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음악과 함께 글을 감상하면 좋을 것 같아 영상 첨부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된 칼럼입니다.)

     

 
Hail Mary, 성공 확률이 매우 낮지만, 마지막 희망을 걸고 하는 최후의 시도. 미식 축구에서 경기 종료 직전 역전을 노리며 던지는 긴 패스를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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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종말 위기를 맞은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우주 미생물 아스트로파지(별을 먹는 존재)가 태양을 잠식하며, 지구 평균 기온이 낮아진다. 중학교 과학 교사였던 '그레이스'는 의도치 않게 아스트로파지 연구팀에 주 인력으로 참여하고, 비밀리에 진행되는 '프로젝트 헤일메리'까지 합류하게 된다.


편도 거리 연료만 싣고 우주로 쏘아 올린 헤일메리 호. 아스트로파지에 영향받지 않는 행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연구하여 지구를 구해내는 것이 임무이다. 그레이스는 장시간 코마에 빠져있다가 일부 기억을 잃어버린 채 우주선 안에서 깨어난다. 동료들은 이미 죽어있다. 대화 상대는 오로지 AI뿐. 그레이스는 우주의 고아가 된다. 자신이 왜 우주선에 타고 있는지, 어째서 이곳에 오게 된 건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임무를 수행하는 그레이스.

 

 

 

1. alone에서 we가 되기까지.


 

어느 날, 그의 앞에 거대한 금속 덩어리 우주선이 나타난다. 당황한 그레이스는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우주선에 외계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서로 소통하기에 이른다.


눈, 코, 입이 없는 돌덩어리 외계인. 표정을 알 수 없기에 무서울 법도 하지만, 한참 외로움에 사무쳤던 그레이스는 외계인과의 대화를 이어 나간다. 그러다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번역기까지 개발하고 통성명도 한다. 그레이스는 외계인을 '로키'라고 부른다.


각자 머무는 우주선의 대기질이 서로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둘. 그럼에도, 온기를 나눠 가진다.


"I'm alone."


로키는 자신이 혼자라고 말한다. 아스트로파지로부터 행성이 멸망할 위기에 처했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주로 나왔지만, 동료들이 원인 불명 문제로 죽어갔으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무엇도 없었다고. 그레이스와 로키가 마음을 나누며 alone이 we가 되는 장면에서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생김새, 살아온 환경 전부 극단적으로 다른 두 존재가 공기막 하나를 두고 가족이 되는 과정이 은하수처럼 눈부셨다.


로키는 친구들이 잘 때 서로 지켜봐 주는 문화가 있다고 말하고, 그레이스는 로키의 문화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잠들기 하루의 끝과 시작을 함께하게 된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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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 스스로를 길들이던 둘은 낯선 이방인으로부터 '익숙함'을 느낀다. 내 옆에 살아 움직이는 이가 있다는 것. 자고 일어날 때 함께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임무가 끝나면 각자 갈 길을 가야 할 운명. 그리하여 서로의 그리움을 달래주면서도, 곧 그리움이 될 운명이지만 우선 지금을 즐기기로 한다.


그들은 각자의 고향에 관해 이야기한다. 로키는 임무를 수행하고 자신의 별에 돌아갈 생각으로 들떠 있다. 그레이스는 편도 연료만 싣고 온 것이기에 지구로 돌아갈 수 없고, 우주에서 죽어야 했다. 사실을 알게 된 로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연료를 덜어주겠다고 얘기한다.

 

"내가 집에 6년 늦게 가면, 그레이스, 지구에 갈 수 있다."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다며 시종일관 무표정했던 그레이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는 펑펑 울며 투명한 정육면체 벽을 두른 로키를 껴안는다.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던 그는 사실 누구보다 살고 싶었던 거다.


로키에게 그레이스는 6년이라는 시간보다 큰 의미였다. 그 어떤 시간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소중함을 느꼈기에, 그레이스가 살았으면 해서. 죽지 않기를 바라서, 그가 고향별 지구로 돌아갔으면 해서 '6년을 쓰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행성 '타우세티'가 아스트로파지의 위협받지 않았기에, 그곳의 미생물을 채취해서 연구해 보기로 한다. 그렇게 임무를 수행하던 참에 문제가 발생한다. 우주선에 구멍이 뚫리고, 조종석에 앉아 있던 그레이스가 부상을 당해 정신을 잃는다. 로키는 방호복을 벗고 살갗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 그레이스를 구한다.

 

 

 

2. 팽창하는 우주, 팽창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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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는 죽은 건지 산 건지 알 수 없는 로키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혼자서 임무를 완수한다. 또한 기억이 돌아와, 자발적으로 헤일메리 호에 탑승했던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본래 탑승하기로 했던 이들이 사고로 사망하자, 대책위원회의 에바는 프로젝트를 연구해 오던 그레이스를 강제로 우주에 보낸 거였다.

 

"지금 저더러 죽으러 가라는 건가요."

 

"어차피 지구에 남아 있어도 죽는 건 똑같아요."

 

그래도 조금은 더 살다가 죽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레이스. 그는 죽음을 무서워했고, 지구에 남아 있고 싶어했다.

 

"가족도, 키우는 개도 없잖아요."

 

그런 그레이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어차피 잃을 게 없지 않냐는 식의 설득. 하지만 그레이스의 마음은 바뀌지 않고, 에바의 지시 하에 직원들은 그레이스에게 마취제를 투여하여 기절시킨다.


자신이 어떻게 해서 우주선에 오게 됐는지 깨달은 그레이스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의 물결이 일렁인다. 타우세티 행성에서 채취한 타우메바를 배양하는 데 성공하고, '그레이스, 로키 별들을 구하다'라는 초기 목표를 거 진 다 이뤄가던 참이었다. 로키는 부상에서 회복하고 둘은 시원섭섭한 인사를 나눈 채 갈 길을 간다. 로키가 나눠준 연료 덕에 4년 후면 지구에 도착할 수 있게 된 그레이스. 잠에 들려던 참에 경고 알람이 울린다.


타우세티에서 채취한 타우메바가 제노나이트를 먹어 치우게 진화하였고, 우주선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다행히 연료까지 전부 먹어 치우기 전에 일을 수습했지만, 문득 로키의 우주선이 전부 제노나이트로 이루어져있다는 걸 깨닫는다. 로키의 우주선이 타우메바에 의해 망가지고 연료까지 바닥나면, 로키는 우주 방사선에 노출되어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어갈 것이다.

 

로키를 구하러 가면 지구를 포기해야 한다. 지구로 가면, 로키는 죽는다.


그레이스는 타우메바를 무인 탐사선에 실어 지구로 보낸다. 그러곤 로키에게 향한다. 로키와 함께했던 시간을 가슴에 새기면서. 그는 배신을 당해 임무를 맡게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그레이스는 꽤 이성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인물로 그려져 왔다. 그가 초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도 이타심보단 호기심을 기반으로 한 선택이었을 거다. 유능한 과학자였던 그는 학회에서 자신의 주장이 인정받지 못하고 배제당하자 도망치듯 과학 교사가 된 것이었다. 그레이스는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기보단 회피하는 성향이 짙었다. 그랬던 그가 기억을 잃은 채 우주 한복판에서 깨어나고, 로키를 만나 진정한 가족을 찾았다. 누군가를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용기까지 쟁취했다.

 

 
우주가 팽창하듯 그레이스도 무한대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56일의 여정 끝에 로키의 우주선을 만난 그레이스. 그는 다시 한번 투명한 벽을 거세게 두드린다. 그러나 보이는 건 짙은 어둠뿐. 망연자실한 그의 앞에, 로키가 나타난다. 쓸쓸히 죽어가던 로키가 그레이스를 재회했을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단순한 고마움과 감격을 넘어, 인간의 언어로는 채 완성할 수 없는 감정이 일었을 거로 생각한다. 살았다는 안도감보다도 그레이스를 다시 만났다는 기쁨이 더 크지 않았을까. 로키가 그러했듯, 그레이스 또한 기꺼이 기적이 되어주었다.


푸른 별, 지구. 그레이스는 가족은 없지만 발 딛고 선 행성을 사랑했다. 그런데 그 푸른빛의 행성보다도 더 큰 존재인 '로키'를 만났다. 얼굴이 없으니, 표정도 없는 로키. 그런 돌덩이 외계인이 인간보다도 더 짙은 다정함을 쥐여주었다.


경기가 끝나기 직전 기적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날리는 장거리 슛, 헤일메리. 그레이스가 로키를 선택한 것도, 로키가 고통을 감내하며 그레이스를 살린 것도 '헤일메리 슛'과 같았다. 멀리, 아주 멀리 기도하면서도 간절함이 정확히 닿기를 바랐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들이 서로의 구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3. 멀리서 날아온 공을 기꺼이 받는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단순한 SF영화가 아니다. 종과 성별, 문화를 뛰어넘어 같은 공간에서 '연대'한다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작품이다. 로키, 그레이스는 우주에 홀로 남겨진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갔다. 사실 혼자여도 살아가는 데에 문제는 없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선택했고 진정한 '우리'가 될 수 있었다.


혼자여도 괜찮지만, 둘이어서 가능한 일도 있다. 그건 바로 '변화'이다. 나는 모든 변화가 혼자가 아닌 둘 이상일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스트로파지 또한 뭉칠수록 태양의 열기를 더욱더 빠르게 흡수했던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과학기술만이 인류를 구하는 건 아니다. 타자를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마음이 동반되어야만 '구원'이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마음을 넓히게 되고, 그렇게 팽창한 마음엔 또 하나의 행성이 세워질지도 모른다.


간절함, 절박함, 사랑을 담은 '헤일메리 슛'.

 

골대에 들어갈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공을 손에서 놓은 것이 아니라,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 힘을 실어 던졌다는 것. 멀리, 멀리, 아주 멀리 포물선을 그리며 공은 잠시나마 '날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패스를 받아주는 상대가 있을 때, 헤일메리 슛은 완성된다.

 

 

그러니 애초에 '헤일메리 프로젝트'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헤일메리, 경기 종료 직전 역전을 노리고 던지는 긴 '패스'. 아무것도 없는 우주에 공(헤일메리 호)만 던진 줄 알았으나, 그 공을 받아줄 로키가 있었기에 완수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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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우주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이다. 그럼에도 매 순간 각자의 헤일메리 슛을 날리며 변화를 꿈꾼다. 한 개인은 작지만, 개인과 개인이 모여 '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간절함을 누군가 받아줄 것이라는 생각, 타자를 향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 

 

 

끊임없는 연대 속, 아무리 멀리서 날아온 공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받아주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바라는 기적이 더욱더 많이 찾아오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누군가를 울리고, 웃기고, 그리하여 살리는 '기적'.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기적을 이뤄낼 수 있다. 멀리서 날아오는 공일지라도, 기꺼이 받아주는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별들을 구하는 건, 결국 별에 사는 우리의 몫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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