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크기변환]otaru.jpg

 

 

책장 한구석에 편지를 모아 놓는 상자가 있다. 색이 희미하게 날아간 국제우편 도장을 입고 바다를 또는 육지를 가로질러 내게 날아든 편지. 내가 기억하는 편지 또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편지. 그리고 쓰다 말아 부치지 못한 편지.


부치기는 했으나 제대로 도달할지는 자신할 수 없던 편지를 쓴 일이 있었다. 내게 있는 주소는 정확하지 않았고 편지를 받았으면 하는 분이 여전히 그곳에 계신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의사소통이 전자기파와 조음기관 둘 중 하나를 택해 이루어지는 오늘 같은 세상에서 손으로 꾹꾹 눌러 글씨를 쓰고, 봉투를 밀봉하고, 먼 길을 달려온 편지의 겉면을 조심스레 열어 보는 종류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 생각했다. 떠나보낼 수는 있으나 가닿을지는 모르는 편지를 쓰는 일마저도 일종의 축복이라면 축복일 것이었다. 

 

그 당시 썼던 편지의 원본은 손끝을 떠나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으로 씩씩하게 향했고, 끝맺지 못한 편지의 사본은 - 실패본이 아니다 - 내게 그대로 남아 이따금씩 곱씹어 보는 텍스트가 되어 주었다.

 

*

 

선생님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제 편지는 선생님의 교토 집에 도착하는 마지막 편지가 되겠네요.

 

선생님께서 그 집을 떠나신다는 사실이 왜 이리 아쉬운지 모르겠어요. 그 집에 켜켜이 쌓인 세월이 얼마일까요, 그 집 구석구석 닿아 있는 선생님의 손길 하며 그 집을 거쳐 간 사람들의 흔적들은 또 얼마나 될까요. 고작 두어 번을 가 봤을 뿐이지만 마음은 왜 스무 해도 넘게 그곳을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섭섭한지.

 

실은 지난 봄에 교토를 떠나올 때, 선생님 댁을 나오며 현관의 달마도를 향해 마음속으로 짧게 빌었어요. 이 집을, 그리고 이 집에 사는 사람을 언제까지고 안온히 지켜 달라고요. 이제 달마가 정말 집을 지켜 주었는지는 모르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달마가 그 집에 살았던 선생님만큼은 앞으로도 주욱 보살펴 주기를 바랄 뿐이에요.

 

벚꽃이 질락 말락 하던 사월에 교토에서 선생님을 뵈었을 때, 실은 하고 싶었던 말을 단 하나도 제대로 꺼내놓지 못했어요.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곤 ‘그래도 살아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네.’ 라고 하셨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종종 생각했어요. 저는 살아 있는 게 맞을까요? 저는 정말로 살아 있는 게 맞을까요?

 

삶이 불행하다거나 그만두고 싶다거나 하는 뜻은 절대 아니에요. 제 요즈음은 안온하고 무탈하고, 나름대로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거든요. 저는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고, 아늑한 집과 잠자리가 있고, 음악을 들으며 창 밖을 구경할 수 있는 저녁 시간이 있고, 초콜릿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집 근처의 카페가 있어요. 그런데 이런 하루하루에 감사하고 일상이 퍽 만족스럽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제가 더는 무언가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는 생각을요.

 

저는 그 무엇도 원하지 않는 것 같고 그 무엇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언젠가 잃을 것이 두려우니 무엇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어차피 이루지 못할 테니 애초에 원하지 않도록 마음이 진화를 한 걸까요? 어차피 언젠가는 끝이 찾아올 테니 애당초 애정을 갖지 않도록 마음이 진화를 한 걸까요?

 

무척 바보같은 말들이라는 걸 알아요. 사실 제가 느끼는 고민의 정론은 정해져 있죠. 숱한 실패와 좌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하고, 언젠가 끝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 끝 때문에라도 더더욱 지금 이 순간을 아껴 주어야 하죠. 그게 정론이라는 걸 저도 알아요. 하지만 마음이 그 무엇에도 동하지가 않는 것 같아요. 마음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아요.

 

선글라스 중에는 간혹 분홍색이나 노란색처럼 예쁜 색으로 칠해져 있는 선글라스도 있다는 사실을 아시죠? 똑같은 대상이라도 분홍색 선글라스를 끼고 보았을 때와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보았을 때 전혀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잖아요. 제가 자평하는 제 삶이란 딱 그런 것 같아요. 기분이 분홍색 선글라스 같을 때에는 제 삶은 퍽 괜찮고 멋지게 느껴지고요, 기분이 검은색 선글라스 같을 때에는 제 삶이 그 무엇도 뜻한 바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애매하기 짝이 없는 삶 같아요.

 

그래서 늘상 여쭤보고 싶었어요. 이런 무미건조한 상태의 저는 정말로 살아 있는 게 맞을까요? 실은 교토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는데,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둑을 열고 물길을 내는 것과도 같아서 한 번 물꼬를 텄다 하면 겉잡을 수 없이 속의 못난 이야기들이 터져나올까 봐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쓰고 싶었던 말이 이런 푸념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지난 봄 선생님을 따라 교토에서 보냈던 며칠의 시간을 참 좋아했고, 그곳에서 가졌던 반짝이는 순간들을 아직까지도 꺼내어 보면서 회고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선생님께서 데려가 주신 자그마한 식당과, 그곳에서 만난 대안학교 사람들과, 그곳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정말 좋았어요. 일본의 학교에서 기미가요를 트는 것이 싫어 미국으로 떠나 공부를 하고 돌아와 이곳에 대안학교를 세우셨다는 K 씨의 이야기, M 씨가 딱 지금의 제 나이와 비슷했던 시절 교토대학교에서는 사회주의 학생운동이 일어났더라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 정말 좋았어요.

 

거세게 내리는 비를 뚫고 보았던, 조금은 쓸쓸한 교토대학교의 오래된 벚나무도 좋았어요. 한 칸짜리 열차가 지나다니는 기찻길도 좋았어요. 카페 에이토의 낡은 창가와, 얼룩 묻은 검은 앞치마를 두른 사장님과, 그 사장님께서 가져다 주신 책자 속에 있던 남부의 불교 순례길을 들여다보는 게 좋았어요. 그 책자를 보며 한국인 스님이 계신다는 남부 어딘가의 사찰을 상상해 보는 게 좋았어요.

 

이웃이 없는 암자, 후계자가 없어 문을 닫은 지 오래인 것 같다는 카페를 지나쳐 교토 시내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던 길도 좋았고요. 물을 신기하게 따르는 직원이 있는 오므라이스 가게에서 선생님의 친구분을 만난 것도 좋았고요 - 그분의 얼굴과 그분이 하셨던 말씀, 그분이 드셨던 메뉴까지도 기억나는데 성함이 기억나지 않아요. 제 방 어딘가에 그분의 명함이 있으니 찾으려면 찾을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선생님이 오래된 주방에서 끓여 주신 밀크티도 좋았고요. 2층 방에서 창문을 열면 내다보이는 작은 도랑과 건너편 집들도 좋았고요.

 

그리고 또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무엇보다도 선생님께서 주셨던 작고 오래된 그 라디오가 정말 좋았노라고, 실은 그 여행에서 가장 좋았노라고요. 79.7로 맞추면 흘러나오는 이름 모를 노래들과 라디오 진행자들의 목소리가 참 좋았어요.


지난 여름엔 몽골에 다녀왔어요. 몽골에서 선생님께 드릴 요량으로 엽서를 하나 골라 왔는데, 여름에 사 놓고 이제야 겨우 부치다니 제 인생은 역시 바보처럼 미룬 일들과 그로 인한 후회의 연속이 맞는 듯해요. 아무튼 간에 그 엽서를 동봉해서 보내요. 선생님과 마주 앉아 그 엽서에 대한 선생님의 감상을 목소리로 들을 날을 기다리면서요.

 

다음에 선생님을 직접 뵙게 될 때 제가 정작 속에 있는 이야기는 꺼내놓지 않고 시답잖은 이야기들로만 대화를 수놓아도 마음을 닫아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제 단점은 얼굴을 맞대고선 가감없는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끝끝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숨긴다는 점이지만, 동시에 제 장점은 지면 위에선 한없이 솔직할 수 있다는 점이니까요.


선생님께서 이 편지를 낮에 펼쳐 보실지, 밤에 펼쳐 보실지 모르겠네요. 안온하고 평안하며 무탈하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세요.

 

*

 

편지에 겸연쩍게 올려 두었던 속내는 지금과는 조금 다르기도 하며 또한 여전히 유효하기도 하다. 어떠한 편지는 일기가 되고, 어떠한 일기는 편지가 된다.

 

올바르게 배달되었더라면 그 편지는 받아 보신 분으로 하여금 어떤 생각을 하게 했을까. 시간이 더 흘러 조금 더 이후의 내가 이 편지를 다시 읽어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여전히 지금과는 조금 다르며 또 유효할까.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