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남긴 흔적 같다. 모든 과거가 그리움이 남기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를 그리워할 수는 없다.
그리운 시절을 말할 때 붙는 단어는 많다. 생각하다, 기억하다, 상기하다, 복기하다, 새기다 등. 나는 그들 중에서도 '떠오르다'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른 단어와 다르게 '떠오르다'는 나의 의도와 무관하게 '생각이 나 버린' 듯 다가오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그리워질 때 하현상의 <비행>을 듣게 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비행>은 '네 생각이 떠오른 것'을 '비행기가 떠오르는' 비행에 비유했다. 비행기를 타고 떠난 듯 사라진 '너'와의 기억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이미지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난 지금 여기 창밖의 그림과
그 위에 널 부르는 그리움에 잠겨서
날고 있어
너를 만난 그때로
비행의 종착지가 그때의 기억이 될 수는 있어도 '너'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여길 떠나는 지금"이라는 가사가 말해주듯 화자도 그것을 안다. 그는 내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고, 내가 그에게 갈 수도 없다. "너를 만난 그때로" 가는 것만이 내가 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마음 깊숙이 새겨 두는 것은 좋은 것일까, 아쉬운 것일까.
2019년에 방연한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 이런 대사가 있다.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꿈처럼 보고 갔으니까 녀석은 운이 좋은 거야
당신도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에 그리운 것들이 있겠죠?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은 말 그대로 돌이킬 수 없다. 과거를 함께 한 어떤 대상을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때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슬픔을 안겨줄 뿐이라고 정의했던 날이 있었다. 몇 번을 곱씹어도 되돌아갈 수 없는데 나는 왜 계속 그때를 생각할까. 지금이 만족스럽지 못해 그때를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상념이 가득 찬 밤이었다.
그 생각에 틈을 만들어준 것 중 하나가 <비행>이다.
나는 최근에도 돌아가고 싶은 시절 하나가 생겼다. 길어서 끝나지 않을 줄 알았던 일 하나가 돌아갈 수 없게 종료되었다. 그 과정에 있는 동안 언제 끝나는가를 생각한 날이 많았는데 아쉬움이 생길 무렵 끝을 맺었다. 그 시간 안에는 그리운 것들이 있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움이 남는 기억은 또 다시 우리를 살게 하는 것 같다. 그랬던 순간이 있기에 오늘을 살 수 있고, 내일 또 그러한 순간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가지게 한다. 시간도, 기억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 뒤틀리고 잊히고 사라지겠지만 그 안에서도 남는 것들 때문에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지나간 시간이 멀리 여행을 떠나듯 사라질지라도 우리에게는 너를 만난 그때는 여전히 존재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그리워서 떠오르는 기억들이 사람들에게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떠오른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그린 그림 같고, 그래서 더 애틋한 느낌이 든다.
얼마 전 시작한 2025년이 벌써 끝이 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2025년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 안에는 그리운 것, 떠오르는 것이 있을까. 연말을 준비하며 언젠가 떠올릴 기억들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아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