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된 직후, 내 등을 떠밀면서도 내가 서 있도록 등을 받쳐주던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가 사라지며 공허하고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음에도 이제는 정말 한 명의 사람으로서 제 구실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현듯 불안에 휩싸이기도 했다. 서울 소재 대학으로의 진학은 큰 성취감과 함께 압박감을 안겨주었다.
이때 나의 안식처가 되어 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미술관과 영화관이었다. 미술관과 영화관을 찾을 때만큼은 군중 속에서 고독한 개인이 되며 해방감을 느꼈고, 미래를 상상할 때의 뿌연 시야가 아닌 맑은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느꼈던, 내 영혼이 내 몸에 갇혀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우울감도 예술과 만날 때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바람부는날이면그림속으로] 앞표지.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03155827_utttmnkv.jpg)
⟪바람이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를 읽으며 느꼈던 강한 공감은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와 공명하며 일어난 작용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현실과 동떨어져 예술을 예술사 안에서의 가치를 중심으로 논하겠지만, 내게 예술은 언제나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언어로 번역되곤 했다. 책의 저자는 자신에 대한 고백을 바탕으로 예술가와 그들의 예술과의 접점을 발견한다. 그 진솔한 이야기와 그림에 얽힌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만나고 삶에 대한 성찰과 용기의 메시지로 봉합되는 각각의 챕터는, 말 그대로 삶에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의 도슨트였다.
말 한마디보다 고요한 그림이 더 큰 공감으로 다가오는 순간
저자는 각각의 챕터를 '안개 낀 아침', '폭풍 치는 날', '그리고, 해가 뜬다'와 같이 우리의 마음을 날씨로 묘사한다. 각 챕터는 대부분 각각의 이유로 상처받은 영혼과, 그에 대한 처방으로서 그림을 함께 제시한다. 르네 마그리트, 이중섭, 베르트 모리조,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앙리 루소, 클로드 모네 등 거장의 생애를 한 명 한 명의 인간으로 조명하는 방식은 이때 그림이 건네는 위로를 한층 와 닿게 만든다.
저자 허나영은 한 명의 연구자, 한 아이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어느 부부의 딸, 그리고 한 명의 여성으로서 살아가고 여러 페르소나가 교차할 때 느꼈던 심경을 책에 담아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지닌 정체성 중 하나라도 지니거나 간접적으로 공감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면 마음 깊이 와 닿는 이야기가 무척 많다.
가령 저자는 멕시코의 국민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로서 프리다 칼로가 결혼 후 겪었던 강렬한 애증을, 가정을 이룬 후의 자신의 모습과 교차해서 본다. 세관원이었지만 은퇴 후 자신의 진정한 꿈이었던 화가의 꿈을 꿋꿋이 펼친 앙리 루소의 삶은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경험으로 이겨내려 애쓰는 저자 자신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그 외에도 베르트 모리조,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등 여러 여성 화가의 작품과 그들의 삶과 저자 자신, 나아가서는 우리의 삶과 겹쳐 보며 우리의 인생과 예술의 의미 있는 접점을 부지런히 찾아낸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7장 '눈 내리는 날'에서 파울라 모더존-베커의 삶을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이어 장자가 말한 오상아(俉喪我)를 말하며,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고통에서 자신을 버리고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삶의 자세를 언급한다. 예술가로서의 삶과 어머니로서의 삶이 양립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던 시대에서 둘 모두를 향한 강한 열망을 포기하지 못했고, 꿈이 이뤄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 세상을 떠난 파울라의 삶과 그의 예술은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다워 보였다.
사실 모더존-베커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는 아니다. 문화적 중심지에서 벗어난 독일 출신이고, 여성 작가이며, 남긴 작품 수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미술사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 작업했고 무엇보다 여성 작가 최초로 '누드 자화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남성 중심으로 서술되어온 미술사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창작의 주체가 아니라 감상의 대상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누드화는 남성 화가가 누드 모델로 삼은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 최근 바디프로필 유행처럼 특정 신체를 강조하는 문화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실제 일반적인 여성의 몸, 특히 출산과 육아를 겪은 어머니의 몸은 그 자연스러움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 파울라는 바로 그러한 지점을 포착해 그림에 담았다. 어쩌면 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그 몸에 투영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여전히 자아실현과 어머니가 되고 싶은 욕망이 팽팽히 맞서는 중이었다.
- ⟪바람이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 p.186-188
파울라 모더존-베커가 특히 기억에 오래 남는 예술가인 이유는 파울라가 자신의 삶의 방향타를 직접 잡으려 애썼지만, 결국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는 닿지도 못한 채 흘러가기도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에 깊이 공감했고, 동시에 그가 거시적인 관점에서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데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고흐나 이중섭을 비롯해 활동하던 당대에 큰 명성이나 부를 거머쥐지 못했던 화가가 아니라 당대의 슈퍼스타였던 예술가들의 삶만 보면 마치 성공은 의지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실상은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예술가들 전부가 반드시 자기확신이나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활동한 것은 아니며,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소위 말하는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기의 사회상, 그 중에서도 요구되는 성역할이나 유행하던 풍조 등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을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체념과 수용은 다른 개념이다. 조금 냉정하게 바라보자면 눈앞의 현실을 이겨낸다는 것보다도 저항한다는 것이 더 현재의 사실에 가까운 표현이고, 이겨낸다는 것은 결과 내지는 평가에 가깝다.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마주한 현실의 대부분은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아갈 수가 없다.
자신이 처한 조건이 정하는 한계에서 벗어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울라는 그에 저항하려 했고 몇 안 되는 작품 중에서도 예술사에 분명한 한 발자국의 진보를 만들어냈다. 개인의 행복을 쟁취하고자 했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을 지언정 파울라의 삶은 중요한 의미로 남았다. 살아가며 점점 노력하는 일에도 지쳐가고, 혹은 너무 오래 품고 있어 쉬이 놓을 수 없는 꿈이 아깝게 느껴질 때 과거를 버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도할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설령 나 자신이 알아채지 못해도 분명히 변화는 생겨나고 있다는 걸 믿고 싶어졌다.
"촛불처럼 흔들렸던 아이에게" 바치는 ⟪바람이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는 저자 자신과 흔들리며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우리 삶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마음이 어둑해졌을 때는 타인의 위로와 걱정마저 위선으로 느껴지는 법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진위도 의심하게 될 때 예술가 자신의 생애와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 예상치 못하게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숨기고 싶었던 감정과 말로 전부 터놓기에는 예술가의 긍지가 허락하지 않는 속내마저 작품에서는 드러나기 때문이다. 말뿐인 위로보다도 자신과 같은 상처를 지닌 이의 존재가 더 위안이 되듯이, 예술이 우리에게 다정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바람이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를 읽으면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