크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각종 대사, 장면을 통해 영감을 얻기에 좋은 전시였다. 작은 영화관에서 티켓을 발급받고 독립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단순히 줄거리나 배우를 보고 영화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따른 답이 적힌 블록을 읽고 만지며 마음이 동하는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SNS 웹진 글들, 음악, 독립 출판물 텍스트, 그리고 영화까지. 전부 '입체성'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섹션같다.


 

 

5. The Real Boutique


 

더 리얼 뷰티크: 집요한 좋아함이 타협 없는 '진짜'가 되는 감각.

 


리얼부티크찐찐.jpeg

 

 

본 전시는 패션의 위계를 지우고, '옷을 만들어온' 인물의 태도에 주목하는 갤러리형 전시 공간이다.

 

알려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제외하곤 전부 '보세 옷'으로 불린다. 10년 전만 해도 보세 옷을 두고 '지하상가 옷'이라고들 했는데. 이제는 의류 쇼핑 앱을 갖다 붙여 '지그재그룩, 에이블리룩' 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오프라인 스토어가 없는 브랜드를 즐겨 입으면서도 '브랜드 하나쯤은 있어야지' 하는 생각에 유명 스포츠 브랜드 옷을 가끔 사곤 한다.


언젠가 내 눈에는 별로인 브랜드가 다수한테 칭송받고 비싸게 거래되기 시작하며,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텐데 괜히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 옷을 구비하는 것도 위와 같은 연유에서다.


다수가 좋다고 하면 '좋은 건가 보다' 생각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전시였다. 디자이너가 어떠한 가치관으로 옷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어떻게 입기를 바라는지 공유한 글을 보면서 '옷'이 꼭 남들한테 보여지는 것만을 위해 입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21살 때까지 모리걸 빈티지 패션을 즐겨 입었다. 아저씨들이 입었을 법한 구제옷도 척척 입고, 퍼스널 컬러에 구애받지 않고 어둡고 탁한 색도 디자인만 마음에 들면 걸쳐보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남들이 예쁘다고' 말할 법한 옷을 고집하는 나를 발견했다. 기분 좋게 구매한 옷도 주변에서 안 예쁘다고 하면 옷장에 박아두었다. 봄웜 브라이트는 검정보단 하얀색이 어울린다는 말에 검은색 옷을 입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옭아매던 중, '더 리얼 부티크'에 소개된 작품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잠자리에 들 때 입는 옷조차 취향을 한껏 담았다는 점에서, 옷은 내 몸에 걸치는 것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니까, 누굴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입으면 되는 일이었다.

 

 

 

6. Ultra Department Store Seoul


 

울트라 상점 찐찐.jpg

 

 

울트라 스토어에서는 다양한 굿즈를 판매했다. 옷, 가방, 미니북 키링, 엽서 등등. 오감을 깨우며 전시를 관람한 탓인가, 스토어에 있는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았다. 아! 평소였으면 관심 가지지 않았을 디자인조차 왜인지 센치해보여서 소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다 팔려서 못 사고 나왔다)


AI가 보편화되며 창작이 쉬워졌다. 작곡을 배워본 적 없는 지인은 AI를 활용해 음악을 만드는 중이다. 지인은 작사와 믹싱을 열심히 하고, 프롬프트 잘 쓰는 법을 익히고 있다. 앨범 제목과 표지도 AI로 만들었다. 모두들 너나 할 것 없이 AI를 쓰고 있다. 사진을 보내며 그림으로 바꿔달라 하면 1분 만에 뚝딱, 멋들어진 작품이 완성된다. 로맨스 소설의 한 장면, 공포 소설의 클라이맥스를 써달라고 요청하면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이런저런 텍스트를 보내온다.


빅데이터로 창작품을 만들어내는 AI. 이러한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을 과연 '독창성'을 지닌 예술이라고 볼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는 어떤 창작품을 소비하게 되고 무엇에 '독창성과 심미성, 예술성의 공존'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될까. 아무래도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내러티브가 확실한 작품을 선호하게 되리란 생각이 든다.


identity.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다. 데이터가 이리저리 쓰이며 혼합되는 인공지능 시대,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만이 브랜드이자 독창성이라고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 2'는 여러 가지 오브제를 혼합한 '하이브리드형' 전시로서, 경계를 넘나들며 사유의 지평을 확장하고 끝내 개인의 본질을 찾게 만든다.

 

나는 '인공지능 시대 환상 동물학', '내가 듣는 음악이 더 우월하다는 착각',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먼저 산부인과에 가자'라는 페이퍼 오브제를 담아왔고, 그것을 토대로 다이어리를 썼다. 세 가지 주제 다 파편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한다는 것. 허영심과 환상을 버린다는 것. 나의 주권을 되찾아 자기돌봄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솔직해지고 싶은' 나의 욕망을 만나게 됐다.


그렇다. 나는 글을 쓸 때도 읽을 때도 말할 때도 솔직한 게 좋은 사람이었다.

 

울트라백화점 서울에서 나는 바코드 없는 취향을 쇼핑했고, '나'라는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을 통과했다.

 

만약 다음에도 울트라백화점 서울에 방문하게 된다면, 나는 또 무엇을 담아오게 될까?

 


전주현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다정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