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 K와 각자의 20대 중반 시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느꼈던 감정, 힘들었던 일들, 최소 40대가 될 때까지는 기억할 듯한 도파민(?) 가득한 사건들을 주고받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요즘 들어 이런 ‘옛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늘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하나는 생각보다 과거의 나는 상당히 어렸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람은 영원히 철들지 못하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은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면의 성숙은 언제 이루어질까? 당장 떠올려보자면,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처음으로 내 힘으로 돈을 벌었을 때, 해결해야하는 어떤 문제나 갈등이 닥쳤을 때, 겪어본 적 없는 유형의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때, 혹은 부모님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을 때가 될 수 있겠다. 이런 순간을 통해 겪는 감정과 경험들은 인생의 예방주사가 되어 미래의 나를 위한 ‘성숙함’이라는 항체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 최근 개인의 시선에서 성숙의 과정을 보여주는 한 편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제목은 ‘Jone, Sometimes (요네, 때때로)’*, BFI(British Film Institute, 영국 영화 협회)에서 개최한 퀴어 영화제 ‘2026 BFI Flare’에서도 소개되었다. 영화는 스페인의 한 소도시 빌바오(Bilbao)**에 사는 스무 살 여성 요네가 젊음을 즐기는 20대와 가족을 보살펴야 하는 가장의 역할 사이에서 겪는 내적 갈등을 다룬다.
*’Jone, Sometimes’는 스페인 작품으로, 원제목은 ‘Jone, batzuetan’이다. 각본가에 따르면 별도의 영문 제목 없이 스페인어를 직역했다고 한다.
**각본가의 인터뷰에 따르면 예산과 행정적 절차 문제로 일부 장면은 실제 빌바오의 여름 축제인 'Aste Nagusia' 기간 동안 촬영되었다고 한다. 빌바오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으로도 유명하니 스페인과 현대미술을 좋아한다면 당일치기 방문을 추천한다.
Jone, Sometimes
*
지금부터 영화 ‘Jone, Sometimes’의
스포일러가 다뤄집니다.
영화는 요네의 두 가지 일상을 보여준다. 하나는 해마다 돌아오는 고향의 여름 축제를 즐기는 젊은이 요네, 다른 하나는 어린 여동생과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가장 요네다. 요네의 가족은 어릴 적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 홀로 자매를 길러 왔다. 그러나 요네의 아버지는 그녀가 성인이 된 이후 파킨슨병이 악화되어 일을 그만두고 자매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때로는 아버지와 병원에 다니며 가장의 부담을 느끼기도 하지만, 친구들과 일을 하며 축제를 준비하고 귀여운 여동생과 즐거운 일상을 보내며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축제가 시작되며 거리마다 음악이 들려오고, 해가 진 밤에도 여름의 열기는 가시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요네는 우연히 축제에서 올가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20대 후반의 올가는 마드리드에서 왔다. 빌바오에는 어머니의 작업실이 있는데, 여름마다 자리를 비워 그녀가 대신 머문다. 빌바오를 떠나본 적 없는 요네는 이 대도시 출신의 성숙한 여성에게 빠른 속도로 빠져든다. 달아오른 축제의 분위기는 요네를 아무 걱정 없이 춤추고 사랑하는 젊은이로 만들었다. 가끔은 그것이 가족에 대한 책임감의 도피처가 되기도 했다. 그 사이 아버지의 병세는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요네는 올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 아버지가 골절 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데이트를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늦게 연락을 받았던 자신을 자책하며 절망에 빠진다. 골절 사고는 요네의 아버지에게도 어떠한 결심을 하게 된 사건이었다. 평생 가정의 든든한 지붕으로 살아왔던 이가 한순간에 집안일은커녕 거동도 온전치 못한 생활을 하게 된 탓일까. 그는 삶의 마지막을 존엄사로 마무리짓기로 결심하며 요네에게 절차에 필요한 주치의 상담에 함께해 줄 것을 부탁한다.
요네는 아버지와의 이별이 가까운 미래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축제에서 격렬하게 풀어내려 했다. 더 많은 술을 마셨고, 더 늦게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았으며, 올가에게 더 많은 사랑을 요구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해 여름의 축제도, 올가도, 아버지도 그녀를 떠나가는 시간이 오기 마련이었다.
축제가 끝나고, 결국 요네는 아버지와 함께 존엄사 절차를 위한 주치의 상담에 참석하게 된다. 상담실에는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과 그들의 보호자가 있었다. 서로가 차례대로 자신의 이름과 그곳에 오게 된 계기를 소개했고, 마침내 요네의 차례가 되었다. 요네는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고, 영화는 여기서 끝이 난다.
축제가 끝나고 남아있는 것들
스페인은 2021년부터 환자가 스스로 마지막을 정하는 것을 법적으로 허가했다. 절차는 두 차례의 주치의 상담, 주치의가 아닌 외부 의사의 검토, 지역 위원회의 승인으로 이루어지며, 환자는 이 과정 중 어느 때라도 존엄사를 포기할 수 있다. 따라서 요네의 아버지가 이 모든 절차를 거쳐 스스로의 마지막을 결정할지, 이를 중단하고 가족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지는 열린 결말로 남아 있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요네와 아버지의 이별 여부가 아니라, 그 이후 그녀가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가이다. 영화에서는 그 변화의 핵심으로 ‘소통’을 제시한다. 영화 초반, 어느 날 요네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일기에는 요네의 탄생이 그에게 가져다 준 변화와 행복, 아버지로서 요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다짐, 떠나버린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일기장은 요네가 아버지의 시선에서 그의 상황을 이해할 계기를 마련한다. 앞으로 그녀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딸들과의 이별을 결심하게 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가가면서도, 딸로서 아버지를 붙잡으며 대화를 이어갈 것이다. 축제는 끝났지만 부녀의 소통은 시작되었다.
‘Jone, Sometimes’는 왜 퀴어 영화제에 소개되었는가
앞서 소개했듯이 ‘Jone, Sometimes’는 BFI Flare라는 런던 퀴어 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다. 다만, 영화를 직접 보았거나 이 리뷰를 접했다면 한 가지 의문을 떠올릴 수도 있다. 가족애와 내적 성장이 주제인 영화가 주인공이 동성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퀴어 영화로 분류될 수 있을까?
영화에서 다뤄지는 핵심적인 관계는 요네와 그녀의 아버지였다. 사건의 전개 또한 요네와 올가의 사랑보다는 요네 자체의 내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심지어 올가는 영화 후반부에서 가족의 문제를 연인과의 시간으로 달래려는 요네의 미숙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축제와 함께 빌바오를 떠난 인물이다. 즉, 요네나 올가가 남성 혹은 트랜스젠더로 등장하더라도 영화의 큰 흐름과 핵심 메시지는 유지되었을 것이다. 특히 결말에서 요네가 아버지와의 갈등을 사랑의 힘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감당하게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Jone, Sometimes’는 퀴어의 사랑, 퀴어의 문제의식을 통해 그 대표성을 강조하는 대신 그 또한 다양한 삶의 형태 중 하나일 뿐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어떠한 인물의 성적 지향성이 사건의 전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그 서사가 반드시 전통적인 성 관념에 기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특히 영화는 질풍노도의 20대 초반 청년이 한 번쯤은 빠질 법한 성숙한 매력의 신비로운 연상에게 자연스럽게 퀴어의 캐릭터성을 부여하여 요네와 올가의 관계가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성적 지향성과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공감할 가족애와 젊은 날의 사랑이라는 인간사를 주제로 영화제가 퀴어를 다루는 방식의 범주를 확장한 것이다.
Sometimes I would, sometimes I wouldn’t
“Would you go to Madrid? Anywhere.”
(너는 마드리드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Sometimes I would, sometimes I wouldn’t.”
(때때로 그렇지만, 때때로 아니야.)
다른 도시에서 살아볼 생각이 있냐는 올가의 질문에 대한 요네의 대답이다. 영화 초반부는 가끔은 요네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뒤로한 채 떠나고 싶어하는 ‘would’에 무게가 실리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가 느끼는 가족의 소중함이 부각되며 이야기의 전개는 ‘wouldn’t’을 중심으로 고조된다.
'때때로’. 영화는 요네의 내면을, 우리 모두가 성숙해지는 과정을 이 단어로 설명한다. 영화 속 빌바오의 축제와 가족 간의 이별처럼 모든 좋고 나쁜 시간에는 끝이 있다. 우리는 언젠가 끝을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받아들이고, 때로는 견디며 그 시간을 지나간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은 결국 우리 안에 ‘성숙’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스틸컷 출처: British Film Institute, 영국 영화 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