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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삶의 주홍글씨 - 알파

마지막 알파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것은 이 질문에 답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나중에는 알파의 표정을 다르게 읽을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by 조수빈 에디터
2026.09.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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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알파를 보고 난 뒤

      개인적인 후기와 스포가 등장합니다.

       

       

      나는 코로나 세대에 속한다. 코로나 시대에 취업했고 당시 다니던 회사의 첫 공식 코로나 확진자였다. 전날 나와 밥을 먹었던 사람들은 모조리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그때 처음으로 내 자신이 바이러스가 되는 듯한 경험을 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죄책감과 두려움. 지금이야 코로나를 독감과 비슷한 호흡기 감염병으로 받아들이지만, 당시에는 감염 자체만큼이나 '감염자'라는 낙인이 무서웠다.

       

      그런 측면에서 알파가 자신의 몸에 새겨진 정체 모를 타투 'A'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태도는 인상적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내 기억에도 없는 투박한 글자가 새겨졌는데도 알파는 무심하다. 얼굴을 찌푸리는 순간은 상처가 아플 때뿐이다.

       

      알파의 태도가 달라지는 건 주변의 시선이 공격으로 변하면서부터다. 그때부터 카메라 역시 알파에게 폭력적으로 변한다. 그저 덧난 상처가 간지러워 긁었을 뿐인데 피가 줄줄 흐르고 병에 걸렸다며 시작된 괴롭힘을 피해 도망치다 찢어진 머리에서 나온 피는 마치 상어에게 물린 것처럼 알파를 둘러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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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제외한 모두가 수영장에서 빠져나와 나를 괴물처럼 바라보는 순간. 그 시선만으로도 알파가 자신의 '비정상'을 인식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냥 상처일 뿐이라고. 난 아무것도 '확진'받지 않았어.

       

      영화에는 수많은 a가 등장한다. 알파, 아드리앙, 아민. 등장인물의 이름부터 주홍글씨를 떠올리게 하는 알파의 몸에 새겨진 a, 퍼진 바이러스의 특징과 에이즈와의 공통점까지.

       

      알파는 그리스 문자의 첫 번째 글자다. 그리고 알파는 학교에서 가장 먼저 ‘병에 걸린 사람’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알파가 실제로 감염됐는지는 결국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병보다 먼저 퍼지는 것은 공포이고, 공포는 한 사람의 몸에 낙인을 찍는다. 감염 여부가 확인되기도 전에 사람들은 이미 알파를 감염자로 만들어버린다. 삶의 주홍글씨란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는다. 영화는 여성 화자인 알파, 그리고 퀴어로 추정되는 선생님을 각각 다른 낙인의 피해자로 조명한다. 그 둘은 별도로 이야기를 나누진 않아도 서로를 위해 연대하는 눈빛을 보내고 비난하는 주체에서 빠져 있다. 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진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이 부분 정도가 아쉬웠다.

       

      그리고 알파의 주홍글씨가 시작되는 순간 아민이 나타난다. 엄마가 목격한 최초의 희생자. 엄마의 또다른 알파(처음).

       

      아민은 알파의 삼촌이자 약물중독자다. 어느 순간 알파의 집에 들어와 함께 살기 시작한 그의 이야기는 두 개의 시간으로 갈라진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는 의도적으로 뭉그러져 있고,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단서는 엄마의 머리 모양이다. 현재의 엄마는 생머리이고, 과거의 엄마는 꼬불꼬불한 머리를 하고 있다. 한 시간 속 아민은 약물중독자로, 또 다른 시간 속 아민은 전염병에 걸려 서서히 석고화되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영화의 끄트머리에 도착하면 어쩌면 이 이야기가 처음부터 알파의 시점도, 아민의 시점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알파의 엄마이자 아민의 누나다. 영화에서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이 모든 역사와 기억의 관찰자. 사랑으로 모든 것을 구하려고 했던 가장 안타까운 생존자.

       

      그렇게 생각하면 알파의 낙인이 시작되는 순간 나타난 아민 역시 다르게 보인다. 아민은 이미 알파가 어렸을 때 죽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알파에게 벌어진 일이 오래전 죽어버린 아민을 다시 불러낸 것은 아닐까. 딸의 몸에 찍힌 낙인을 바라보면서 엄마는 자신이 끝내 구하지 못했던 동생의 몸을 다시 떠올린다.

       

      혹은 그것이 엄마 한 사람만의 기억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어린 알파 역시 삼촌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했다. 삼촌의 죽음을 도울 수밖에 없었던 어린 알파의 기억 속에 남은 죄책감과 두려움이 아민을 다시 이 붉은 바람의 세계로 불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가 과거와 현재를 뒤섞듯 아민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억 역시 서로 뒤엉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끝난 줄 알았던 기억은 다른 사람의 몸에서 다시 시작되고, 과거의 공포와 낙인은 형태만 바꾼 채 현재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 영화의 또다른 대주제가 사랑인 것은 그렇게 길게 설명이 필요한 일이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사랑은 가끔 이기적으로 군다. 나는 나를 위해 너를 살렸고 나는 나와 너를 위해 죽고자 하는데 누가 맞다고 할 것인지. 마지막 알파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것은 이 질문에 답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나중에는 알파의 표정을 다르게 읽을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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