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나에게 아주 작은 동생이 생겼다.
채 가시지 않은 시린 여운 속에서도 꽃이 움트는 이상한 봄이었다. 1년 간의 프리터족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대학으로 편입한 나는 자기 확신이 없었다. 강의실에서 낯선 용어가 오갈 때마다 외계인이 된 기분이었다. 개념을 이해도 못 한 채 받아적기만 했다.
그렇게 한없이 움츠러든 내 앞에, 손바닥보다도 작은 네가 나타났다.

어느 날, 아빠가 알록달록한 케이지 하나를 들고 왔다.
"햄스터 데려왔다."
아빠는 골든 햄스터를 분양받으려 했는데, 자그마한 정글리안 햄스터한테 계속 시선이 가길래 너를 데려왔다고 했다. 처음엔 케이지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톱밥을 휘젓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랬던 네가 먹이통을 흔들자,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촉촉한 분홍색 코, 자세히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가느다란 흰 수염. 흑요석같이 반짝이는 눈.

"인형 아니야? 너무 작아. 어떡해, 못 만지겠어."
"태어난 지 한 달 됐다더라."
아주 어린 동생이 생긴 기분이었다. 너는 겁 없이 손바닥에 올라왔고, 작은 손으로 열심히 세수했다. 보드라운 온기가 손금에 스며들며, 너는 운명처럼 나에게 왔다. 얼어붙은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네 이름은 이제 애기야."
정말 아가라는 말 밖에 안 나오는 너였기에, 이름을 애기라고 지었다. 사실 이름을 대충 지으면 오래 산다는 미신을 믿어서도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키웠던 햄스터의 이름은 '스터'였다. 스터는 거의 3년을 살았다. 평균 수명이 1년 반에 불과한 정글리안 햄스터치고는 오래 머물다 간 것이었다.
엄마와 오빠는 너를 왜 데려왔냐며 아빠를 나무랐다. 죽으면 불쌍하고 슬프다고. 문득 스터가 아팠을 때 방문을 잠그고 펑펑 울던 어린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가족 중에서 처음으로 스터의 죽음을 보았다. 스터는 모래사장에서 아주 깊은 잠에 빠진 듯 엎어진 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아무리 어린애여도 한 생명이 숨을 다 했다는 것 정도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믿고 싶지 않아서, "왜 이렇게 깊게 자." 라고 얘기하며 스터를 지켜만 보았다.
까만 밤, 스터를 야트막한 뒷산에 묻었다. 스터에게 손 편지를 몇 장이나 썼던 것 같다. 같이 묻으려고 했는데, 엄마가 종이는 안 썩으니, 간직만 하래서 울면서 알겠다고 했다.
그 기억 때문일까, 너에게 깊은 정을 주기가 어려웠다. 초등학생 때만큼 마음에 여유도 없었고, 학교생활과 연애와 아르바이트 뭐 하나 쉬운 게 없어서 잠 못 드는 밤이면 쳇바퀴 소음이 조금 성가시게 느껴졌다.
나는 꽤 엉망이었다. 애인과 다투면서 펑펑 울고 헤어짐을 결심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곧이라도 웨딩드레스를 입을 것처럼 굴었고, 생소한 전공 용어는 들어도 들어도 자꾸 까먹어버렸다. 나는 어차피 잊어버릴 것을 움켜쥐고 모으는 사람이었고, 그런 스스로가 싫었다.
너는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완전히 빼닮은 동물이었다. 자꾸 모으고 자꾸 까먹으니까.

물을 갈아주고 먹이를 주면서 애기야, 하고 부르면 너는 쪼르르 달려왔다. 내 손가락을 핥거나 손톱을 살살 깨물었다. 너는 배가 안 고파도 먹이만 보면 볼주머니를 한가득 채웠다. 나중에 찾아보니 볼주머니가 어깨까지 길에 이어져 있다고 하더라. 겉으로 봤을 땐 몰랐는데.
너는 그렇게 모은 먹이를 굴속에 숨기곤 잊어버렸다.
엄마, 아빠, 오빠 다 일을 다녔기에 대학생인 내가 상대적으로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래서 너는 유독 내 손을 잘 탔다. 오후의 햇살 속에서 반쯤 깨어있는 네게 손을 뻗었다. 흐릿했던 털이 선명해지고 한 뼘 더 자라난 너. 아빠는 너를 두고 이젠 청년의 시간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네 시간은 쳇바퀴 굴러가는 새벽 같아서, 우리가 모르는 새에 빠르게 흘렀다.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하는 너. 얼굴을 찡그리거나 활짝 웃지도 못하는 너. 할 수 있는 표현이라곤 혓바닥으로 손을 핥는다거나 찍, 찍 소리를 내는 게 전부인 너. 나는 그런 네가 잠든 것을 보겠다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너를 궁금해하는구나. 보고 싶어 하는구나. 그러니까, 이건 사랑이구나. 그리고 너는 나에게 백 마디 말보다도 진한 위로를 건네고 있었구나.
애인과 헤어져서 펑펑 울음을 쏟을 때도, 시험기간에 수척해진 얼굴로 성적을 걱정할 때도, 너는 말 한마디 대신 축축한 코와 혀로 '고작' 내 손가락 끝을 적셨다. 나는 그 '고작'이 좋았다. 고작 해바라기 씨앗을 모으겠다고 볼이 빵빵하게 부푼 채로 굴을 팠고, 이곳저곳 먹이를 흩뿌리는 네가 순간에 충실해 보이기 시작했다.
찬 바닥에 볼을 맞대고 투명한 플라스틱 벽 너머로 너를 보았다. 너는 굴속을 헤집다 멈칫하더니 무언가를 집었다. 그리곤 바쁘게 까먹기 시작했다. 앙증맞은 이빨로 해바라기씨 껍질을 벗겨내고 맛있는 식사를 하는 너. 그러곤 다시 눈을 감고 몸을 웅크리는 너.
전부 까먹어버린다고 생각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너는 네가 해바라기씨를 모으고 숨겼다는 것을 망각하면서도, 언젠가 그것을 발견했을 때 새로운 먹이를 본 냥 즐겁게 '먹고' 있었다. 까먹고, 까먹었다.
자그마한 너에게서 삶을 배웠다. 이별 후에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고 사랑했던 시간이 부질없게 느껴졌고, 확실치 않은 미래에 내 운명을 배팅하는 것이 맞는지 헷갈리던 참이었는데. 무엇이든 열심히 모아두면, 그것을 당장 써먹진 못하더라도 언젠가 쓸모가 된다는 것을. 혹은 길을 잃고 헤매는 영혼이 굶주릴 때, 언젠가 나타나 일용한 양식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네가 알려주었다.
자꾸 까먹고 있다고 느꼈던 시간과 순간. 우리 모두 그것을 먹고 자라난 것이었다.

네가 태어나고 함께 한 지 1년 3개월이 흘렀다. 너는 이제 중년의 시간을 살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우리 아빠의 친구인 셈이다.
너는 작년 여름만큼 쌩쌩하지 않다. 느릿느릿하고 털의 윤기도 수그러들었지만, 애기야, 애기야 부르면 귀를 쫑긋 세우고 문으로 다가온다.
너는 왜 더 오래 살지 못할까. 어쩌면 네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언젠가 아빠한테 물었다.
"햄스터는 왜 이렇게 짧게 살아?"
"몸이 작으면 그만큼 적게 산다. 그리고 몸이 작은 만큼 오래 아프지도 않고 짧게 앓다가 죽지 않을까?"
"그렇구나."
작은 너와 함께한다는 것은, 뜻하지 못한 것을 배우고 사랑하고 자꾸만 슬퍼지다 애달파 오는 것이다.
작은 너와 함께한다는 것은, 내게는 작은 시간이 너에겐 전부라는 것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작음조차 거대하게 부푸는 기적을 경험하는 것, 작은 너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너로부터 얻게 된 감정, 깨달음, 모든 순간이 언젠가 내 삶을 따뜻하게 데우는 날이 오겠지. 그럼 나는 그 순간을 꼭꼭 씹어 먹을게. 맛있게 까먹고는 단잠에 빠질게, 너처럼.

사랑해, 나의 작은 선생님.
사랑해, 나의 작은 친구.
사랑해, 나의 작은 동생.
사랑해, 애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