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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하루키 소설에는 역사가 없다는 오해 [도서]

일본 역사와 하루키의 정체성

by 방지수 에디터
2026.09.0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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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하루키 소설이란


       

      평상시에 하루키를 좋아한다고는 말하지만, 과연 나는 하루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용기를 얻곤 했다. '어떤' 역경을 극복하고 성장하는지는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주인공이 겪는 위기가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서술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하지만 굳이 더 생각해 보려 하진 않았다. 단순히 내 개인적인 고통과 연결 지어 주인공에게 공감하며 읽을 뿐이었다.

       

       

      1980년대 한국인 독자는 하루키의 소설을 잠깐 시원하려고 마시는 콜라처럼 읽었습니다. 아니면 마약처럼 현실 도피용으로 읽는 경우도 많았지요. 당시에 중요한 평론가 중 한 명이었던 유 아무개 교수는 하루키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쓰레기'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 김응교,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역사적 트라우마에 저항하는 단독자], 6쪽

       

       

      나도 종종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키의 작품을 읽었기에, 이 문장은 꽤 따갑게 느껴졌다.

       

       

       

      하루키 소설 [양을 쫓는 모험]에 얽힌 일본 역사



       

      우리는 숲을 빠져나가 ICU의 캠퍼스까지 걸어가 여느 때처럼 라운지에 앉아서 핫도그를 먹었다. 오후 2시였는데, 라운지의 텔레비전 화면에는 미시마 유키오의 모습이 몇 번이고 되풀이해 비치고 있었다. 볼륨이 고장 난 탓에 말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어쨌든 그건 상관없는 일이었다. (『양을 쫓는 모험』, 상권 제1장 21면)


      - 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 상권 제1장, 김응교의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156쪽에서 재인용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문화의 정신에 질서를 부여하는 천황을 더러운 물질문명에서 구해내고, 또한 공산주의의 손으로부터 지키려면 무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텔레비전 화면에 미시마 유키오가 나온 '1970년 11월 25일'은 그가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날이었고, 제국의 군국주의를 다시 기억하게 했다.

       

      그런데 소설 속 ‘나’는 텔레비전에 반복해서 비치는 미시마 유키오를 바라보면서도 “어쨌든 그건 상관없는 일이었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1970년 11월 25일’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장에서 중심에 놓이는 죽음은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이 아니라 이름조차 제시되지 않은 한 여성의 죽음이다.

       

      미시마 유키오가 누군지는 몰랐지만, 텔레비전 화면에서 반복해서 나오니 실존 인물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도 화자가 "어쨌든 그건 상관없는 일이었다"라고 말했으니 하루키는 현실의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는 식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오해였다.

       

      1970년 11월 25일뿐만이 아니라, 이 소설에는 중요한 일시가 1936년 2·26 사건*과 겹치고, 또 1945년 8월 9일 소련의 기습**도 소설의 중요한 시간에 배경으로 흐른다.

       

      * 천황 중심의 국가를 세우려 했던 청년 장교들의 쿠데타 미수 사건

      ** 소련이 일본과의 중립 관계를 깨고 만주를 전격 침공해 관동군을 무너뜨리고, 일본의 항복과 이후 한반도 분단에까지 영향을 미친 사건


      이를 통해 하루키가 현실의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는 소설 속에서 미시마 유키오가 죽은 ‘1970년 11월 25일’을 의도적으로 무시함으로써, 극우의 역사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 하루키는 일본 극우 파시즘의 숙주를 추적하고, 어떻게 언론과 정치와 자본이 연계해 있는지 드러낸다.

       

       

       

      하루키 소설에는 역사가 없다는 오해


       

      사실 하루키는 거의 모든 소설 곳곳에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실을 서술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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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직접 찍은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의 내용)

       

       

      일본의 극우 세력은 하루키의 작품을 반(反)애국적이라고 비난하며 불매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루키의 문학은 무척 몽환적이고 도시적이며 개인적이다. 적극적이거나 실천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역사적·지구적 문제를 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하루키 문학이 몰역사적이라는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


      일본 사회가 아시아에 끼친 피해의 역사와 부조리한 자본주의를 감추는 ‘삭제의 죄악’을 저지르는 동안, 하루키는 여러 작품을 통해 일본의 역사적 과오와 일그러진 자본주의를 끈질기게 드러내왔다.


      특히 ‘일억 단결’로 상징되는 극우적 집단주의가 뿌리 깊은 일본 사회에서 하루키의 방식으로 현대사의 문제를 지적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다시 보게 된 하루키


        

      나는 뉴스를 즐겨 읽지 않는다. 매일 아침 엄마가 가족 단체 채팅방에 보내주시는 ‘오늘의 헤드라인’ 목록을 훑는 것이 전부다. 매일 새롭게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를 직접 찾아 읽다 보면 마음이 아프고 우울해진다는, 어쩌면 비겁한 이유에서였다.


      예전에 나는 독후감을 쓰다가 ‘하루키 소설 속 인물들은 사회적 책무보다 개인의 욕구를 더 중요하게 여겨서 좋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나는 그동안 하루키의 소설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었다. 작품 뒤의 역사와 현실은 보지 않은 채, 몽환적이고 개인적인 세계만을 골라 현실 도피의 근거로 삼았다.

       

      현실에 무관심한 채 개인의 삶을 더 중요시 하는 하루키 소설 속의 주인공을 보며,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하루키 소설 속의 주인공도, 하루키도, 현실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잘못된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었다. 역사를 몰라서 지나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하루키 소설의 시간적 배경과 작품을 꿰뚫는 주제를 통해 알 수 있다.


      나는 하루키 소설을 읽으며 역사와 문학은 별개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져왔다. 그 믿음을 빌려 뉴스를 보지 않고 사회의 아픈 부분을 외면해온 나의 태도까지 합리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도 사회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살아갈 수는 없다. 나 역시 마음속에는 사회를 바라보는 나만의 입장이 있었다. 다만 겁이 많고 소극적인 데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그 입장을 모르는 척하며 외면해왔을 뿐이다.


      하루키를 다시 보게 된 끝에서, 나는 나 자신도 함께 마주하게 되었다.

       

      결국 이야기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담긴다. 그러므로 문학은 사회·역사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사이라고, 이제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나의 시선과 입장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아무런 입장도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나는 어쩌면 더 큰 상처를 주는 쪽에 가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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