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희망의 생존방식 [도서/문학]

김복희 시인의 『희망은 사랑을 한다』 , 죽음의 근처에서 분리되는 화자들

by 최승윤 에디터
2026.10.23 14:31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에게는 ‘네가 사랑을 하면 좋겠어.’라는 말이 자주 따라붙는다. 삶이 더 살 만해져서 네가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사랑의 기원 속에 담겨 있다.

       

      희망은 사랑을 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불씨를 꺼뜨리지 않은 희망은 기대를 만들고 내일을 만든다. 김복희 시인의 『희망은 사랑을 한다』 속 화자들은 죽음과 가까이에 있다. 이 죽음의 세계는 질병이나 자연재해가 아니라 화자의 안에서 파생된다. 화자는 어쩐지 물질성이 느껴지지 않는 존재로 보이기도 하고, 여러 명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를 분리하는 것도, 나를 죽이는 것도, 그런 나를 다시 살리는 것도 전부 자신이다. 이러한 어둠 가까이에서 희망이 어떻게 살아남아있는지를 ‘희망은 사랑을 하는’ 시들이 보여 준다.

       

       

       

      화자: 분리와 죽음

       

      「귀신 하기」는 시집의 첫 시로 수록되어 있다. 좋아하는 것이 없는 이의 삶은 기대가 줄어들기에 내일을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사람 앞에 정기적으로 처방받은 약봉투가 쌓이는 그림은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그러나 화자는 상당히 애쓰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복숭아 귀신, 곶감 귀신처럼 무언가를 많이 좋아하면 그 단어 뒤에 귀신이 붙는다.

       

      애를 쓴다는 건 좋아하는 마음에서 온다. 그렇게 ‘기껏’ 좋아한 대상이 인간이다. ‘기껏’이라는 말에는 아름답고 순수할 수 있는 것들을 뒤로하고, 상처를 주고 보잘것없는 인간을 하필 사랑하게 된 안타까움이 깔렸다. 하지만 이 집에서는 어쩐지 화자 이외의 거주인은 보이지 않고 귀신은 화자와 겹쳐보인다. 이로써 한집에 있는 귀신이 화자와 동일한 인물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화자는 ‘퇴근하면서 가끔 술이나 초콜릿을 가져다주기도’ 한다고 말하는데, 자신이 물건을 사는 일을 마치 다른 존재에게 해주는 행동으로 표현한다. 나지만 내가 아닌 듯한,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듯한 인상은 이 시를 포함하여 여러 시편에서 나타난다. 바로 다음에 실린 「지수」 역시 새의 이름이지만 자신 같기도 딸 같기도 한 혼란을 일으키며 지수의 존재를 특정하지 않는다. 누구든 지수가 될 수 있게 한다. 혼자 사는 집에서는 이름이 불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따라서 ‘옆집에서 기르는 나를 나만큼 생각하면 좋겠다.’는 문장과 더불어 이 호명은 나를 불러 주고 신경 써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힌다. 이는 주변인의 부재를 부각한다. 함께하는 존재가 등장하는 시들은 이후 2부에서 여러 편 더 수록되어있다.

       

      화자는 또 ‘귀신이 안 되려고 노력하는 모양이 안됐’어 한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은 인간이 줄 수 있는 상처와 더러움을 알기에 좋아하는 마음을 경계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제목인 ‘귀신 하기’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한다는 뜻이 된다. 또, 귀신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다른 이유는 죽지 않기 위해서다. 귀신은 인간이 죽고 난 후에 되는 존재이므로, 귀신이 되지 않겠다는 결심은 몸이 힘들어 약을 먹기 시작한 화자가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고 가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여러 명으로 등장하는 ‘나’, 그리고 죽음에 가까운 목소리는 「머리가 셋 달린 개」에서도 이어진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지옥문을 지키는 개의 머리는 세 개다. 머리가 많아서 생각도 많고 보이는 것도 많다. 입도 세 개니 말하고 싶은 욕구도 많을 테지만 이를 통제해야 하는 개의 마음은 고작 하나다. 개의 마음은 늘 바쁘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확장된 감각이 밀려드는 삶은 지옥처럼 고통스럽다.

       

      극도로 민감한 감각을 지닌 사람을 형상화한 개는 몇 개의 머리는 감각을 꺼 놓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화자의 삶은 지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입구를 지키는, 지옥 옆자리의 삶이다. 이는 시인의 쓰는 세계와 닿아 있다. 지옥의 문틈에는 종이가 끼워져 있다. 따라서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아 틈으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매 초마다 열린 틈으로 무수한 감각이 들어와 오감을 느끼고, 그중 가장 먼저 본 머리가 먹는 것을 시와 피부라고 부른다. 민첩하고 민감하며 당연하게 (피부처럼) 수용되는 감각들, 그 첫 번째 포착은 시인에게 시가 되는 순간이다.

       

      이 세계는 「sober companion-숨은 낭독자」에서 쓰는 세계와도 닿아 있다. 화자(혹은 나)를 타자화하기도, 다른 사람처럼 위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써낸 이야기를 읽은 독자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독자는 나와 닮았고 나처럼 보이면서, 내가 써낸 글의 생각을 자신의 삶으로 가져가 완성해 주기도 한다.

       

       

      IMG_0623.jpg

       

       

      죽음을 생각하던 내가 생을 감각하는 시 「종모법」에는 먹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화자가 나온다. 더럽다고 불리워지는 음식도 화자는 계속 먹는다. 생의 재미를 잃은 사람들은 먹는 것, 특히 맛있고 자극적인 맛에 집착하게 된다. 공허한 기분을 채우는 방법 중 하나로 꾸역꾸역 속을 음식으로 채운다. 제목 ‘종모법’은 마치 엄마의 삶을 따라가게 되는 딸의 삶을 연상하게한다. 시 안에서는 큰 일을 겪고도 (먹고 자는 일처럼) 끊기지 않는 생의 신호와 법칙들로부터 ‘게걸스러움’을 느끼는 화자의 괴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앞서 「귀신 하기」에서는 삶의 내일을 꿈꾸기 위해 희망이 계속되어야 하고, 그 방식으로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집에서 희망이 직접적으로 거론되는 또 다른 시 「희망의 집에는 샤워볼이 있다」에서 화자는 희망의 집으로 간다. 이곳에는 왜 다른 물건도 아니고 샤워볼이 놓였을까. 그리고 화자는 몇 개의 물건들 중에서도 왜 샤워볼에 주목을 할까.

       

      ‘희망은 물로만 저를 닦는데 / 희망의 집에 온 이들은 샤워볼을 쓴다’. 희망은 바디워시로 거품을 내서 몸을 구석구석 닦을 만큼의 시간과 정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물이면 된다. 화자는 희망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친구’라고 소개하며,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친근하게 만든다. 또한 희망의 집에서는 물건이 여기저기 놓이고, 그렇게 놓인 자리가 제자리다. 틀에 매여 있지 않아 자유롭다. 혹은 ‘씹어서 뱉어놓은 죽처럼’ 대놓고 엉망인 모습으로 희망은 보이기도 한다. 이 시에서 희망은, 거창한 인식의 거품을 걷어내고 접근하기 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희망은 나중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곡식’이 될 수 있도록 어디에나 놓인다. 대단해야할 것 같은 부담을 내려놓고 어디서든 자라날 수 있는 생명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샤워볼이라는 소재를 시에 중심적으로 녹여낸 점이 인상깊다. 누군가 놓고 간 ‘회색 샤워볼’은 물을 머금을 수 있고, 무거워져 아래로 축 늘어뜨려질 수도 있다. 이러한 특성은 온몸으로 슬픔을 머금은 채 살아가는 사람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슬픔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바닥으로 끌어당기지만 그렇게 되어서도 쓸모를 위해 움직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

       

      시의 화자는 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누구도 나보다 강할 수 없다’는 강한 긍정은, 오히려 강한 부정으로 다가온다. 아무도 없기 때문에 희망의 집으로 갈 수 있었던 화자는 사실 누구보다 겁이 많은 사람이다. ‘A를 두려워하면 A가 된다’는 강박적인 법칙처럼, 자신을 강하게 긍정함으로써 내면에서 튀어나오는 반발을 이용해 희망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가볍게 흐르는 물 대신 축축하게 물을 머금은 샤워볼은 화자의 내면상태를 형상화한 것일지 모른다.

       

      결국 이 시집이 말하는 희망은 사랑을 멈추지 않는 일이다. 그 사랑이 꺼지지 않을 때 내일이 시작된다. 시집은 사랑이 시작되는 곳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최승윤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Opinion] 버릴 수 없는 몸과 그 공포에 대하여 [도서/문학]
      2. 02 [Review] 연필 끝에 지우개가 달린 이유 - 플리백
      3. 03 [Opinion] 이름에 ‘나’가 두 번 들어가지만 여전히 나를 잘 모르는 세상의 모든 나나들, 그리고 우리의 나날들 [도서/문학]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