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어 자유를 찾아가는 긴긴밤 – 뮤지컬 ‘긴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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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5일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긴긴밤>을 원작으로 하는 국내 초연 뮤지컬이 대학로 링크아트센터드림에서 개막했다. 긴긴밤의 스토리는 이미 너무나 회자 되었던 원작 동화로, 또 일전 세실극장에서 진행되었던 판소리 형식의 공연을 통해서도 접했기 때문에 이 완성도 높은 스토리를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 남다른 감동을 줄 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극장에 방문했다.
여느 대학로의 극장과는 확실히 다른 풍경이었다. 곳곳에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 관람객이 보이는가 하면, 내 또래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관객까지 굉장히 폭 넓은 연령대의 관람객이 이 곳에 모여들어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며 새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 연령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긴긴밤>의 힘을 체감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110분의 공연을 관람하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공연에 대해 가졌던 나의 기대와 약간의 우려감은 완전한 만족감으로 변화해 있었다. 뮤지컬 <긴긴밤>은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탄탄한 대본과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몰입하는 출연진, 그리고 이들의 열연을 극대화해주는 소품과 연출 삼박자의 조화를 이루며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던 진한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동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대 연출과 소품
긴긴밤의 무대 구성은 상당히 단순하다. 물론 대부분의 중소극장은 대극장에 비해 심플한 무대와 소품 구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긴긴밤의 무대를 보면 약간의 풀이 있는 빈 공간을 통해 유독 비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노든과 아기 펭귄의 기나긴 여정이 펼쳐지는 들판과 바다의 광활함을 크지 않은 극장의 무대에서 최대한으로 구현해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뮤지컬 긴긴밤은 이러한 최소한의 무대 구성의 한계를 바닥 패널과 조명의 똑똑한 활용, 그리고 소품과 의상의 디테일로 채우며 부족함 없는 연출을 보여주었다. 출연진들이 주로 열연을 펼치는 공간 밑 바닥에는 사각 타일 형태의 패널이 있는데, 이 패널은 색깔을 바꾸며 장면에 따라 동물원 우리가 되기도 하고, 노든과 아기 펭귄이 걷는 길이 되기도 하며 종래에는 이들이 애타게 찾던 바다가 되기도 한다.
패널은 부분적으로 빛을 낼 수 있어 출연진이 발을 딛는 대로 빛을 내며 길을 만들어 내거나 일정 부분에만 작은 사각형을 만들어 마치 감옥 같은 좁은 동물원 우리를 굉장히 효과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아기자기한 소품의 활용 또한 눈에 띄었는데, 아기 펭귄이 걸을 때 나는 소리를 표현하기 위한 캐스터네츠, 동물원 우리에 한 평생을 묶여 살았던 앙가부의 처지를 표현하기 위한 방울 달린 발찌, 축구공을 활용한 펭귄 알, 극의 마지막 어린 펭귄이 마주한 바다를 더욱 극적으로 표현해준 볼풀 등 소소한 소품이지만 이들은 각 장면에서 확실한 감초 역할을 하는가 하면 캐릭터가 가진 특성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특히 노든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이자 어쩌면 그의 삶 전체를 대변해주는 코뿔소의 뿔을 각종 소품이 담긴 코뿔소 몸체를 표현한 가방에 끼워 표현한 것이 굉장히 신선했는데, 이를 통해서 관람객들이 거대한 몸체와 단단한 뿔을 가진 코뿔소를 직접 머릿속으로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된 디자인을 통해 깔끔한 구성을 유지하면서도 캐릭터별로 다른 디테일을 가진 의상 또한 관객이 상상력을 통해 무대를 직접 채워 나가는데 톡톡한 몫을 해주었다.
가령, 흰 셔츠라는 공통된 아이템 안에서 코뿔소와 펭귄의 의상이 각기 다른 하의 색상으로 구분되고, 같은 코뿔소라도 노든과 앙가부의 핸드워머 디테일이 다르거나 아기 펭귄만 노란색 스카프를 매는 등 의상의 작은 디테일 차이가 캐릭터의 특성을 반영하고 구분을 쉽게 해주었던 것 같다.
스토리를 완성하는 캐릭터들의 관계성
무엇보다 화려한 무대 전환이나 소품 없이도 긴긴밤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던 것은 캐릭터들 간의 긴밀한 관계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긴긴밤에 등장하는 노든과 아기펭귄, 앙가부, 윔보, 치쿠는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저마다의 아픔과 사정을 품고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기꺼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길동무가 되어준다.
멀티 배역이 맡은 앙가부와 윔보는 특유의 다정한 성정으로 노든과 치쿠에게 믿고 기댈 수 있는 나무 같은 역할이 되어준다. 그들은 노든과 치쿠의 까칠한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아낌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는가 하면 자신들이 알고 있는 바깥 세상의 이야기들을 해주기도 한다.
앙가부와 윔보로부터 여러 생존 지식뿐 아니라 서로를 지켜주는 온기의 중요성을 배운 노든과 치쿠는 어린 펭귄이 든 알을 성공적으로 부화시킬 뿐 아니라 노든에게 진정한 가족이 되어주었던 코끼리들처럼 어린 펭귄에게 ‘아빠’같은 존재가 되어 준다.
극의 마지막, 홀로 바다를 찾아가야 하는 어린 펭귄에게 정성스럽게 배낭을 매어주고, 꼼꼼히 신발 끈을 매어주는 노든은 비록 코뿔소지만 어린 펭귄에게 부모와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훌륭한 코뿔소, 펭귄이 되어주었던 이들의 끈끈한 관계는 캄캄하고 긴 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존재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진한 몰입과 감동을 준다.
긴긴밤이 전하는 감동 이상의 메시지
극 중 ‘긴긴밤’이 시사하는 의미는 단어가 주는 첫인상만큼 그리 어둡지는 않다. 물론 노든과 아기 펭귄이 ‘바다’를 찾아가기 위해 걸어야 했던 길은 때로 춥고 배고프며 길었지만, 긴긴밤은 그들이 ‘만남’으로써 시작되었기에 이는 곧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위한 첫 단계로 볼 수 있다. 노든이 코끼리 고아원을 나와 아내와 아이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앙가부를 만나기 위해, 치쿠와 아기 펭귄을 만나기 위해 거쳤던 수많은 긴긴밤은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기 펭귄에게는 이름이 없다. 극 중에서 노든의 대사처럼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정의 되는 것’, 즉 어떠한 틀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극 중 이름을 가진 이들은 모두 동물원 출신이다. 노든은 그 이름을 얻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코뿔소가 되는 것보다 이름 없이 바깥 세상에서 살았던 시절을 더 자유롭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던 듯 하다.
그리하여 노든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펭귄에게 구태여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어린 펭귄이 상징하는 것은 ‘자유’ 그 자체이다. 그것은 코끼리 고아원의 구성원들로부터 노든이 느낄 수 있었던 것으로, 어린 펭귄이 앙가부의 발찌와 같은 어떠한 굴레로부터 자유롭길 바라는 노든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펭귄과 노든은 끝까지 함께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노든에게는 그가 ‘복수’라고 부르는, 지키지 못한 이들을 평생 기억함으로써 늦게라도 지켜주고자 하는 책임감이 있었다. 어쩌면 노든은 완전한 자유를 얻기 보다는 인간들의 곁에서 지내며 그들로부터 비롯된 일련의 사건들과 그가 기억해야 하는 이들에 대한 소명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박다온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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