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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결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트라이트〉에는 탐사보도 영화에서 기대할 법한 극적인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기자들은 큰 위험을 무릅쓰고 비밀문서를 빼돌리지도, 거대한 권력과 정면으로 맞서지도 않는다. 대신 사무실에 앉아 전화를 걸고, 오래된 교회 명부를 뒤지며, 같은 질문을 거듭한다.
두 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진실을 폭로하는 순간 자체보다 그 진실이 기사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가깝다.
2001년, 보스턴 글로브에 새로 부임한 편집국장 마티 배런은 가톨릭 사제 존 게이건의 아동 성범죄 사건을 다시 취재할 것을 제안한다.
처음에는 그저 한 명의 사제가 저지른 범죄처럼 보였으나, 스포트라이트팀은 추적을 이어갈수록 사건의 범위가 훨씬 넓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비슷한 범죄를 여러 사제가 저질렀고, 교회는 이들을 처벌하는 대신 다른 본당으로 옮기며 문제를 은폐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기자들이 찾아낸 진실은 지금껏 그 누구도 몰랐던 비밀이 아니었다. 피해자들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고자 했고, 변호사들은 교회와 합의를 진행했으며, 보스턴 글로브에도 관련 제보와 기사가 남아 있었다. 다만 각각의 사실이 개별적인 사건으로 흩어져 있었을 뿐이다. 스포트라이트팀은 증언과 기록을 대조하며 교회가 사제들의 범죄를 조직적으로 묵인하고 은폐해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언론의 역할은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는 데만 있지 않다. 흩어진 사실을 연결해 그 의미를 드러내는 것 역시 보도의 몫인 것이다.
기자들은 취재 도중 여러 차례 기사를 내보낼 기회를 얻는다. 확인된 사제들의 이름만 먼저 보도할 수도 있었고, 경쟁지가 사건을 알아차린 뒤에는 서둘러 취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는 압박도 커졌다. 그럼에도 이들은 곧바로 기사를 내지 않고, 교회가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했다는 사실까지 증명해내려 한다.
빠른 보도가 언제나 좋은 보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전모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서둘러 보도하면, 조직의 책임은 가려진 채 사건이 일부 개인의 일탈로 축소될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팀이 오랜 시간 증언과 자료를 쌓아 올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가장 먼저 기사를 내는 일이 아닌,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도록 사건을 충분히 입증하는 일이었다.
영화가 사건을 보여주는 태도 역시 이들의 취재 방식과 닮아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피해 장면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거나 피해자들의 고통을 극적인 볼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영화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이를 통해 범죄가 오랫동안 반복될 수 있었던 배경을 살핀다. 사건의 무게를 전하면서도 피해자의 존엄을 지키는 것 역시 진실을 다루는 데 필요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기사가 보도된 뒤 스포트라이트팀의 사무실에는 전화가 쏟아진다. 전화를 걸어온 이들은 자신 역시 같은 피해를 겪었다고 말한다. 보도만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사는 더 많은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세상에 꺼내놓을 수 있는 통로를 연다.
한 사람의 고통이 그 사람만의 불행으로 남지 않도록 하는 것. 어쩌면 보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적인 의미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