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희망은 복잡한 열매 [도서]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알에이치코리아, 2015)

by 차승환 에디터
2026.10.27 12:18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20261027122150_1cf051f35843.jpg

       


      흔들림은 살아있는 것들의 숙명이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에 의해서, 또는 내면에서 일렁이는 정동에 의해서, 살아있는 한 우리는 필연적으로 흔들리게 된다. 이처럼 삶에서 흔들림을 지극히 정상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규정할 때, 또 그 진동이 지나가면 우리를 더 굳건히 만든다고 할 때, 안팎으로 우리를 흔드는 모든 일들은 조건부 축복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흔들림의 조건을 굳건히 지키는 일일 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알에이치코리아, 2015)를 읽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흔들리며 피는 꽃」 중에서

              

       

      ‘흔들림’을 삶의 당연한 모습으로 덤덤히 받아들이더니 내처 그것을 거룩함으로까지 승화시킨 시다. 시인에게 흔들림이란 “줄기를 곧게” 세우고 ‘피워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일들 중 하나다. 생명이 자라고 피어나는 과정 중에 흔들릴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게 아니라 흔들림 그 자체가 예외 없는 성장의 조건이라는 것.(“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모든 꽃은 도저히 피어날 수 없다는 것이 시인의 확고한 인식이다. 경험주의적 추론에 의하면 이것은 분명한 가정에 불과하지만(‘안락한 온실에서 태어나 흔들리지 않고 피어난 꽃이 있을 수 있다’), 시인이 은밀히 한 문장을 덧붙여 그 영역을 사랑으로 확대하는 순간 분명한 법칙이 된다.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은 분명히 없다는 것. 우리는 알고 있다. 애초에 모든 사랑은 필연적으로 흔들림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거짓일 수 없는 문장을 든든히 받쳐놓으면 흔들림에 관한 논의는 삶 전체에 대하여 유효해진다. 흔들림을 일으키는 것들에 대한 관용, 예컨대 “바람이 오면 / 오는 대로 두었다가 / 가게 하세요”(「바람이 오면」) 같은 마음이 우러나올 수 있는 것. 때때로 찾아오는 아픔도 “살다간 가겠지요” 기다리며 버틸 수 있는 힘은 모든 흔들림에 끝이 있다는 믿음에 기반을 둔다. 바람처럼, 그리움처럼, 세월처럼 모든 것은 간다. 정직한 문장이지만 만약 이것이 지금 흔들리는 우리에게 잠깐의 위로 이상이 될 수 없다면, 그것은 막연한 기다림의 시간이 부작위의 불안을 다시 자아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함으로써 불안하고, 하지 않음(못함)으로써 초조해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희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 「희망의 바깥은 없다」 중에서

              

       

      시인은 초조해하는 우리의 마음 위에 한 겹의 용기를 더한다. 하염없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위태롭게 매달려 흔들림이 지나가길 기다리고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희망은 자라고 있다는 것. 희망은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서, 지금 흔들리고 있을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흔들림은 먼저 절망을 드러내 균열시키고, 그렇게 균열된 절망이 내면에서 무르익을 때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이 태어난다. 흔들림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막연한 인내를 기르는 삭막한 훈련이 아니라, 버텨낸 균열의 정확한 양만큼 희망을 산출하는 잉태의 과정이라는 것. 흔들림은 희망을 만드는 능동적 ‘견딤’의 행위다. 흔들림을 견디는 한 우리는 모두 희망의 출산 가능성을 품은 산모다. 그러나 흔들림이 모든 순간마다 삶의 긍정이자 희망일 수는 없다. 흔들림으로 희망을 산출하는 생화학적 과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엄격히 통제된 조건이 필요할 테다.

       


      아직 산벚나무 꽃은 피지 않았지만

      개울물 흘러내리는 소리 들으며

      가지마다 살갗에 화색이 도는 게 보인다

      나무는 희망에 대하여 과장하지 않았지만

      절망을 만나서도 작아지지 않았다

      묵묵히 그것들의 한복판을 지나왔을 뿐이다

      겨울에 대하여

      또 봄이 오는 소리에 대하여

      호들갑 떨지 않았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경박해지지 않고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요란하지 않았다

      묵묵히 묵묵히 걸어갈 줄 알았다

      절망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듯

      희망도 무서워할 줄 알면서


      - 「산벚나무」 전문

       

       

      “가지마다 살갗에 화색이 도는” 나무가 있다. 우리는 세찬 겨울바람을 견뎌낸 그것이 곧 꽃을 피워낼 것을 알지만, 정작 나무는 제 안에서 태어날 “희망에 대하여 과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희망에 대하여 침묵하는 체념의 태도가 아니라 고요하게 응답하는 확신의 태도다. 성급한 초조함(“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경박해지지 않고”)도, 다급한 확정(“길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요란하지 않았다”)도 없이, 그저 “절망을 만나서도 작아지지” 않는 담력으로 “묵묵히 묵묵히” 흔들리는 일. “절망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을 우리는 용기라고 하고, “희망도 무서워할 줄” 아는 일을 우리는 겸손이라고 한다. 드넓고 두려운 세상에 대하여 용기와 겸손은 우리를 지탱해줄 든든한 뿌리다. 그 뿌리를 먼저 단단히 내린 후에야 우리는 세차게 흔들리면서도 뽑혀나가지 않고 희망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이 희망적 흔들림의 조건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는 것처럼, 뿌리 없이 열매 맺는 나무도 없다. 희망은 단단한 뿌리에서 줄기를 세우고 흔들리며 꽃을 피운 뒤에야 수확하는 복잡한 열매다.

       

       

       

      컬처리스트 명함.jpg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차승환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Opinion] '조커'의 세 가지 배신 [영화]
      2. 02 [Review] 청춘이 가면 오는 목소리 - 바람으로의 여행
      3. 03 [Opinion] 너무 가혹한 성장통 [영화]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