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허수경의 시를 읽다 [문학]

글 입력 2022.10.0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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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 허수경은 1964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태어났다. 경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허수경은 1987년 『실천문학』에서 「땡볕」 외 4편의 시로 등단했다. 허수경 시인은 모든 일상의 언어를 시라고 생각하여 시인들이 모든 일상 언어가 시가 되는 상태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즉, 시인은 일상어가 시어로 변하는 과정 자체를 탐구해야 한다. 허수경은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에서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젊은 시인들과 젊은 노점상들과 젊은 노동자들에게 아부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라 말했다.

 

시인의 시는 비애 가운데서도 자기 연민에 빠지기보다는, 오히려 비애를 감각과 정면으로 맞이하며 ‘취기 가득한 유랑가수의 목소리’ 같다는 평을 받았다. 시집으로는 『슬플 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등이 있다. 독일에 거주하며 고대 동방고고학을 공부했으며 2018년 10월 위암으로 타계했다.

 

 

 

흐르는 마음과 존재와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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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혼자 가는 먼 집』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시어는 ‘마음’이다. ‘환멸’, ‘비천함’, ‘심란’과 같은 단어들과 함께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직접적인 단어로 표현한다. 특히나 ‘사랑’은 『혼자 가는 먼 집』의 핵심이다. 시인의 말에서부터 시인은 “사랑은 나를 회전시킬까, 나는 사랑을 회전시킬 수 있을까, 회전은 무엇인가, 사랑인가.”라며 사랑을 묻는다. 「공터의 사랑」과 「울고 있는 가수」에서 사랑은 그대로 멈춰 있다가, 남에게 갔다가, 혹은 세월로 간다. 사랑이 남긴 자리는 “환하고 아프”다. 한때의 ‘맹세’는 우리를 배반했지만, 허수경의 시는 사랑을 원망하지 않고 기꺼이 슬퍼한다. 오히려 아픈 자리를 더듬는다.

 

「사랑의 不善」은 시인의 ‘마음’과 ‘사랑’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람의 몸에 마음이 있지 않고 오히려 마음에 몸이 들어온다고 말한다. 마음에 들어간 몸은 팔과 다리가 생기고, ‘몸의 마음’에 다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그의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속 「달이 걸어오는 밤」과 「그때 달은」에서도 등장한다. 「달이 걸어오는 밤」에서는 외부의 달을 ‘내’ 속으로 삼키지만, 「그때 달은」에서는 ‘내’ 속에서 달이 돋아나 외부로 나간다. 그러나 시인의 시는 이 모든 것을 바라만 보거나 흐르는 데로 둔다.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울고 있는 가수」가 노래하는 동안 세월이 흘러 「늙은 가수」가 된다. “나 버려진 거 같아 나한테마저도…….”라고 말하는 가수에게 내일이 있을까. 늙은 가수는 무정한 세월을 “사랑의 찬가”로 부른다.

 

「한 그루와 자전거」에서는 세월 속 ‘나무’와 ‘자전거’ 역시 멈추지 않는다. 나무와 자전거가 흐르는 것보다 멈추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기차는 간다」의 기차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차가 지나가면 ‘밤꽃’도 지고 ‘꽃자리’도 지지만, 모두 멈출 수 없다. 상실된 사랑도 떠나고 ‘나’만이 남아서 추억을 더듬는다.

 

흐르는 존재는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에서도 볼 수 있다. 『혼자 가는 먼 집』의 ‘울고 있는 가수’는 ‘늙은 가수’가 되어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에서는 자선 공연을 연다. 「늙은 새는 날아간다」에서 전쟁이 나고 아이들은 태어나지만, 늙은 새는 날아간다. 탱크가 길을 파고 비행기가 길을 막지만, 늙은 새의 비상은 멈출 수 없다. 그러나 흐르던 세월이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에서는 잠시 주춤거린다. 지나가는 세월도 가끔은 강으로 들어가지 못해 늙은 개처럼 서성거린다. 흘러가던 구름이 우연히 멈추기도 한다(「구름은 우연히 멈추고」). 그러나 본질은 같다. “그들은 추억을 불러놓고 추억을 같이 먹고” 혹은 “미움을 불러놓고 미움을 같이 먹었”다. 그들은 “우리가 언제나 그랬”다고 말한다. 남겨진 이들은, 미술관 앞에 있던 노인들은, 물 흐르듯 앉아 미술관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마치 지난 세기와 지금을 연결하는 흐름을 타고 있는 것처럼” 세월을 곱씹는다(「미술관 앞에 노인들은 물 흐르듯 앉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가들은 자라나



 

심장은 뛰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가장 뜨거운 성기가 된다. 그곳에서 가장 아픈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그 심장이 차가워질 때 아이들은 어디로 가서 태어날 별을 찾을까. 아직은 뛰고 있는 차가운 심장을 위하여 아주 오래된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시인의 말

 

 

허수경의 시에서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아가들은 자라나 아이가 된다. 아이들은 사랑받지 못한다. 온전히 자라지 못한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에서 아이는 고아이거나 여관에서 태어났다. 머리에 꽃을 꽂고 서성이는 여자아이들은 덜 자랐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돈을 벌기 어렵다. 그러나 “바람 사이 소금만이 어린 자궁에 들어가” 조그마한 아가가 자란다. (「여자아이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집을 묻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불안 같은 흰 꽃을 단 여자아이들은 “순한 시간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머리에 흰 꽃을 단 여자아이들은」). 거기서 태어난 아기들은 다시 아이가 될 것이다. 아이로 자란 아픈 아이들은 종종 달아난다. 밤이 오기도 전에 유리창이 깨지고, 아이는 막대기를 들고 달아난다. 얼굴에는 시퍼런 멍투성이다. 달아난 아이 앞에 검은 그림자가 보인다(「아이가 달아난다」). 그는 아마 어른이다. 뛰어서 뜨거워진 심장은 검은 그림자 앞에서 차가워질 것이다. 혹은 눈 덮인 마을에서 모닥불에 몸을 녹이다가 불길에 몸을 집어넣어 이미 지워진 지 오래일지도 모른다(「어느 눈 덮인 마을에 추운 아이 하나가」).

 

시인은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마지막 시 「사탕을 든 아이야」에서 직접적으로 아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사탕을 입에 넣고 울던 아이가 자기 과거이며, 자신은 미래의 사랑이자 미움이다. 여기서도 ‘방랑가수’는 빠지지 않는다. ‘나’는 아이의 미래이기 때문에 그를 이해한다. 남몰래 눈물을 삼키며 흐르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시인의 말처럼 아직 뛰고 있는 아이의 차가운 심장을 위한 아주 오래된 것이다.

 

 

 

반(反)전쟁시와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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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슬픔 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고향인 진주를 배경으로 전쟁과 삶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특히나 목차를 읽으면 진주 저물녘, 남해, 지리산, 남강 등의 지역이 등장한다) 허수경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통’은 이 시집에서부터 시작한다. 고통을 재현하는 허수경의 시에서 비극적 인식은 동반될 수밖에 없다. 이 비극적 인식은 각각의 시집에서 자신 혹은 타자의 고통으로 드러나며 기억이자 과거, 고향, 그리고 시로 나타난다.

 

시인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빌려 고통을 그려낸다. 전쟁으로 아버지는 “어깨를 들먹이고 울”거나 “배고픈 사내”가 되어 운다(「조선식 회상Ⅱ」). 어머니는 원폭으로 아이를 유산한다. “애미한테 죽은 아기의 태어나지 않은 꿈”을 말하며 조국의 피로 이어지는 삶을 말한다.(「원폭수첩 4」) 혹은 사천군에서 방사능에 피폭된 모녀는 천천히 죽어간다.(「원폭수첩 6」) 그들은 “난 아직 안죽었어요 조국처럼”(「원폭수첩 3」)이라고 외치지만, 조국은 별다른 말이 없다. 이처럼 이 시집에서는 슬픔을 거름으로 1980년대 시대성과 당시 사람들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에서 비슷한 감상을 다시 볼 수 있다. 시인은 ‘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이 시집을 썼으며 이들을 反전쟁시라고 부른다. 가깝거나 먼 전쟁의 시기에 씌어졌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를 “우리 시대의 한 표정으로 고정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허수경은 진주에서 서울로,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고대동방고고학을 공부하면서 다시 독특한 세계를 펼쳤다. 강제적으로 이주한 것이 아닌 “선택이었다 자발적인 유배였(「글로벌 블루스 2009」)”다. 그러나 자발적 유배자로서, 이방인으로서, 시인은 전쟁과 식민지화로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난민이나 가난한 이민자의 고통을 시로 구현하려고 했다. 이 때문에 허수경의 작품세계를 디아스포라 문학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울릉도산 취나물 북해산 조갯살 중국산 들기름

타이산 피쉬소스 알프스에서 온 소금 스페인산 마늘 이태리산 쌀

 

가스는 러시아에서 오고

취나믈 레시피는 모 요리 블로거의 것

 

독일 냄비에다 독일 밭에서 자란 유채기름을 두르고

완벽한 글로벌의 블루스를 준비한다

 

글로벌의 밭에서 바다에서 강에서 산에서 온 것들과

취나물 볶아서 잘 차려두고 완벽한 고향을 건설한다

 

고향을 건설하는 인간의 가장 완벽한 내면을 건설한다

완벽한 내면은 글로벌의 위장으로 내려간다

 

여기에다 외계의 별 한잔이면 글로벌의 블루스는 시작된다

고향의 입구는 비행장 고향의 신분증은 패스포트

 

「글로벌 블루스 2009」 中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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